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인사동의 아이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4-23 00:00

눈부시다, 바야흐로 염양춘(艶陽春)이다. 겨울을 모두 벗어낸 봄 짙은 주말, 인파의 인사동에 나갔다. 인사동(仁寺洞)은 방명(坊名)이었던 관인방(寬仁坊)과 인근 대사동(大寺洞)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온 것이 동명(洞名)의 유래가 되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과 문화의 거리로 명성을 더해가고 있지만 인사동은 이미 조선 초기부터 미술의 중심지였다. 그 후 고미술과 서적상, 그리고 골동품상들이 모여들었고, 해방 이후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련 상점들이 속속 더해져 명성에 걸맞은 거리로 변모해왔다.

인사동을 걸을 때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깊이를 느끼게 되어 색다른 감흥에 젖는다. 이 거리에 외국인이 많은 이유도 아마 서울다움을, 한국다움을 느끼게 되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인사동을 걷다 보면 전에는 없던 걸 보는데, 온갖 곳에 써 붙여놓은 ‘손대지 마시오.’라는 문구다. 수많은 전시품들마다, 그리고 팔려고 내놓은 물건들마다에 이 문구가 거의 빠지지 않고 함께 있다. 그러나 이 간곡한 부탁은 허공을 가르는 메아리처럼 맥없이 흩어지고야 만다.

주말의 인사동엔 아이들도 참 많다. 제 엄마나 아빠를 따라 나온 초등학교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이리저리 다니며 연신 까르르 웃는 모습들이 튄다. 그런데 대여섯 명씩 작은 무리를 지어 인사동을 마구 휘젓는 이 아이들 앞에 간곡한 ‘손대지 마시오.’는 가차없이 무너진다. 심지어 ‘손대지 마시오.’조차 너덜너덜하다. 정말이지 닥치는 대로 만지고 건드린다. 전시관의 사람들, 상점의 사람들은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아이들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이 도자기 같은 거나 유리 공예품 같은 걸 휘저을 때는 조마조마하다. 하긴 저 나이에 뭔 주눅들 일 있나, 오히려 그러면 큰일이지 하다가도 막상 아이들의 심한 모습에서는 저절로 혀를 차게 된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을 부모들이 그냥 놔두기만 하는 건 아니다. 가끔 제 엄마,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이내 그러다 말고, 아이들도 어깨를 잠깐 움츠릴 뿐 끝내 달라지는 건 없다. 또 어쩌다 자신의 아이들이 뭘 엎어버린다든지 하는 눈에 띄는 말썽이면 좀더 과장된 고함으로 갤러리나 상점의 사람들에의 송구함을 대신하고 만다. 버럭 소리치다 마는 부모, 잠깐 움츠리다 마는 아이들, 모처럼 마음 먹고 나선 나들인데 서로 피곤해할 거 없다는 듯하다. 그렇게 부모와 아이들은 전통과 문화의 거리, 주말의 인사동을 만끽한다.

따지고 보면 학교로 학원으로 꽉꽉 치이다가 모처럼 거리에 나선 그 천진한 아이들, 봄볕 따사로운 주말을 전통과 문화를 체험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하루를 알차게 하려는 부모들, 그들에게 이것저것 깐깐하게 들이대며 혀를 찰 건 없다. 그러나 혼내는 것과 가르치는 건 잘 살펴 구분해야 한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에게 고함치고 혼내는 게 곧 가르치는 일이라는 착각에 든다. 아이들에게 소리지르는 소영웅(小英雄)이 많을수록 그 민족에겐 희망이 없다는 루쉰(魯迅)의 말이 아니더라도 혼내는 건 가르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순백의 마음을 지녀서 어른들의 말과 가르침을 잘 알아듣고 따른다. 그 아이들에게는 차근차근한 타이름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모든 사물에도 격(物格)이 있어 사소한 것도 소중하게 해야 한다는 타이름이다. 사람에게 상처가 생기면 아프듯 사물도 흠이 나거나 깨지면 아파하고, 그것은 사람의 인격처럼 물격이 훼손당하는 것이라 차근차근 일러줘야 한다. 아이들이 뭔 말인지 못 알아들을 거라고 아이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렇게 깨우친 아이들은 사람들, 그리고 온갖 사물에 따스한 마음을 품게 되고 소중하게 여긴다. 그렇잖아도 뭐든 하찮게 여겨지게끔 하는 풍조나 환경이 점점 확산, 조성되는 요즘이다. 게임에선 죄 부수고 죽이며, 멀쩡한 물건들은 버려져 나뒹군다.

