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홀리번 산상 잔치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5-24 00:00

홀리번 산상에서 잔치를 벌이다

元宵節登虎盤山而有酒宴
대보름날 홀리번산상에서 술판을 벌이다

春來山上不似春 새봄이 왔다지만 산위엔 봄 아니라
宿雪二丈新雪添 묵은 눈이 두길인데 새 눈이 더하누나
凝華千樹又萬樹 천그루 눈꽃이며 만그루 눈꽃인데
眼豁西南萬里天 서남쪽에 눈돌리니 만리하늘 열리었네
霞佩相隨疑方外 안개구름 거느리니 이세상이 아니어서
佳肴仙酒陳瓊宴 신선주에 좋은 안주 잔칫상을 차린다네
詩成片雪無心處 눈 조각에 시를 쓰니 이내 마음 허허로워
祗今心迹誰能辨 지금의 이내 심정 그 누구가 헤아릴까

歲在丁亥元宵之日與二人登虎盤山而有宴梅軒痛飮之中題詩
정해년 대보름날 두 사람과 함께 홀리번산에 올라 잔칫상을 차리고 통쾌히 마시는 중 매헌은 시를 짓다.

필자는 술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떨어져 옛날처럼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젊은 시절 한때는 두주불사할만치 호음(豪飮)했고 더러는 인사불성이 될만치 폭음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간에서 분비되지 않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는가 하면, 맥주같이 도수가 약한 술은 아무리 마셔도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생래적(生來的) 애주가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니 술을 마실 수 있는 능력은 아무래도 '조상 탓'이지 싶다.

나에게 한학을 가르쳐 주신 조부님은 엄청난 애주가셨다. 지리산 오지에서 서당을 운영하시고 음풍농월하시는 묵객이셨으니 매일같이 찾아오는 문객, 주붕(酒朋)들과 술판을 벌이셨으니, 없는 살림에 우리 어머님은 시아버지의 술상 뒷바라지에 막말로 죽을 맛이셨다. 어린 시절 나는 매일같이 주전자 들고 동네 주막에 가서 외상 막걸리 사오는 조부님의 애제자겸 전속 주동(酒童)이었으니 말이다. 고향인 안의 면장을 지내셨던 아버님은 효성이 지극하시어 오뉴월이면 귀한 청매실을 구해 두 말 들이 막소주 옹기에 넣어 매실주를 담가 할아버님께 진상하셨다. 따라 잡수시기에 편리하도록 아예 플라스틱 호스까지 옹기에 장착하는 편리까지 고안한 기억이 있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안주가 부실하면 수업을 중단하고 열댓 명 되던 제자들을 천렵에 비상동원하여 쏘가리와 메기를 한 양동이 잡아오면 안주 문제가 거뜬히 해결되었다.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셨으니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법. 재래식 뒷간은 늘 혈변이 고여있어 제자들 사이엔 훈장님의 별명이 ‘피똥’으로 통했었다. 필자도 암으로 진단되기 전 한 5년간 혈변 증상이 있었는데 대장암 예후로 의심치 않고 할아버지처럼 술을 마신 결과라고 판단해버렸으니 나의 대장암도 따지고 보면 '조상 탓'으로 돌린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마 그때 예후를 의심하여 병원을 찾아가 암의 초기단계인 용종(polyp)을 제거했다면 충분히 사전치료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만시지탄(晩時之嘆)에 지금도 쓴 웃음이 나온다. 그럭저럭 대장을 50cm나 절단하고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대책없는 술생각은 어쩔 수 없었는지 담당 암전문의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술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나는 물었다. “과연 차후 음주행위가 암의 재발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한국계 의사인 Y박사는 담담하게 “술이 암을 유발한다는 일반적인 통념(myth)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으므로 마셔도 된다”고 말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독자들은 필자를 미친 놈이요 죽으려고 환장한 사람이라고 매도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의 말은 복음(福音)에 필적할만한 '기쁜 소식'이었던 점만큼은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은 나에게 건강을 해치는 독이기에 앞서 자유이며 이상일 수 있다. 힘들고 따분한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그래도 술 한잔하는 맛이 있어야 살맛이 나는 것이다. 나는 금욕주의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살고 싶을 뿐이요,술을 절제하며 건강을 지켜 장수하기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從心所欲) 먹고 마시며 생을 즐기는 낙천주의자로 살되, 다만 그 도를 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충분한 것이다. 어차피 암의 공포에서 벗어나 덤으로 살고 있는 인생이니 이것 저것 따져서 무엇하랴.

