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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섭 단편소설 연재(6)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6-11-23 00:00

쌕쌕이와 사진

9.

 "아니 이거 누구야! 기원이 아니야!"
기원은 늘 씩씩하고 활달한 성격을 보여 주었던 학생이다. 이날 따라 기가 푹 죽었고 말소리도 누가 들을 까봐 소근소근했다.  
  "한 선생님, 속히 이곳을 피해야 해요"
  "무슨 일이......"
 "우리 아버지가 끌려갔어요"
 "끌려가다니......"
  "오늘 제가 아버지 면회를 갔다가 이 오덕교회 최 장로를 뵈었습니다. 최 장로님도 끌려갔습니다. 최 장로님이 한 선생님이 여기 계시다는 말씀을 귓속말로 해 주셨습니다"
  "아버님도 최 장로도, 그럼 권 집사는?"  
  "매형은 도망치다시피 누님과 같이 가곡으로 갔습니다."
  "그 후 소식은......" 
 "알 길이 없습니다. 한 선생님! 빨리 이곳을 피해야 합니다."
  "최 장로님이 매우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달려 왔습니다." 
   순간 준호는 막막했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기원은 자기만 따라 오라고 했다. 밤길을 걸어야 했다. 밤 중쯤에 도착한 곳은 원두막이었다. 홍산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는 자기 고모의 원두막이었다. 고모부는 숨어 버렸고 집에는 고모와 시집 안 간 딸과 아이들만 있었다. 준호가 이 곳 전도 집회 때 이 고모 집에서 여러 번 식사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지방의 치안대는 눈에 불을 켜고 우익 지도자들의 검거에 나섰다고 한다. 제일 먼저 잡혀 간 분은 임 목사, 그는 해방 전 까지 독립운동의 자금을 조달하는 지하조직의 책임자였고, 해방 후에는 이곳 충남의 우익을 대표 하는 지도자였다. 월곡의 송 장로, 홍산의 임 의사, 옥산의 박 교장, 유지라는 유지는 모조리 끌어 갔다고 한다.

준호는 이 원두막에서 약 두 주간을 보냈다. 음식은 기원이 고모와 문익호 장로의 부인 김옥순 권사가 해 날랐다. 밤이 어둑해지면 밭에 가는 척 하고 밥을 해다가 밭 기슭에 숨겨 두고 갔다. 준호는 캄캄해 진 밤이 되면 그 음식을 찾아다 먹었다. 기원이 종종 원두막을 찾아 와서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무슨 책을 읽고 계셔요?"
 준호는 짐이 안 되는 '바이런'의 작은 시집을 갖고 있었다.
 "너무나 많이 읽어서 지금은 다 외우고 있지! 이런 시가 있지"
 어떻게 사랑을 시작 하게 됐느냐!
 그것을 내게 묻다니 가혹 하군요
 수많은 눈길을 읽으시고도
 그대를 보는 순간 비로소 인생이 시작된 것을

 더구나 사랑의 종말을 알고자 하나요
 미래가 두려워 마음은 늘 제자리지만
 사랑은 끝없는 슬픔 속을 말없이 헤매며
 죽는 그날 까자 살아 있는 것을."

준호는 바이런의 시 한수를 기원에게 읽어 주었다. 기원은 그 뜻을 알 수 없었지만 한 선생이 지금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 선생님은 역시 시인이십니다. 그리고 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막극을 쓰고 있네."
  "단막극? 그러면 연극 대본입니까? 그것은 무엇에 쓰시려고.....?."
  "기원이! 이 글의 내용이 이러하네. 어느 마을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었는데 그곳에 공산 혁명이 일어나 부자는 고통을 겪고, 노동자 농민의 세상을 이루어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야! 어때!"
  기원은 이해가 안 돼 잠시 침묵했다. 준호의 단막극을 더 자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마을에 순자와 삼용이가 살고 있었다. 순자는 부잣집 외동딸이고 삼용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둘은 서로 사랑했었다. 그런데 순자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6·25가 터지자 그곳을 인민군이 점령하고 내무서가 들어 앉아 공산 치하의 세상이 됐다. 그런데 삼용이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그간 은밀히 그 조직의 일원으로 지하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만난 것이다. 삼용이가 치안 대장을 하다가 내무서가 들어오니 요직에 기용됐다. 세도가 당당하다. 결혼을 반대하던 순자의 부모가 삼용의 덕을 입게 된다. 순자의 아버지는 전답을 솔선 헌납하고 쌀을 풀어 인민군 군량미로 바친다. 집은 인민군의 거처로 제공한다. 순자는 부녀동맹의 간부가 된다. 순자와 삼용은 결혼을 하게 되고 삼용은 의용군으로 자원한다.>

  "기원이! 갑자기 누가 나를 잡으러 올 것만 같아. 피하지 못하고 잡히면 이 극본을 보라고 할 작정이야! 그러면 내가 공산주의자라고 하겠지! 나는 병을 알다가 지금 회복하고 있는데 여기서 쉬며 이것을 쓰고 끝나면 속히 가서 이 연극으로 해방 사업에 동참하려 한다. 이 연극을 하기 위해서도 빨리 가야 한다."

기원은 준호의 말을 듣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 좋은 구실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구실만으로 느닷없이 닥칠 변을 피하기에는 환경이 너무나도 살벌했다. 기원도 원두막의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준호는 무작정 떠났다. 원두막에서 잡히는 때는 준호 때문에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염려스럽다.

후에 들은 말이지만 기원의 고모에게는 연만한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밥 심부름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준호는 밤에만 왔다가는 그녀를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준호가 그 원두막을 떠나던 날, 그녀는 남모르게 많이 울었다고 한다.  

구룡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지나다가 치안대에 걸렸다. 하루 종일 놓아주지 않고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준호가 수색을 당하는 동안 안쪽에서는 고문을 당하는 지방의 우익 사람들의 괴성과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준호는 이때 참으로 용감(?)하게 거짓말을 했고, 북쪽으로 되돌아가는 이유, 충북에 있는 친북 친척들의 이름이며 양평에 있는 보도연맹 간부들의 이름을 내세우며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단막극의 줄기도 설명했다. 그 때부터 준호는 자기들의 동지로 인정했는지 무례하게 취급은 안 했다. 거짓을 꾸민다는 것은 비상한 머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 대담해야 한다는 것을 6·25 때 피난하면서 준호는 절감 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너는 살아야 한다"     
 그날 밤 예수님이 찾아오시어 하신말씀을 되새기니 준호의 거짓말에 탄력이 붙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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