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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연속극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1-22 00:00

한국은 가히 텔레비전의 왕국이라 할 수 있다. 막강한 위력을 지닌 대중매체, 특히 방송의 영향력에서 홀가분한 나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요즘 지구촌의 모습이지만 한국사회에서 떨치는 텔레비전 방송의 맹위는 더욱 도드라진다.

한국사회는 저마다의 개성이 스스럼 없이 발현되는, 다양성이 한껏 강조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쏠림 현상에 의한 획일화로 나아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쏠림 현상을 주도하는 선두에는 단연 텔레비전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텔레비전 드라마는 한국사회의 획일성을 선도하는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용모, 패션, 의식구조에서부터 심지어는 말투에 이르기까지 쏠림 현상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텔레비전 드라마가 빚는 트렌드는 시한부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지만, 그 순간위력만큼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대중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거의 똑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한국의 주요 3개 공중파 방송사가 한해 동안 제작, 방영하는 텔레비전 연속극은 얼추 100편에 이른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물량의 드라마가 텔레비전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사회현상에 파급되는 가공할 영향력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텔레비전 드라마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다.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서 거대한 쏠림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드라마의 수많은 주인공들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어간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인물들이 외도나 불륜에 얽혀 허우적대고, 또는 복수심에 이글거리는 가슴으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태생의 비밀을 가진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 또한 숱하다.

이렇게 뻔하다고 매번 욕먹는 텔레비전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공급되고 끊임없이 수요가 뒤따르는 것을 보면 아주 신기하기만 하다. 수수께끼와도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수요, 공급 형태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역설적으로 들여다 보는 게 효과적일 것 같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연속극의 중간을 몇 차례 빼먹어도 줄거리를 이해하거나 다시 빠져드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면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열린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다. 시작부터 함께 있지 않았어도, 또는 중간에 잠시 외면했다가 아무 때에나 되돌아와도 전혀 당혹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너른 포용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역설적인 이해에서, 그저 비슷비슷한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는 친절함을 추가하자면 망각(忘却)을 들 수 있겠다. 드라마를 열불 나게 보던 사람들도 텔레비전에서 돌아서면 그 내용을 바로 잊어버린다. 망각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거라 하지만 이런 경우에 있어서 망각은 아주 친절하다. 거의 똑 같은 내용의 드라마인데도 사람들이 새롭게 빠져들 수 있는 건, 그 앞에 보았던 그만그만한 드라마를 짧은 시간에 망각하기 때문일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식상함이 주는 스트레스를 어찌 견뎌내겠는가.

그렇고 그런 텔레비전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그에 대한 논란, 특히 부정적인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가 쉬 지나치면 안될 것이 있다.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드라마와 교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드라마를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아예 텔레비전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때론 분개하고, 때론 슬퍼하며, 때론 기뻐한다. 서로 소통하는 수다다.

비록 돌아서면 바로 잊는 게 수다라지만 어찌 그것이 무의미하기만 할까.  세상살이가 거대담론만으로 채워져 있는 건 아니다. 텔레비전과 벗하여 시시콜콜 사는 일을 놓고 수다를 떠는, 지금을 사는 사람들, 고독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운 자화상이 읽혀진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심취하는 것은 곧 고상하지 못하다는 선입관이 암암리에 성립되고 있지만 이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때때로 연속극은 누구보다도 친절한, 사람들의 말벗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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