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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에서 듣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1-02 00:00

산사(山寺) 툇마루에 걸터앉아 풍경(風磬)이 한들거리며 들려주는 음악을 듣노라면 아무리 겨울빛 짙은 날도 차갑지 않다. 잠시라도 세상사 시름 떨구고 눈을 지긋이 감게 하는 풍경소리는 비로소 소리가 아닌 음악이 된다. 바람이 저 혼자는 싫다며 풍경에 다가간, 빼어난 연주다.

한참을 애연(哀然)한 진양조로 흐르다가 어느새 중모리로, 또 자진모리로 가다가도 다시 애잔하게 흐르며 극적인 감동을 안긴다. 쏜살같은 시간마저 잠시 멈추어 듣게 하는 변화무쌍(變化無雙)이다.

흐르는 물도 음악을 연주하긴 마찬가지다. 물이 연주하는 건 교향곡이다. 넓은 물길에 잔잔하게 흐를 때는 마치 콘트라베이스가 앞장선 장중한 서곡(序曲)과도 같으며, 좁은 물길을 아기자기하게 흐를 때는 피콜로와 플루트가 서로 주고받는 듯하다. 또 물길을 휘돌며 큰 낙차를 이룰 때는 팀파니의 격정에 모든 관현(管絃)이 주저하지 않고 흥분을 보탠다.

바람과 물의 연주가 또한 위대한 것은 적막을 깨되 끝내 적막을 내치지 않기 때문이다. 산사는 바람이 불되 고요하며, 깊은 계곡은 물이 흐르되 적막하다.

그저 무심하게 부는 바람과 흐르는 물이 마침내 최고의 음악이 되고야 마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네 고운 심성(心性)에 닿으면서다. 자연이 베푸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외면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 새롭게 인식하는, 자연보다 위대한 우리네 심성이다. 이러한 우리네 심성 안에서 자연의 생명력은 배가된다.

서양사람들의 음악이나 미술, 무용 같은 예술에 관련한 접근과 인식은 우리네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서구의 예술 개념은 이상향(理想鄕)을 설정하는 것에 기초한다.

서구 예술은 스스로 설정한 이상향, 즉 이데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위대성이 드러난다. 탄력 없는 잣대로 극명하게 양분할 수는 없지만, 서양의 예술은 그러한 예술 개념에 기초하여 하늘 지향적인 특징을 가지며, 우리네 예술은 땅을 지향하는 특징을 지닌다.

서양의 미술에서는 팔등신(八等身), 황금분할(黃金分割)과 같이 이데아를 설정한 것처럼, 결코 현세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그러나 이상적이라고 설정한 구도와 색채 또는 형태를 추구해온 특징을 보인다. 서양의 무용 또한 도약(跳躍)을 중심으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반면에, 우리네 춤은 땅을 딛는 아름다움을 향해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서양 무용과 우리네 춤의 다름 속에서, 서양 무용을 보는 관객들은 감탄하고, 우리네 춤을 보는 관객들은 감동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마찬가지 개념으로 서양의 음악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인 소리의 파장을 설정하고, 설정된 소리들은 음계(音階)가 되었다. 그 음계가 다시 장단(長短)과 완급(緩急)을 만나는 것이 우리가 듣는 일반적인 음악, 곧 서양음악이다.

서양 음계의 ‘도’는 어디에서도 ‘도’며, 마찬가지로 레, 미, 파, 솔, 라, 시와 같은 나머지 음계도 어디에서나 소리의 파장이 변하지 않는다. 설정된 이상향에서 벗어난 소리의 파장은 그냥 소리일 뿐, 결코 음악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 서양음악의 기본적 개념이다.

이러한 서양의 음악에서는 이데아를 이탈하지 않고 그에 향해 가려는 팽팽한 긴장이 유지된다. 해서 긴장이 팽창할 대로 팽창한 숨막히는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우리네 착한 음악을 들으면서는 느긋한 여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양음악에서의 절대(絶對) 음(音)과 절대 음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파장들, 그리고 자연과 일상 속의 온갖 소리를 모두 음악으로 포용한 우리네 심성이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마저 음악이 되게 하였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의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곱고 여유로운 우리네 심성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인적 없는 절에서도, 깊은 산 계곡에서도 지긋이 눈만 감으면 자연이 들려주는 환상적인 연주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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