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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잘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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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7-05-22 00:00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또는 불이익과 권리침해로 고통 받는 집단과 계층은 늘 있어왔고, 그 역사도 아주 오래되었다. 어제의 약자(弱者)와 오늘의 약자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을 뿐 인간사회 안에서 약자는 늘 있어왔다. 지금과 같은 개명천지에도 음습한 곳으로 내몰리는 그런 사람들이 또 있을까마는, 해도, 엄연히 있다. 성숙하고 안정된 사회로 나아갈수록 소외계층을 아우르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활발하긴 하지만 그것은 곧 소외계층은 항상 있게 마련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또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핍박과 편견에 고통 받는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최근 국제 아동 지원 단체인 플랜 인터내셔널은 지금도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매년 1억 여명의 여아가 낙태에 의해서 또는 출생직후 사망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보고서의 제목부터 ‘Because I’m a Girl.’이라니 더 할 말이 없다. 오늘날과 같이 개명한 대명천지에서도 여성들의 쓰라린 수난사(受難史)는 계속 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여권(女權)은 참담한 길을 걸어왔다. 조선시대의 여성의 지위는 비교적 당당하던 초기를 지내고 중기를 넘어 후기에 이르면서 짙은 암흑에 빠져든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휩쓸어버린 조선 후기 사회에서의 여성들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맹위에 신음해야 했다. 그 후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혼란기, 한국전쟁 등의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한국사회는 좀처럼 여성들을 향한 완고한 시선을 버리지 않았다.

물론 근래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그때와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지만, 아직도 여성수난의 흔적은 곳곳에 얄팍한 페미니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가 극단적 페미니즘을 표방하면서 오히려 고유의 여성성(女性性)과 여성성의 존귀함이 훼손당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때가 있다. 얄팍한 페미니즘의 구호가 극렬해지면 상대적 지위, 양성(兩性)의 본능적,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혼란이 야기되는 수가 있고, 이는 여권신장의 의식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진다.

거창한 구호와 이데올로기는 배제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상대에게 가장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첩경은 진심으로 상대의 입장이 되어본다든지, 상대의 고통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식과 위선이 아닌 다음에야 이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조선후기, 오히려 신분의 차별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욱 극심하여 여성의 짓눌림이 자욱하던 시대에 문제적 지식인 이옥(李鈺. 1760-1813 호는 문무자(文無子), 매사(梅史))이 있다.

그는 문인을 자처하며 평생을 지냈는데, 섬세한 묘사와 여성적 정감이 짙은 소품(小品)에 특히 뛰어났다. 당시 사대부들의 전통적 글쓰기에 대항하여, 관념이 된 자연이 아니라 구체적 사물과 현실에 주목했던 소설식 문체구사로 인하여 이옥은 임금(正祖)에게 내쳐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정조와 이옥의 대립은 조선후기 문학사의 큰 사건인 문체반정(文體反正)의 핵심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진정으로 여성의 입장이 되어 여성을 노래한 이옥의 연작시 ‘이언(俚諺)’은 그가 추구했던 인정물태(人情物態)의 문학관의 절정을 이룬다.

아조(雅調), 염조(艶調), 탕조(宕調), 비조(渄調)의 각 조마다 십 여수씩, 모두 65수로 엮은 ‘이언’을 통해 거창한 구호 없이 진정으로 핍박 속의 여성에게 다가가는 이옥의 ‘사람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문체 또한 당시풍(唐詩風)에서 탈피한 민요풍(民謠風)으로 하여 아예 거만함을 떨쳐낸, ‘사람사랑’을 실천한 문학의 힘을 느끼게 한다. 여성 불평등, 여성 수난 등이 불거질 때면 거창한 구호나 이데올로기의 동원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이미 200여 년 전의 문제적 인간 이옥의 목소리를 듣는다.

四更起掃頭, 五更候公姥

誓將歸家後, 不食眠日午 (‘俚諺’ 雅調 其七)

‘이른 새벽에 일어나 머리 빗고, 새벽같이 시부모께 문안 올렸지요.

이담에 친정에 들르면, 먹지도 않고 한낮이 되도록 잠만 잘래요.’

*필자 김기승은 1979년부터 극단76극장, 극단 실험극장, 환 퍼포먼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오기 직전 PMC 프로덕션 등을 중심으로 공연계에서 활동했고 연극, 뮤지컬, 영화, 콘서트, 라디오 등 100여 편의 작품들에서 연기, 연출, 극작, 기획 등을 맡아왔습니다. 제목 '추조람경'(秋朝覽鏡)은 당(唐)나라 설직(薛稷)이 쓴 시의 제목으로, 제자(題字)는 필자가 직접 썼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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