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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幻想) 또는 환상(幻像)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2-19 00:00

환상(幻想) 또는 환상(幻像), 깨지지만 않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냉정한 현실에 살면서도 비현실적인 인식을 통해 냉정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환상은 우리를 살게 하는 동력의 근원이 된다. 마침내 우리가 아픈 것은 환상이 깨지면서다. 환상이 깨지지 않고 우리와 늘 함께 한다면 환상 자체가 곧 현실이며, 따라서 아픈 삶은 없을 것이다.

볕 좋은 날 아무데나 앉으면 우리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며 먼 전설을 들려주는 바람, 그럴 때면 우리는 시공을 넘나드는 여행길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그 바람에서 환상을 제거하면 공기의 이동이 된다. 가장 정확한 바람에 대한 규명이지만, 환상이 제거된 바람은 존재의 의미가 약해진다.

때때로 아름다운 선(線)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흐르는 듯 떨구다가 다시 힘있게 치솟는 선을 보며 한번도 가보지 못한 저마다의 꿈의 세계를 우리는 유영한다. 그러한 선에서 환상을 제거하면 점의 집합이 된다. 점의 집합으로 규명된 선은 우리에게 아무런 울림도 주지 않는다. 자칫 무미건조한 시간의 연장선으로 추락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건 바로 꿈, 환상으로부터다.

우리가 사는 건, 우리가 꿈꾸는 것들을 이루려는, 꿈꾸는 것들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코끝 시린 일련의 저항이다. 시련에 넘어져 무르팍이 깨지고, 역경에 닥쳐 가슴팍이 갈라져도 우리가 또 일어나는 건 마음 안에 지지 않는 꿈 때문이며, 또한 그것에 곧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신념 때문이다.

한편 생각을 조금만 돌리면, 눈을 조금만 크게 뜨면, 현실에는 전혀 존재할 것 같지않은 환상들이 우리 삶 도처에 깨지지 않은 채 실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치열하고 고단한 현실이 주는 압박과 똑같은 무게만큼의, 도무지 깨지지 않는 환상이 한데 버무려지는 것이 우리 삶의 실제이다. 환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한 공간을 넘나들며 사람들은 살고 있다.

비 오는 날, 방에 앉아 음악을 튼다. 여느 날보다는 조금 더 소리를 높인 음악이 순식간에 방 안을 감싼다. 그리고 비 뿌리는 창 밖을 내다본다. 빗방울 튀어 흐르는 유리창을 경계로 두 세계가 공존한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세상은 비에 흠뻑 젖고 있다. 거기에는 빗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이며 갖은 삶의 소리와 모습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창 닫은 방안에서는 음악만이 들릴 뿐, 그러한 삶의 소리들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순간 창을 통해 바라보는 비 내리는 거리, 현실은 판타지가 된다. 귀에 들리는 음악에 맞춰 넘실넘실 춤추는 듯한, 창 밖 세상의 모습은 판타지다.

또한 그와 반대로 요란한 현실의 세계 안에서, 음악만이 흐르는 그 방이 판타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인식의 흐름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이 가운데 현실의 잔영이 환상에 묻어나고 환상의 잔영은 현실에 묻어난다. 실재하되 환상이며, 환상이되 실재하는 현상이 무수히 반복되면서 두 의식공간은 꼬리마다 서로에게 여운을 남긴다.

꿈같은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염없이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음성 속의 그 사람이 가슴에 내려앉으면 환상 같은 하늘은 현실이 되고, 디딘 땅은 오히려 환상이 된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고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꿈보다 더 꿈 같은, 환상보다 더 환상적인 사랑이 우리 삶에 실재한다.

중요한 것은, 깨지지 않는 환상은 어디에도 없다고, 환상은 깨어지기 마련이며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고 단정짓는 인식의 가벼움이다. 환상과 현실이 우리의 세상 안에 공존함을 부정하는 냉철함은 끝내 날카로움을 잃고 초라해진다.

분명히 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절대로 깨지지 않고 우리의 현실이 되고 마는, 영원성을 지닌 환상들이 분명히 있음을 나는 믿는다. 세상을 오랫동안 살다가 되돌아 보며, 지난 한세상 꼭 꿈만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았던 것도 그러한 나의 확신에 힘을 보탠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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