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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합(野合)의 계절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5-05 00:00

야합(野合)은 참으로 고약한 말이지만 두 글자를 따로 떼어 하나씩 놓고 보면 의미도 느낌도 완전히 다르다. ‘야(野)’ 앞에서는 넘실거리는 생명력, 끝간 데 없는 자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원초적 질서 같은 정서가 생성된다. ‘합(合)’을 앞에 두고는 예사롭지 않은 만남, 서로 충돌하지 않고 빚는 새로운 조화,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은, 또는 따돌림이 없는 따위의 든든함이 생성된다. 그런데 이토록 좋은 두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왜 서로가 만나는 순간 변질되는 것인지 그 까닭이 아리송하다. 좋은 것에 좋은 것을 보태면 더욱 좋은 것이 이치일 텐데.

둘 또는 세 글자가 포개져서 만들어진 한 단어가 고약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 그 중의 한 글자 정도는 이미 고약함을 암시하거나 품고 있는 게 대부분인데, 야합은 그렇지가 않다. 한 자씩 봐서는 전혀 어떤 낌새도 알아차릴 수 없다. 그 좋은 ‘야’와 ‘합’이 순식간에 돌변해서 ‘야합’이 된다. ‘야’와 ‘합’만 가지고는 도저히 추출할 수 없는 ‘야합’의 의미가 형성된 데에는 그에 대한 오랜 관념 또는 오래 전의 어떤 연유에 의해서 일 것이다.

2,500여 년 전의 중국 노(魯)나라 곡부(曲阜)에 성(姓)은 공(孔)이요, 명(名)은 흘(紇)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본디 장수(將帥)를 지냈던 사람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호탕한 사람이었다. 공흘은 본처 시(施)씨와의 사이에 모두 딸만 아홉을 두어 평소 아들을 소원하다가 첩을 들여 끝내 아들을 얻으니 맹피(孟皮)다. 하지만 맹피는 태어날 때부터 불구로 태어나고 그나마 어려서 그만 죽고 만다. 세월이 지나 칠순을 바라보는 공흘에게 아쉬운 게 있다면 다만 아들 하나 두는 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평소 공흘의 인품을 높이 사던 유지 안(顔)씨가 자신의 어린 세 딸 중의 하나를 공흘에게 보내기로 마음먹고 딸들에게 의사를 물어보니 막내딸 징재(徵在)만이 그러겠다, 한다. 이렇게 칠순에 가까운 공흘과 이제 겨우 열여섯 살 무렵의 안징재(顔徵在)는 혼인하여 아들을 하나 얻으니 바로 그 유명한 공자(孔子, 이름은 구(丘), 자(字)는 중니(仲尼))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는 공자의 탄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世家 第17 孔子世家). 숙량흘(叔梁紇, 숙량은 공흘의 자(字))은 안씨의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라는 내용인데, 공자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을 ‘야합’이라 적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던 2,100여 년 전의 사회에서의 ‘야합’의 용례(用例)를 정확인 가릴 순 없으니 정확한 해석도 어려운 일이다. 말 그대로 하여 들판에서 정을 통한다, 라는 뜻으로, 또는 정식으로 혼례를 치르지 않은 남녀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추해석 되다 보니 공자의 출생에 대하여 여러 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당대(唐代)의 張守節(장수절)은 자신이 쓴 ‘사기’ 해석서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야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린다. 남자는 태어나서 여덟 달이면 이(乳齒)가 나고, 여덟 살이 되어서는 간니(永久齒)가 나기 시작하니, 8과 8을 합한 열 여섯 살 무렵에 양도(陽道)가 형성되어 통(通)하다가, 8과 8을 곱한 나이, 즉 육십 대 중반에 이르면 양도가 소멸한다, 하였고, 여자의 경우는 생후 일곱 달과 일곱 살 무렵에 젖니가 나고 간니가 나니, 7에 7을 더한 열네 살이면 음도(陰道)가 통하기 시작해서 7과 7을 곱한 나이 마흔 아홉에 이르러 음도 가 모두 단절 된다. 이를 벗어난 연령의 혼인을 가리켜 ‘야합’이라 한다, 고 해석했다.

말하자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나이의 혼인을 가리켜 ‘야합’이라 했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과 징재 사이에서는 공자가 태어났으니 참 비범한 일이라 하겠다. 이러한 연유를 지닌 ‘야’와 ‘합’은 유구한 세월을 거듭하면서 애초의 쓰임새보다 고약한 면이 더욱 강조되고 의미 또한 더욱 확대되어 지금의 ‘야합’에 이르고 있다. 이제 ‘야합’은 그 좋은 ‘야’와 ‘합’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아무튼 이 시대의 ‘야합’은 2,500여 년 전의 ‘야합’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아주 고약한 썩은 내를 풍긴다. 부적절하게 통하고 부적절하게 다가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신념과 원칙은 도처에 팽개쳐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야합’은 더욱 기승이다. 착한 사람들이 코를 틀어막고 진저리 치는, 썩은 내 진동하는 야합의 계절은 이윽고 또 오는가. 아니, 이미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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