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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내린 시무어 마운틴에 올라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1-25 00:00

塞牟山初雪山行遊記
첫눈 내린 Seymour Mt.을 오르면서

中世布衣任盤桓 중년나이 백수되어 마음대로 떠도나니
今朝又上塞牟山 오늘아침 다시한번 씨모어산 올랐구나
萬樹亭亭盡冒雪 곧고곧은 나무들은 하얀눈을 죄다쓰고
煙波漠漠遠岫間 먼산사이 안개파도 가이없이 출렁이네
岐嶇石逕踏雲行 모질게도 험한돌길 구름밟고 가노라니
矗立一松傲節蟠 우뚝선 솔한그루 傲霜孤節 서렸구나
同伴莫道歸路險 여보게들 하산길이 험하다고 하지말게
浮生歷程如此難 부질없는 인생길도 이와같이 어렵나니

丙戌陽十一月九日正喜雪滿空中梅軒賦
병술년 11월9일 온누리 가득한 눈이 정말 즐거워 매헌은 시를 짓다.

올해로 이민 32년차를 맞이하는 내가 한국에 다녀온 것은 1983년과 2005년도, 단 두차례 뿐이다. 먹고 사느라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었겠고 내가 원래 지리산 오지 출신이다 보니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북적거리는 것이 생래적으로 싫은 이유도 작용했지 싶다. 2년 전의 귀국길은 내가 암 투병 중 죽기 전에 고향 땅이나 한번 밟아 보자고 22년 만에 나간 씁쓸한 귀향이었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 만감이 교차하는 그 와중에서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이 아니라, 산행 문화의 현장 체험이었다. 꽃피고 새 우는 5월의 어느 주말, 친구들과 함께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북한산으로 향했다. 황량한 콘크리트 아파트 숲들이 끝없이 펼쳐진 서울의 한쪽 구석에 그나마 북한산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내가 정말 놀란 것은 산행 인파였다. 좁지 않은 산행로를 따라 올라가는 사람들의 행렬... 명동거리를 방불케 하는 인산 인해가 장사진을 이루다 못해 숫제 떠밀려 올라가고 있었으니... 밴쿠버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국토의 70%이상이 산으로 된 이 나라에 저리도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엄연한 문화 현상이요, 한국인들만이 해낼 수 있는 "저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청년기를 지낸 한국의 60,70년대에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은 옛날보다 먹고 살기가 풍요로운 까닭도 있겠지만 삭막한 도시 문명에 대한 저항 심리가 작용한 것이 분명한 것이라 느껴졌다. 밴쿠버는 도심 한 가운데 원시림이 공존하고, 엎어지면 코 닿을 데 곰이 어슬렁거리는 산들이 즐비하니 한국처럼 사람들이 주말마다 산으로 몰려갈 필요야 없는 것이다.

아무리 풍요한 물질문명을 구가하며 흥청망청 마신다 해도, 인간의 저 깊숙한 심연에 숨어있는 '타는 목마름' 같은 자연에 대한 갈망은 그 누가 부정하겠는가.

필자가 너무 비약하고 있을지는 모르나, 현대 문명은 물론 인간의 모든 문제는 기실 유위(有爲 )와 무위(無爲)라는 철학적 명제로 귀결되고 분석될 수 있다. 너무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귀한 지면을 허비할 생각은 없다. 좀더 알기 쉽게 산으로 가는 인간의 심층심리를 한번 따져 보기위해 잠깐 빌려본 엉터리 개똥철학이라도 좋은 것이다.

유위는 인위적인 것 즉 억지로 그러함이요, 무위는 무위자연, 즉 스스로 그러함이다. 유위는 곧 문화, 문명이라는 단어로 환원되며 무위는 시원(始原)적이고 원초적인 그 무엇으로 가름할 수 있다. 전자가 현상으로서 유(有)의 세계인 반면, 후자는 실체로서 무(無)의 세계이다. 이 문제는 노자의 도덕경이 궁극적이고도 명쾌한 답을 내리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산은 무위자연의 세계요, 들은 유위문명의 세계다. 에덴동산은 시원적 자연이요, 에덴동산으로부터 내쫓김은 문명의 시작이다. 자연은 구심력이요, 문명은 원심력이다. 하지만 인간은 영원히 산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도시라는 들에서 일해야만 산다. 에덴동산에만 인간이 영원히 거주했다면 문명은 시작되지 않았다. 자연은 이를 정복하고 일탈하며 까부는 인간들을 안으로 잡아당기려는 표면 장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연과 멀어지는 문명의 장난을 계속한다.

우리 배달겨레는 산에서 시작됐다. 한민족의 장엄한 창세기이자 서사시인 단군신화는 민족의 영원한 성지인 백두산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비, 구름, 바람을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한단고기의 기록은 우리가 원초적으로 산이 고향인 사람들임을 웅변한다. 백두산이야말로 백의민족의 에덴동산이자 시원이 아니던가. 이러한 무위자연의 슬기가 우리들의 집단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산에 가면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있는 듯이 편안하니 산행 중 모든 남녀노소가 일체감을 느낀다. 산의 정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왠지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호연지기가 무엇인지 감이 잡힐 것 같은 그런 막연한 기분이 있으니 산으로 가는 것이다.

현대문명은 무위자연으로부터 엄청난 일탈에 다름 아니다. 에덴동산을 떠난 아담과 이브의 후예들이 떠나도 한참 떠났기 때문에 현대 문명이라는 고질병이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 똑같은 논리로, 한민족이 백두산을 떠나 들로 내려와 살면서부터 우리 역사의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등산은 어떤 의미에서 문명과 무위자연의 미묘한 밸런스를 유지하려는 현대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을 향한 발돋움인 산행은 엄청난 반대급부가 있다. 보라! 주위에 등산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산행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새로운 생의 활력을 충전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막말로 보약 백 첩을 달여먹는 것보다 산에 열번 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은 산행을 해본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인 것이다. 그 옛날 불로장생의 양생법을 통달한 신선 할아버지들도 그 비결을 산에서 찾지 않았던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온갖 신령한 산들이 부지기수로 즐비한 밴쿠버에 살면서 등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먹고 살기 바쁜 이민생활이라도 산에 가는 여유를 찾으려면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산행을 친절하게 준비하고 안내하는 단체들이 각 요일마다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백두산족의 후예들이여!
우리 모두 산으로 가자!
거기엔 우리들만의 신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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