‘손은 글씨를 잊고, 눈은 그림을 잊었네. 돌에서 무얼 얻을 건가, 치(痴)와 벽(癖)이 으뜸이로다. (手忘書 ,眼忘畵. 何取石, 痴癖最)’ 이용휴(李用休)가 자신의 벼루에 새긴 연명(硯銘)이다. 이렇듯 옛사람들이 칼에도, 악기에도, 도장에도, 또는 부채 같은 사소한 것에도 명(銘)을 새겼던 것은 온갖 사물에 격을 부여해 더욱 아낀 까닭이다. 옛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떠오르는 인사동의 주말이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델타 지역 초등학교서 버지니아 사건 재연 논란 한인 학생 항의…학교•교육청 “학부모에 사과”
델타 사우스 파크 초등학교에서 드라마를 가르치고 있는 한 교사가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을 ‘타블로(tableau)’ 수업 소재로 삼았다가 논란이 일자 학부모들에게 사과했다. 타블로란 특정 장면을 사진처럼 재연하는 연극수업의 일부로 ‘프로즌 신(Frozen...
웨스트밴쿠버 존 웨스톤 후보
◇ 웨스트 밴쿠버 존 웨스톤 보수당 후보가 한인들과 만남의 시간에 앞서 김종설 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사제관계다. 웨스트밴쿠버 선거구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하는 존 웨스톤(John Weston) 후보는 21일 김종설태권도장에서 태권도복을 입고...
Skagit Valley Tulip Festival
세상 식물들이 태동을 하는 4월부터 피기 시작한 튤립의 아름다움이, 봄 막바지에 한 껏 달아오르며 시애틀로 오라며 유혹하고 있다. 올해로 24번째 개최되는 스카짓 밸리(Skagit Valley)튤립축제는 튤립이 피기 시작하는 매년 4월초 시작해 4월말에 끝난다. 축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주인공으로 한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The Last King of Scotland)’은 이디 아민의 주치의가 되면서 위험한 관계 속으로 빠져드는 한 스코틀랜드 의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갓 의과대학을 졸업한 니콜라스 개리건(제임스...
Fracture- 2007.04.23 (월)
이번 주말엔 개봉된 안소니 홉킨스,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프랙처(Fracture)’는  완전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한 검사간의 심리적을 다룬 스릴러 영화다. 엔지니어로 성공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테드 크로포드(안소니...
인사동의 아이들 2007.04.23 (월)
눈부시다, 바야흐로 염양춘(艶陽春)이다. 겨울을 모두 벗어낸 봄 짙은 주말, 인파의 인사동에 나갔다.
왜 한의학(漢醫學)이란 칭호가 한의학(韓醫學)으로 개명되었는가? (3)
한의학(漢醫學)이 ‘韓醫學’으로 개명된 동기와 ‘황제내경’ 오래 전 한국에서 한의학(漢醫學)이란 칭호가 韓醫學(한의학), 즉 한나라 한(漢)자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주는 한나라 한(韓)자로 개명된 사실이 있었다. 단순하게 한자 한 글자의 변형이 아닌,...
21일 써리에서 단독 리사이틀 열어 홈 스쿨링하며 바이올린 연습에 집중
뒤늦은 나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한인 여학생이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으며 두 번째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지난 99년 캐나다에 첫발을 디딘 빅토리아 김(한국명 김한솔)양은 남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인 10세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지만 주변의 도움과...
'랩존' 사우스 그랜빌점 김정무 장정화 대표
'랩존(WrapZone)’ 사우스 그랜빌점 대표 김정무씨는 ‘나도 이 나라에서는 초보자인데 누군가에게 조언을
국세청 “10명중 6명은 인터넷으로 신고”
2006년도 소득세 신고 마감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국세청은...
