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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핀 산행에서 우연히...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1-23 00:00

엘핀 산행에서 우연히 시를 얻다

閏七月旣望與三人過宿崖濱山舍因某鼻息之聲而不寐
윤칠월15일 세 친구와 함께 엘핀산사에 묵었는데
모씨의 코고는 소리에 잠 못 이뤄

閏夏崖濱四客至 윤달여름 엘핀호에 네 나그네 도착하니
萬重靈峯天際連 천겹만겹 영봉들이 하늘끝에 잇닿았네
遍原蓆草仙女繡 온산자락  방석풀들 선녀들은 수놓았고
千丈玉氷太初緣 천길절벽  옥색얼음 천지창조 사연일세
戴峯兩碗明鏡水 산머리가 이고있는 두 사발의 明鏡止水
洗心滌愁何處尋 마음닦고 시름 씻어 숫제어디 찾을손가
皎月浸床夜三更 밝은달빛 침상젖고 밤은 깊어 삼경인데
轉輾反側淸曉臻 이리뒤척 저리뒤척 맑은 새벽 밝아오네

丙戌閏七月十五夜於崖濱山舍 梅軒 鄭鳳錫 偶吟
병술년윤 7월 보름밤 엘핀산사에서 매헌 정봉석은 우연히 읊다

어떤 산이건 이를 오르는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이라는 게 있다. 십중팔구 대개는 장엄하고 험준하며 남성적인 인상을 풍기는데 비해 엘핀호(Elfin Lake)는 그와 정반대의 여성적인 산이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같이 아늑한 느낌, 산세의 유연함, 온 산자락을 수놓은 Heather 방석풀과 야생화 군락....그 뒤로 자리잡은 만년설 영봉들은 옥병풍을 둘러친 천상선녀의 안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어디 그뿐인가. 해발 1500m에 자리잡았지만 1000m까지 차로 올라와 도보로 이동하는 길조차 거의 평지나 마찬가지의 완만한 경사라 비경을 찾는 순례자로선 황송할 뿐이다. 능선을 따라 시원하게 구비친 6km의 등산로는 한걸음 한걸음이 스콰미시와 위슬러 계곡일대의 파노라마를 즐기는 소위 조감대(Vintage point)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주변 경취에 취해 힘들다는 생각조차 들 겨를이 없이 엘핀 산사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서면 와! 하는 탄성이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온다.

산정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두개의 조그만 호수가 티없이 맑고 파아란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다. 마치 선녀 두 명이 받쳐든 세숫대야 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선녀가 천상에서 길어와 머리에 이고 있는 두 동이의 약수라 해야 할까. 실제로 호수 하나는 등산객들의 식수용이고 다른 하나는 목욕용이라는 용도간판이 붙어 있었다.

왜 이곳을 무슨 무슨 산이 아니라 엘핀호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조물주라는 금장(金匠)이 선녀에게 선물로 줄 은반지의 중심 좌대를 세공한 후 두개의 에메랄드 보석을 사뿐이 올려 놓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견우와 직녀가 만년가약을 맺을 당시 끼던 결혼 반지는 아닐까.

누구든 엘핀호를 찾는 사람은 당일치기가 아니라 주정부의 배려로 지어놓은 산사에서 하룻밤을 더 묵어야 엘핀호 주변의 속살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때마침 우리 일행이 도착한 날은 구름하나 없는 윤칠월 보름날. 그것도 100년에 한번 있다는 쌍춘년 윤칠월 보름달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것이다.

