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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벼랑에 올라 천하를 바라보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4-26 00:00

獨登雷鳥臺眺望
나홀로 Thunderbird Ridge에 올라 천하를 굽어보며

松鷄山水冠溫城 그라우스 좋은 경치 밴쿠버에 빼어나니
策杖布衣尋仙登 지팡이든 백수 하나 신선 찾아 오른다네
涵虛玉淸白日輝 에메랄드 파란 하늘 태양은 눈부시고
萬頃低雲海峽盈 만이랑이 낮은 구름 넓은 해협 메웠구나
廻望千岑天際流 파노라마 수많은 산 하늘 끝에 흘러흘러
野興滿懷堪偃仰 야기로운 이내 흥취 드러누워 볼만하네
晴光欲滴一杯酒 한잔따른 이 술잔에 찬란한 빛 어리나니
乾坤不過一身容 저리넓은 천지라도 이 한몸에 불과하네

丁亥陽二月三日同伴皆因寒疾固辭獨登臺而有感梅軒暢吟
정해년 양 2월 1일 친구들이 모두 감기로 못 나오는 바람에 홀로 여기에 올라 느낀 바 있어
매헌은 화창한 마음으로 읊다.

처음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개 산행경험이 있고 또 산길을 잘아는 사람들을 따라나설 수밖에 없다. 밴쿠버는 도심을 에워싼 지근거리의 높은 산들이 즐비한 까닭에 산행인들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당일치기 코스가 중국식당의 식단표처럼 다양하다. 그러니 뒷동산에서부터 표고 1200m 이상의 수많은 영봉들을 탐사하는 산행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대부분 대낮에도 하늘을 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밀림 속이라 곰이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고, 표범의 일종인 쿠거가 으슥한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뒤에서 목덜미를 덮쳐 물 것 같아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공포감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겨우내 비가 내려 숲 속에 창궐하는 나무 이끼가 납량특집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여기저기 실타래같이 길게 드리워져 있으니 몸이 오싹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대부분 최소한 두세 명 정도는 되어야 입산할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곧 산행 클럽이 존재해야 할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필자도 8년 전 모 산행클럽의 애송이 회원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남들이 가니까 따라나선 ‘나이롱’ 주말 산행인으로 말이다. 과체중의 몸에 산을 오르면 숨만 차오르는 날 고생이라는 생각만 들뿐, 등산이 무엇이 좋아 저렇게 나서는지 도시 이해되지 않았다. 경사도가 가파르고 긴 난코스 산행길에선 너무 체력에 부치다 보니 다 때려치우고 금방 혼자라도 하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럭저럭 3-4년 따라다니다 보니 수십 개의 산행로를 완전히 숙지하게 되는 중견산행인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단독 산행을 간다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그러던 자신이 암이라는 복병을 만나 단독산행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수술 후 1년 가까이 계속된 항암치료(Chemotheraphy)라는 무차별 화공약품 폭격은 지독한 후유증을 동반하여 머리털이나 눈썹이 다 빠지고 손톱과 혀까지 까맣게 타들어가는 몰골로 만들었다. 구 산행클럽을 따라 산행을 나설까 하다가도 어쩐지 혐오감이나 위화감을 줄 것 같아 망설여졌으니 마치 소록도 나병환자의 심정을 이해할 만했다. 아무리 그간 산행을 통해 맺은 교분이두터운 산우들이라 해도 그들의 기분좋은 나들이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길거리보다는 주중에 인적이 없는 산행길을 나서면 그나마 지옥같은 마음이 평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간에 내가 축적한 산행로 숙지력이 그렇게 고마울 줄이야. 암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선 야생동물과 컴컴한 정글의 공포는 정신적 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오로지 거기엔 한 가련한 개체 생명체와 절대적 존재인 산과의 1대1의 만남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1대1의 만남에서 우리는 진정한 깨달음 얻는다. 결국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도 한 인격체와 예수님이라는 인격체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만나는 순간이 아니던가. 예수님과의 1대1의 개체적 만남(Personal encounter with Jesus)이 신앙의 모든 것이라 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산은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너는 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대단한 것 같다고 생각할 테지만 웃기지 마시게...이 산에 있는 나무나 풀 한 포기와 같은 존재란 말이야.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생노병사는 이 천지만물이 순응하는 기본이지."

갑자기 들려온 산의 나직한 음성을 들은 후 나는 이미 옛날의 내가 아니었다. 그 이후 내 시야에 다가온 모든 것들, 야생화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바윗돌 하나까지 신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 천지 만물은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혼이 들어 있다고 믿는 소위 물활론(物活論 animism)의 경지에 이른다고나 할까.

그 이후 나는 여럿이 올라가는 그룹 산행보다는 홀로 가는 외톨이 산행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내가 소속한 모 단체의 지인들을 모아 산행클럽을 결성하고 매주 안내하는 보람도 느끼며 산행하지만 나는 아직도 솔로 산행의 진국맛을 잊지 못한다. 솔로 산행을 즐길만치 좋아하는 산행인은 분명 산을 아는 사람임에 분명한 것이고 나아가서는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보아도 틀림없는 것이다. 공자도 말하지 않았나. '인을 아는 사람은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즐긴다(仁者樂山 智者樂水)’라고 말이다.

이날 나는 우리 산행클럽 멤버들이 모두 감기몸살로 고사하는 바람에 나 홀로 모처럼 단독산행의 행운(?)이 굴러들어와 쾌청한 태양아래 펼쳐진 댐 마운틴 일대의 설원과 조지아 해협을 가득 메운 운해를 바라보는 엄청난 감동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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