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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만드는 영재?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2-08 00:00

한국을 가게 되었을 때 한 친구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영재아라고 소문난 딸이 한 명 있는 집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 집 거실과 방의 벽마다 가득가득 차있는 책들이었다. 몇 권 정도 되냐고 묻자 거의 3000권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게 한 비정상적인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열 좀 있다' 하는 엄마들은 최고 3000-4000권의 책을 집에 갖추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몇 년 전 한국에서 붐을 일으켰던 '독서로 만드는 영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싶었다. 작가이자 출판사 일을 하는 아버지가 주도적으로 키운 한 아이가 유치원에도 안가고 서점에 출퇴근을 해가며 책을 많이 읽어 영재가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가 한 교육법을 따라 하기 위해 엄마들이 그 아이가 읽었다는 책은 물론 추천하는 책까지 다 갖춰 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책들을 집집마다 본 듯 싶었다.

'독서로 영재를 만든다', '독서 영재'라는 이야기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에서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책 읽어주는 것을 권장하기 위해 영화마다 그러한 장면을 넣도록 권장했고, 학교마다 각종 책 읽기 대회 등을 통해 독서를 장려한다. 아이가 책 많이 읽는다는데 반대할 부모 없고, 선생이 없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 책만큼 쉽고 빠르게 아이의 지식과 상식을 늘려주는 것은 찾기 힘들다. 앉아서 읽기만 하면 되니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무조건 많은 책에 빠져 지내는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될 일이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을 보면 똑똑하고 아는 게 많다. 기억력이 좋은 아이들은 역사책이나 과학책에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까지 통째로 기억하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은 그러한 모든 정보와 지식이 자기 의견이 아니라 작가의 의견이라는 것이다. 모든 책에는 '작가'가 있으며 책은 이러한 작가의 시각과 의견을 반영한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읽고 나면 아이들이 지고지순하고 청순한 사랑이야기라고 작가가 이야기를 펼쳐나간 대로 그저 빠져 따라나간다. 모든 국어 선생님과 시험지도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라고 말한다. 다르게 말한 아이는 틀린 아이다. 한번은 한국에서 책을 별로 읽지 않지만 영리한 한 아이가 다른 시각으로 이 소설을 평가했다. "아무리 몸이 약해도 그렇지 어떻게 비 한번 맞았다고 여자 아이가 죽어버려요? 부잣집 손녀딸이라면서요, 부자집이면 병원에 데려다가 그 정도는 고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이야기가 앞뒤가 안 맞아요."       

공룡에 관한 과학책을 보면 공룡이 멸종한 이유가 나와있다. 작가와 출판사마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를 적어놓은 이론들이 모두 다르다. 사실 공룡 멸종의 이론은 백가지가 넘는다. 모든 이론이 다 나와있지 않은데도 아이들은 그 책을 읽고 흔히 말하는 '빙하기 멸종론'이 절대 맞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생각 없이 출판사와 작가의 이론과 주장을 따라간다.

아이들에게 많은 책을 읽혀주는 동시에 아이 고유의 생각과 질문과 호기심은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좋은 책을 많이 있는 것은 좋지만 책에 너무 빠져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기의 고유하고 독특한 생각, 호기심과 질문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책 속의 세계에서 헤매는 아이들이 많다. 심지어 책을 요약하고 안에 있는 내용을 모두 습득하라고 강요하는 부모도 있다. 단순 지식과 상식은 늘어날지 모르지만 아이의 고유한 창의성은 점점 소멸되어간다. 아이는 내용을 저장하고 꺼내는 컴퓨터가 아니다. 아이는 컴퓨터를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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