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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산행 친구 ‘솔참새’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4-05 00:00

暴雪黑頭山上喜逢松雀共宴
폭설이내리는 Black Mt.산상에서 솔참새를 반갑게 만나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萬壑長松看如霧 온골짜기 메운 솔들 안개처럼 희미한데
隆冬氷雪截肌膚 한겨울의 얼음 추위 살갗을 에이누나
淑氣連綿一條蹊 솜실처럼 맑은 기운 외길하나 아련한데
只聽雪鞋不盡愁 들리는 건 설피소리 이내 시름 끝이 없네
天來寒風吹玉笛 하늘에서 찬바람이 옥피리 연주할새
林間座定松雀赴 나무사이 좌정하니 솔참새가 찾아왔네
請君何須談世事 그대에게 청하노니 세상사를 말마시게
吾輩方是神仙遊 우리셋은 바야흐로 신선되어 노니잖아

丁亥陽一月十八日與二人坐雪黑頭山上忽逢松雀而有仙興梅軒賦
정해년 양 1월 18일 두 사람과 함께 Black Mt.산상에서 눈 위에 앉자 솔참새가 날아들어
신선의 흥취가 일어 매헌은 시를 짓다.

일년에 한두 번 가는 산행이 아니라 나처럼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 빠짐없이 한 5년 산을 가다 보면 풀 한 포기, 야생화 한 송이도 낯이 익게 마련이며 식물의 이름도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하나 둘 알게 된다. 무심코 지나치며 그저 예쁘거나 아름답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연의 오묘한 경이를 느끼는 신비한 경외심이 은연중에 생기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꽃 몇 송이를 몰지각하게 꺾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지만 이제는 행여 발에 밟히지 않을까 염려하여 걸음마저 조심하게 된다. 눈시리게 아름답고 장엄한 대자연 속에 들어 선 내가 한없이 용렬하고, 추하며, 함량미달이라는 생각이 들면, 자연 앞에 얼굴 들고 서기가 부끄럽다는 대오성찰의 순간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이다. 발걸음을 떼어놓으면 중년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자연히 지난 60평생을 되돌아 본다. 저 이름 모름 야생화 한 송이에 비해 나 자신이 한없이 추악하고 못난 인생을 살아왔다는 진정한 회개는 교회당이나 종교서적을 통해서가 아닌 산행길에서 만난 풀 포기 꽃 송이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산을 가다 보면 곰이나 너구리같은 네발 짐승도 가끔 조우하게 되지만 등산객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은 산새들이다. 특히 정상부근인 고산지역에서 어김없이 찾아와 반기는 새가 있으니 바로 이놈이다.

처음 이 친구를 만난 것이 7년 전 홀리번 정상부근이었다. 모 산우회 회원들과 점심을 먹는데 이놈들 대여섯 마리가 찾아온 것이다. 막무가내로 먹을 것을 달라는 눈치가 역력하다. 손바닥 위에 빵 부스러기 몇 개를 올려놓기가 무섭게 잽싸게 채가는가 하면 아예 손바닥 위에 퍼질고 앉아 '날잡아 잡슈'라는 배짱으로 포식하는 친구들이니 무슨 이런 새가 있나 싶어 황당무계하기까지 하다.

그 당시 우리는 이놈들을 그냥 ‘거지새’로 불렀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공식적인 이름이 '재어치'(Gray jay) 또는 '캐나다어치'(Canada jay)로, 학명은 'Perisoreus canadensis로 통한다. 하도 극성을 피우며 저돌적이다 보니 '날 강도새'(Camp robber)에다 ‘주정뱅이새’(whiskey Jack)라는 고약한 이름까지 붙어있다.

생김새도 못생겼다. 상체는 회색, 이마와 얼굴은 흰색에 머리는 검은 빵모자를 쓴듯하고 짧고 뭉툭한 주둥아리를 가지고 있어 블루제이에 비하면 굴뚝새나 진배없는 추조(醜鳥)이다. 그런데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잡식성으로 곤충, 곡류에서부터 동물의 시체까지 못 먹는 것이 없다. 그러니 등산객들의 배낭에 들어있는 점심 냄새를 맡고 눈독을 들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올 겨울의 눈보라 산행 중 이놈들이 그 추운 정상부근에서 서성거리며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는 것을 보고 저 밑에 내려가면 먹을 것이 많을 터인데 무슨 사연으로 못 내려가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속세로 못 내려가는 말 못할 신비한 자연의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철새처럼 따뜻한 지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란다. 겨울이 닥쳐오기 전 자기들의 소위 "나와바리"내에 모든 먹이를 물어와 나무 껍질 사이에 강력한 접착제인 침으로 붙여 저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정상 부근이라야 그들이 애써 비축한 비상식량이 썩지 않고 냉동저장 될 수 있다는 것이니 참으로 머리가 비상한 영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다면 겨울산행을 나선 등산객들에게 동냥을 하는 행위도 자기들이 비축한 양식을 아끼기 위한 나름대로의 지혜인즉 깍쟁이라도 보통 깍쟁이가 아닌 것이다.

지난 11월 중이던가 L군과 함께 사이프러스 스키장에서 블랙마운틴과 이글블러프를 경유, 호슈베이까지 내려가는 무모한 산행을 나섰는데 중간에 엄청난 폭설을 만나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블랙마운틴 정상에 이르니 배꼽까지 빠지는 눈이라 도로 내려갈 수도, 강행할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이글블러프쪽이 가깝고 눈과 비의 분기점인 표고 700이하로 내려가자는 판단을 내려 가파른 내리막 눈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이 눈보라 속에서 예의 "거지새"가 우리 둘을 찾아 온 것이다. 거의 조난의 위기에 처한 우리들의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이놈들은 먹을 것을 안 준다고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좌우로 이리저리 먹을 것을 내 놓으라고 협박 비행을 하는가 하면 아예 머리 위에 앉아 화까지 내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먼저 조난의 위험을 벗어나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으니 그들의 협박에 가까운 애원을 외면하고 말았으나 무사히 호슈베이에 도착하고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이들에게 선물할 양식으로 빵 조각을 따로 배낭에 넣고 등산하곤 한다.

이날도 영하 10도가 훨씬 웃도는 블랙마운틴 정상에서 자리를 펴고 강력한 버너로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라면을 조리하자 이놈들이 찾아 들었다. 지난번에 문전박대를 했다는 죄책감에 먹다 남은 라면과 오뎅부스러기를 무더기로 보시했다. 암컷과 수컷으로 보이는 부부새였다. 지척에서 우리와 함께 잔치를 벌인 것이다. 그 추운 눈보라 산행 중에서도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저들과 해후하며 벌이는 산상잔치야말로 신선들의 잔치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들은 못생기고 시끄러우며 동냥아치 노릇을 하는 거지새가 아니라 나의 영원한 산행친구로 산에 오를 때마다 만나지 않으면 섭섭한 생각마저 들 정도로 이제 서로 친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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