내 어찌 감히 주선(酒仙) 이태백을 들먹거리리요마는 필자는 이태백의 그 호방한 자유를 부러워한다. 그의 장진주(將進酒)라는 악부시(樂府詩)를 나는 참으로 사랑하며 애송한다.

"그대 보지 않았나 황하강이 하늘끝에서 발원하여(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앞다투어 바다로 흘러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奔流到海不復回)? 그대 보지 않았나 귀족들이 거울에 비친 백발을 한탄하길(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 아침에 검은 머리 저녁에는 눈같더라는 말을!(朝如靑絲暮成雪) 인생이란 뜻을 알면 지금을 즐기는 것(人生得意須盡歡) 술통을 비워두고 밝은 달을 대할손가(莫使金樽空對月)…(하략)"

세인들이 이백을 천재 시인이요 주선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술을 엄청 마셔가며 읊은 즉흥시가 나올 수 있는 즉물적(卽物的) 즉자성(卽自性: spontaneity)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참으로 정신적 자유를 생명보다 더 귀한 보배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 5행의 '인생득의수진환'에서 득의(得意)란 이백만이 누릴 수 있었던 '영혼의 자유'임을 그 누가 부인하랴. 당현종의 총애를 받고 양귀비가 벼루를 받쳐들고 시중들고 요즘말로 당현종의 비서실장격인 고력사로 하여금 신발을 벗기게 하는 출세가 절대로 이백이 말한 '득의'는 아닌 것이다. 그는 지나온 과거가 아무리 휘황찬란해도, 다가올 미래가 아무리 장밋빛이라 해도 모두 환상에 불과할 뿐,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here and now)을 치열하게 사는 것일 뿐이란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보통사람인 것이다.