최고 8.6% 오를 수도...상업용 건물 재산세와 형평 문제 논란
밴쿠버시 주거용 재산세가 내년도에 8.6% 인상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밴쿠버 시의회는 지난달 평균 4% 재산세 인상을 이미 결의한 상태다. 여기에 기업체를 통해 충당되는 세수 중 2%를 주거용 재산세를 통해 충당하자는 제안이 시청 재산세 정책분석위원회를 통해...
VANOC, 상근직원·사전 자원봉사자 모집 중
밴쿠버동계올림픽위원회(VANOC)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기간 중 활동할 자원봉사자를 내년부터 모집할 예정이라고 19일 발표했다. VANOC는 ▲올림픽 개최 사전 봉사자 ▲올림픽 개최 기간 중 봉사자 ▲경기진행 봉사자로 나누어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주로...
법원 “절도범 붙잡아도 폭행하면 안돼”
BC주 고등법원은 17일 현장에서 붙잡힌 절도범에게 매장 직원이 부당한 폭력을 행사한 점을 들어 매장측이 절도범에게 1만2000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베인스씨는 2004년 9월 델타에 위치한 슈퍼스토어 매장에서 100달러 상당의 면도기날을 훔치려다가...
나만의 레서피 / 정현지씨(코퀴틀람 센터 거주) 락교, 오징어젓갈, 무장아찌...상큼, 깔끔 일식 밑반찬
언젠가 몸짱 정모모 아줌마가 온 대한민국 여자들의 기를 ‘팍’ 꺾더니, ‘쌩
삼계탕 전문점! 왕 삼계탕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 ‘왕 삼계탕’의 삼계탕은 그냥 삼계탕이 아니라 보약이다. 밴쿠버는 소고기 돼지고기 값에 비해 비싼 것이 닭값. 부화 된지 45일 된 ‘약 병아리’ 값은 그 중에서도 금값이다. 영계 중의 영계 ‘웅치’만을 사용해 삼계탕을...
어린이 카시트
어린이 카시트 사용, 제대로 하고 계시나요? 캐나다 사람들은 호들갑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로 아이들의 안전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번은 캐나다인과 함께 프로그램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캐나다인이 아이들이 먹을 포도를 준비하면서 포도 한 알을 4등분해서...
자녀 교육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일은 무엇일까? 영재교육과 독서 교육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전정재 박사는 교육적으로 가장 큰 세가지 비극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첫째, 능력이 있으면서 그 능력을 쓰지 못하는 일. 둘째, 머리가 있으면서 해내지 못하는 일,...
고교 졸업 후 전문직 진출을 돕는 지름길 대학교 1학년 과정 학점 취득도 가능
BC주 교육기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도제(Apprenticeship) 과정과 대학교 준비(Post-secondary Transition)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본다. 자신의 직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과 관련된 많은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기숙사신청·보증금 납부마감 반드시 확인
대학 원서 접수가 마감되고, 일찍 지원한 학생들의 합격 결과가 나오는 4월이다. 복잡할 수도 있는 대학 입학, 합격 통지를 받기까지 남은 절차를 알아보자. 인터넷으로 성적표 보낼 수 있어 성적표가 5월 중순경 각 대학으로 보내지기 전에 인터넷으로 스스로...
‘BC 중국어 말하기 대회’…캐나다인 참가자 많아
지난 15일 다운타운에 있는 ‘밴쿠버 공자 학원’에서 BC주 중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매년 밴쿠버에서 열리는 BC주 중국어 말하기 대회는 이곳 밴쿠버 중국 영사관 교육부에서 주최하는 것으로, 중국 이민자 어린이들의 말하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취지로...
 1461  1462  1463  1464  1465  1466  1467  1468  1469  1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