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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의 배우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4-30 00:00

사람들은 간혹 세상을 가리켜 커다란 무대(舞臺)라 하고, 그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역할을 가진 배우라 비유한다. 그래서 한 세상 사는 게 한편의 연극과도 같단다. 보기에 따라서 부정과 긍정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비유일수도 있고, 해석도 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다지 억지스런 건 아니지 싶다. 일찍이 스따니슬라브스끼(1863-1938, 러시아의 연극연출가, 연극이론가)는 작은 역할은 없다, 다만 작은 배우가 있을 뿐이다, 라며 사람마다 갖는 세상에서의 역할이 모두 귀함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살아내느냐의 문제일 뿐.

원초적인 배우(俳優)의 입장과 역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사장(祭司長)이었다. 그들은 신과 인간을 교감하게 하는 중계자인 동시에 제사의 형식을 구축하는 연출자였으며, 사람들에겐 위안의 말을 건네는 지도자였다. 배우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또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시(詩)를 사용했으며, 때로는 노래를, 때로는 몸의 움직임(무용)을 썼다. 이러한 배우들의 여러 도구들을 공통적으로 꿰뚫는 핵심은 언어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설(說)이나 경(經)과 같은 인류의 모든 인문학적 성취의 정점에는 변함없이 말(言)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은 무대, 사람들을 곧 배우라는 비유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배우의 핵심에 해당되는 건 각자가 지닌 고유의 말(言)이다. 그 어떤 배역의 배우라도 자신만이 갖는 자신만의 말이 있다. 세상을 살아내는 배우들은 자신의 성장배경, 공부와 깨달음, 또는 희열과 좌절 같은 경험을 통해서 자신마다의 독특한 언어를 구축해 나간다. 배우의 애씀이 향하는 방향에서, 자신이 내리는 삶의 총체적 귀결은 곧 그 배우의 언어가 된다. 배우의 언어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소통하는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며, 배우의 존재 그 자체다.

배우들에게는 강호(江湖)에 있기보다는 강단(講壇)으로 나아가려는 본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점점 강호와 강단의 구분이 애매해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알아주는 이 적고 험하기 그지없는 강호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기 보다는 강단의 울타리에 보호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배우가 되려 한다. 또한 강단의 배우가 되기 위해선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 험난한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공유하면서 강호보다 훨씬 좁은 문을 통과해 강단에 든 배우들은 서로의 연대감(連帶感)이 강하고 따라서 외로움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것은 강단의 배우들이 강호로 이동했을 때 필연적으로 의심하게 되는 자생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강호의 배우들은 홀로 버터야 하며 고독을 온전히 떠안아 감수해야 한다.

물론 강호에 머무는 배우들이 강단 진입에 낙오했음을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니다. 또한 이 시대에 있어 강호와 강단을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전통적 의미와는 사뭇 달라진 이 시대의 강호와 강단은 배우가 품은 언어가 지향하는 바에 의해서 선택되는 결과다. 거기에 고독이 자리한다. 누구와 견주어지기 힘든 가운데, 언어와 언어가 만나지지 못하는 가운데 무게를 더하는 것이 고독의 생리다. 고독의 언어를 선택한 배우들은 강호에 남는다. 강호에 머물기를 선택한 배우들은 강단을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강호의 거칠함과 생존의 법칙에 매력을 느껴 몸을 던진다. 또 언제 어디서 어떤 고수(高手)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예상을 불허하는 고수와의 조우(遭遇)는 강호의 배우들을 흥분시킨다.

이판(理判), 사판(事判) 모두 결여된 나는 때때로 자신의 언어가 지닌 힘과 깊이에 항상 회의하며 산천을 주유하는 강호의 배우들, 도시의 구석에서 깊고 무거운 고독을 안은 채로도 번뜩이는 안광(眼光)을 잃지 않는 강호의 배우들을 보면서 전율을 느낀다. 외형으로는 열린 사회와 평등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현대사회는 점점 두터운 편견과 기울어진 가치척도를 비공식적으로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는 수많은 강호의 배우들이 명멸하면서 무대는 더욱 빛을 발해온 게 사실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언어를 깊은 고독으로 꽁꽁 싸맨 채 강호를 살다간, 또 강호의 지금을 사는 모든 무명배우들에게 머리 숙인다.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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