이날 우리 일행은 서설이 펄펄 내리는 영하의 홀리번 정상에서 K라는 여성대원이 가져온 멍게회와 하마찌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복분자를 즐기니 제왕이 부럽지 않은 호방한 행복감에 젖어 들고 있었던 것이다. 힘든 산행 후 정상에서 마시는 한잔 술을 어찌 저 아래 속세의 룸싸롱에서 지저분하게 마시는 술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산행 후 마시는 술은 격조있는 술이니 어찌 독이 될 수 있으리요. 우리는 이백처럼 호방한 자유를 통째로 들이키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여 오늘을 열심히 치열하게 살자! 일이든, 사업이든, 공부든, 산행이든 지금 현재가 제일 중요한 것이리니!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Evan Almighty
이번 주말 개봉되는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는 짐 캐리가 주연했던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2003년)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코미디 영화다. 성서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패러디한 ‘에반 올마이티’는 신의 부름을 받은 주인공 에반이...
CUPE 노조원 파업 결의
쓰레기 운반과 처리, 상하수도 및 공원 관리 등을 맡고 있는 밴쿠버 외근직 노조원들이 전면 파업에 들어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1일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한 밴쿠버 외근직 CUPE 노조원들은 투표 참가자의 96%에 달하는 지지로 파업을 결의했다. 만약 2000명에...
23일까지 밴쿠버해양박물관에서 기념 행사
밴쿠버 인근 해안을 측량해 지도를 작성한 조지 밴쿠버 선장(Captain George Vancouver) 탄생 250주년 기념 행사가 22일 밴쿠버해양박물관에서 열렸다. 샘 설리반 밴쿠버 시장은 밴쿠버 선장의 탄생일을 ‘조지의 날’로 선포하고 캐나다 포스트가 제작한 밴쿠버 선장 기념...
지난해 대한민국을 후끈 달궜던 그 바다…… 또 그 이야기? 지난 5월 20일 소리 소문 없이 슬며시 밴쿠버에 등장한 ‘바다이야기’. 이 집을 추천한 독자는 은정이 엄마, 윤주 엄마라고 밝힌 주부들. 어지간한 맛에는 눈도 깜빡 하지 않을 20년 차 ‘가정요리사’들이...
바다와 산, 노을이 아름다운 버나비 마운틴 파크
버나비 마운틴은 밴쿠버 시내에서 인렛의 아름다운 바다와 밴쿠버 전경과 야경을 한눈에
BC복권공사, 당첨금 사기 의혹 대책 마련
앞으로 BC주에서 복권을 판매하려면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할 전망이다. 캐나다 통신은 BC복권공사가 복권 사업 관리를 개선해야 한다는 짐 카터 BC주 행정감찰관의 권고안을 수용, 복권판매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인증을 제공하는 과정을 도입할 방침이라고...
호준(초등 3년, 9세)이는 만 두 살부터 영재교육과 각종 사교육을 받아왔다고 한다. 지능검사 결과 IQ 138 로 매우 뛰어난 아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산만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교육 학습을 거부하고 학습흥미도 잃은 상태이며, 부모에게는 정서적으로 좌절감과...
제 2회 영어 창의적 글쓰기 대회를 돌아보며
캐나다 거주 한국계 청소년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자유롭게 글로 표현되고 격려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 ‘어린이를 위한 창의적 글쓰기 사회(Creative Writing for Children Society)’가 주최하고 밴쿠버 조선일보 및 많은 한인단체들이 후원한 ‘제 2회 영어 창의적...
청소년을 위한 ‘Royal Canadian Cadets’ 프로그램 학기 중 일주일에 하루… 여름에 2~6주간 특별훈련
‘로얄 캐네디언 카뎃(Royal Canadian Cadets)’은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생도 프로그램으로 12세부터 18세까지의 청소년들이 도전적이고 가치있는 활동과 훈련을 체험하고 캐나다군에 대해
자신의 처지와 성적에 맞는 튜터 골라야 튜터를 통해 고기 잡는 법 배우는 것이 중요
사례 1. 버나비 세컨더리 11학년에 재학중인 아들을 둔 김명숙(가명)씨는 얼마전 받아든 아들의 학기말 성적표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캐나다로 이민온지 4년밖에 되지않아 평소 영어에 어려움을 겪던 아들의 요구로 시간당 30달러짜리‘에세이...
행사의 중심에서-Alcan Dragon Boat Festival
지난 16일과 17일 밴쿠버 다운타운 펄스 크릭에서는 알칸 드래곤 보트 페스티발(Alcan Dragon Boat Festival)이 열려 백 여개의 팀과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행사를 즐겼다. 올해로 19번째를 맞는 이 행사는 다채로운 음악과 공연, 음식, 놀이문화 등을 통해 캐나다에서의...
‘복합문화 행사’23일 써리에서 열려 옵션스·PICS·석세스 등 공동 주최 다양한 정보·풍성한 볼거리 제공
다양한 기관과 단체에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간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제 2회 복합문화 축제(Multicultural Resource Fair)가 23일 써리 플릿우드 커뮤니티 센터(Fleetwood Community Centre)에서 열린다. 이민자봉사단체 옵션스,...
登麟峯坐思Lynn Peak 정상에 올라 사색함 乾坤爲吾居 하늘과 땅을 나의 집으로 삼으니何論是與非 시비를 가려서 무엇하는가.生也本澹泊 사람이 태어날땐 담박했으나外物作萬機 바깥 사물에 온갖 번뇌를 짓는다浮生空自忙 덧없는 인생들은 부질없이...
한국시장자문단, 11개 권고안 담은 보고서 제출
BC주정부 정책자문기관인 아시아태평양무역카운슬 산하 한국시장자문단이 11개 권고안을...
직업 준비 프로그램 적극 지원
BC 주정부가 장애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커뮤니티 구직서비스 3곳에 총 1600만달러를...
학비 융자금 탕감 혜택
BC주정부가 입주 간병인 양성 프로그램에 총 900만달러를 지원한다. 메레이 콜 BC주 고등교육부 장관은...
BC주정부 캠페인 시작
BC주정부는 “식사를 가족과 함께” 하라는 ‘eat together’ 캠페인을 시작했다. 함께 식사할 것을...
골든이글 수로에서 잡은 잉어와 밴피싱 회원 ‘자손’님의 차남 Eric 지난 5월 11일 저녘 7시경 필자와 필자의 조우들이 한국으로 한동안 가 있어야 할 낚시동호회 “밴피싱” 전임 방장인 “밴낚시”님의 환송 모임을 겸해서 핏미도우(Pitt Meadow)에 위치한...
신포우리만두
속 터져! 속 터져! 신포우리만두 취재는 ‘이 집 이 맛’ 지면을 기획하고 35번째 음식점. “놀면서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월급 받고, 무슨 팔자가 그리 좋으냐”고 물으면 속 터진다. “맛있는 집이라 해서 갔더니 맛 없더라”하면 더 속 터진다. 그때 마다 “밴쿠버...
밴쿠버 웨스트 지역 한인 구두, 가방 수선 집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선물이나 기억에 남을 만한 기념비 적인 의미를 담은 애장품이 아니라 해도, 모서리가 ‘나달나달’해 지도록 절대 버리고 싶지 않은 애착이 가는 가방이 있는 가 하면, 벗어 놓았을 때 가죽구두가 고무신처럼 말랑말랑하게 낡은 구두도...
 1451  1452  1453  1454  1455  1456  1457  1458  1459  1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