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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감독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3-10-03 00:00

“흥행 실패 아쉽지만 인정 받은 것 기뻐”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로 올해 용호상 후보 올라



오는 10일까지 계속되는 제22회 밴쿠버 국제 영화제 용호상 후보에 오른 장준환 감독. 수상은 못했지만 자기 작품이 인정을 받았다는 점만으로도 기쁘다는 장 감독을 만나 그의 작품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주>





황당하지만 황당하다고만 치부해버릴 수 없는 진지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보면서 주인공 병구는 감독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말 그러냐는 질문에 장준환 감독<사진>은 웃음으로 먼저 대답했다.



“3년 간 준비하면서 공 들여 만든 캐릭터니까 아마 어느 정도는 닮았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병구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는 않아요. 현실을 잊을 만큼 공상이나 망상에 빠져 있지도 않죠.”



올해 밴쿠버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용호상 후보에 오는 장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는 자신이 일했던 화학회사의 사장을 외계인이라고 믿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욕심을 많이 내서 만든 이 데뷔작으로 장 감독은 대종상 신인 감독상, 모스크바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지만 상복 많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흥행에는 실패했다. 개봉관에서 막을 내린 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대한민국 네티즌들의 입심으로 재개봉되는 특혜를 누리기는 했지만 감독으로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이지만 (관객들에게) 수용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외국 영화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서 기분은 좋지만 한국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아쉽습니다.”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하는 병구라는 캐릭터 속에는 장 감독이 그 동안 지구, 대한민국에 살면서 느낀 애증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감정의 극한이 표출된 치열한 느낌의 영화가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는 그는 SF물로 설정된 이 영화를 중간중간 호러 영화 수준까지 몰아가다가 ‘의외성’이라는 지뢰 장치로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긴장을 풀어낸다. 납치한 강 사장을 고문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물파스가 바로 그런 지뢰 장치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용품을 스크린 전면에 부각시켜 그것이 주는 의외성으로 관객을 웃게 만드는 상황에서 영화 ‘마이 빅 팻 그릭 웨딩’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한 ‘윈덱스’를 떠올리게 한다.



장 감독은 8년 전 단편 ‘2001년 이매진’으로 밴쿠버 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이번이 세 번째 밴쿠버 방문이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살인의 추억’을 만든 봉준호 감독과 한국 영화 아카데미에서 함께 영화 수업을 받고 감독이 됐다. 영화를 열심히 찾아 다니면서 많이 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 동안 살면서 보아 온 영화들이 이 길을 가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고 그는 말했다.



‘국제’ 영화제를 방문한 ‘국산’ 감독인 그에게 스크린 쿼터 제도에 대해 물었다.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논리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과연 누가 우리의 정서, 우리의 느낌을 우리 말로 잘 표출해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그는 답했다. “공룡과 쥐의 자유 경쟁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우리 것을 지켜가는 것이 페어(Fair)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의 압박 수위와 관계없이 장 감독은 내내 차분하고 조용한 어투로 간간이 웃음을 섞어가며 천천히 대답했다. 이렇게 조용한 감독한테서 병구처럼 울분에 찬 인물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병구의 울분은 이미 감독을 떠나 우리 관객들에게로 옮겨져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에너지 위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매력이고 마력이다. 밴쿠버 국제 영화제가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도 태어난 나라, 자라난 환경,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더라도 영화라면 그런 이심전심이 가능할 것이라는 그 이야기일 것이다.



조은상 기자 eunsang@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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