산사에 여장울 푼 직후 수영호에서 속세의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니 마음도 시름도 득도한 듯 해맑아져 있었다. 황혼에 비친 병풍같은 영봉들을 엘핀호가 그대로 담고 있어 목욕하기조차 미안할 지경이었고 저녁식사 후 벤치에서 바라본 월출과 호수에 비친 또 하나의 월출...너무나 황홀하여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이러한 감동을 위해서는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매년 필자는 방학과 휴가철이 지난 9월초 주중을 택하여 2박3일을 다녀온다. 이윽고 산사의 2층 나무벙커침상에 자리를 펴니 교교한 달빛이 젖어 들고 있었다. 잠이 올 리 없다. 게다가 일행 중 모씨의 메가톤급 코고는 소리는 잠을 자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할 수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시를 지었다. 이리저리 운을 맞추느라 머리를 짜내는 사이 이윽고 엘핀호엔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잠을 한 숨 못 잤어도 머리가 말갛게 가벼워 지고 있었다. 매주 산행하면서 한시 한 수씩을 쓴다는 나와의 약속은 바로 이 엘핀 산행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정봉석 / 송산서당 강주 phnx604@hotmail.com

필자 프로필
경남 함양군 안의 출생. 조부로부터 4살부터 17살까지 한학 배움.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졸업 후 삼성에서 근무하다가 1975년 토론토로 이민, 항공기 제조사 디하빌랜드 근무. 1987년 밴쿠버로 이주해 자영업 운영하며 랑가라 칼리지 법정통역강사,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 1994년 조부의 유지를 받들어 밴쿠버에 '송산서당' 설립. '송산'은 조부 정재혁옹의 아호. 서부캐나다 ROTC 동지회 회장, 밴쿠버 한인산우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대장암 3기 판명을 받고 수술, 투병 완치 후 현재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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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 만난 산... 산이 나의 주치의"

연재를 시작하며

6년 전 산행을 시작했지만 한 4년간은 건성으로 다녔었다.

남들이 가니까 따라 나선 것일 뿐, 산이 정말 좋다는 것이 체화되지 못한 "나이롱 주말 산행인"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던 내가 이젠 나의 모든 시계가 산을 중심으로 움직일 만치 산에 미쳐 버리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3년전 대장암 3기 일보 직전의 진단을 받고 수술, 그 후 6개월에 걸친 항암 치료 기간 중 나와 산의 연애는 시작됐다. 암 투병의 관건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항암제 투여로 인한 지독한 후유증이나 신체적 고통은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불편일 뿐, 아무리 마음을 크게 먹고 자기를 추스른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좌절, 절망, 허무 그리고 무기력은 사람의 정신과 육신을 동시에 갉아먹는 저승사자에 다름 아니다. 집에 멍하니 드러누워 있으니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산행이었다. 항암제 주입용 포탈(portal)을 팔에 장착한 채 나는 6개월 동안 40좌에 걸친 밴쿠버 주변산을 단독으로 올랐다. 당시는 곰에 물려 죽으나 암으로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라는 막가파였다. 산을 올라갈 때는 심리적 고통을 잊을 수 있었고, 산정상에 올라서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전되었다. 그러다 보니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의 숨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산은 말이 없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인간은 변덕을 부리지만 산은 늘 거기서 그렇게 변함없이 서 있었던 것이다. 지난 여름 CT 촬영에 내시경, 그리고 초음파 등의 종합정밀검사 결과 암 증상이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갑종건강합격을 받았다. 바로 산이 나의 주치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고마운 생명의 은인인 산에게 보답하는 연시(戀詩)를 쓰기로 작정했다. 매주 산에 갈 때마다 한 수씩 쓰고 있다. 필자는 밴쿠버에서 10년 동안 '송산서당'을 운영하는 한학인으로서 한시를 택했다. 한문을 빌려 산을 예찬하는 것이 격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한시란 게 거의 모두가 산수를 예찬하던 옛 사람들의 독특한 문학 장르가 아니던가.... 그리고 시라는 건 공감을 얻기 위해 쓰여지는 만큼... 밴쿠버 교민사회의 수많은 동료 산행인들에게 직접 각자가 올라본 낯익은 산에서 쓴 시를 통해 현장감은 물론 더러는 공감하는 부분도 없지않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장기 산행 한시 연재를 통해 밴쿠버 교민사회의 산행인구 저변확대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그리하여 산행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모두들 행복해지기를 또한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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