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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행복하면 그만”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07-19 00:00

과거 이 분야 전문가, 특별한 과거 "왕년에..." 前 펜싱 국가대표선수/ 現 Kook’s 조경 대표 국중금씨

◇밴쿠버 문화원에서 학생들에게 다시 펜싱을 가르치고 있는 국중금씨.

◇ 국가대표선수시절 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수상한 직후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 키가 큰 선수가 국중금씨.

예순이 가까운 나이, 굉장히‘중년 혹은 노년 틱’할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검객’국중금씨의 첫 인상은, 184cm의 큰 키에 군살 한 점 없는 탄탄한 몸집이다.

당장이라도 칼을 잡으면 국가대표 선수로 뛰던 현역시절 그 ‘국중금 선수’로 돌아갈 것만 같다. 빙긋 웃는 저 웃음 뒤 어딘가에 숨어 있을 듯한 차가움. 그러나 인터뷰가 계속 될수록 ‘냉혹함’보다 인간적인 ‘따뜻함’ 그리고 순수함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 국중금…

7월3일은 국중금씨에겐 뜻 깊은 날이다. 12년 만에 밴쿠버가정문화원에서 어린 꿈나무들과 교민들을 대상으로 지도할 칼을 닦고, 옷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도복을 꺼내 다시 입은 날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던 그를 이끌어 내는 데는 긴말이 필요치 않았다. ‘펜싱 이야기를 하자’ 한마디면, 신들려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를 타는 사람처럼, 가슴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열기가 눈빛에서 멈춰 서는 사람. 펜싱 전 국가대표선수 국중금씨.

12년 전, 외국에서 검을 잡을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도 독하게 마음먹고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막상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이곳에서 오히려 열망은 더 강해져, 펜싱인을 찾아 밴쿠버 바닥을 뒤지고 다닌 적도 있었다. 펜싱의 빈자리를 탁구와 등산으로 채우며 몰두했지만 한 순간도 펜싱을 잊고 산 적이 없었다. 

◆ 펜싱과 인연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국중금씨가 처음 펜싱을 시작한 것은 서울 홍익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올림픽 첫 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펜싱은 스포츠로서 종주국인 일본과 서구에서는 이미 보급된 인기스포츠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184cm의 큰 키로 어릴 때부터 또래들에 비해 운동신경이 좀 발달했던 편이었어요. 그래서 펜싱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를 찾다가 지금 성북고등학교의 전신인 홍익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했죠.”

일본선수들과 친선경기만 해도 대단하던 그때 전국 대회를 휩쓸며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그는, 비인기종목이라는 외면과 체육회마저 홀대하던 상황에서도 출전하는 대회마다 칼끝에서 메달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개인적인 성취감 외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나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가족들 외 크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지만 행복했다.

“스포츠 하는 사람들은 승부에 집착은 해도 그 외 다른 욕심은 없어요. 단순하다고 하잖아요. 기술은 날카롭고 치밀하게 구사해야 하지만 마음은 비우고 단순해야 또 잘 할 수 있는 게 이 운동이죠.”

◆ 평생 비수가 된 대대장의 한마디

그는 상대의 움직임에 대한 통제, 투쟁심과 자제력, 신체의 집중력, 순발력에 정교한 기술이 잘 조화되어 미학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는 펜싱 국가대표선수로 또 YMCA 지도자를 겸했다. 대학을 다니다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서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몸을 다지며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대회공문을 받은 대대장은 ‘육군본부’에서 발송하지 않고 ‘체육회’에서 발송했다는 이유를 들어 출전기회를 주지 않으려 했고, 애걸에 가까운 사정을 해서 출전 하루 전날 밤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강원도 인제에서 서울로 달려 간 다음날 아침이 시합이었다. 

“매일 운동하고 연습해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서 입상하지 못하는데, 몇 달 동안 한번도 칼을 잡지 않았으니 장담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더 악착같이 했어요.”

그날 대회에서 그는 5승을 하고 복귀했다. 메달과 상장을 받아 든 대대장은 그에게 평생 상처로 남은 한마디를 던졌다.

“한참을 만지작 만지작 하더니 ‘이번 시합은 못하는 사람만 나왔나 보네’ 하더군요. 차라리 아무 말을 하지 말지. 지금이라도 만나서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비 인기종목으로 체육회에서조차 홀대받긴 했어도 이날처럼 섭섭하지는 않았다고.

◆ 78년 방콕아시안 게임 후 은퇴, 광주 수피아여고 부임

그는 78년 방콕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두 개의 메달을 거머 쥔 다음 당당하게 은퇴했다. 이후 광주 수피아여고 체육교사로 부임,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펜싱과 인연을 맺은 지 17년만의 일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는 있으나 마나 했어요. 체육시간을 영어 수학 과목에 할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교와 타협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시간만큼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고 달리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공부가 더 잘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죠.”

학교에서는 만약 아이들의 진학률이 낮아지면 ‘책임지라’고 까지 했다. 다행히 진학률은 더 높아졌지만, 입시위주로만 운영되는 우리나라 교육방식에 맞서는 그와 학교의 갈등 때문에 무척 힘든 교직생활이었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운동장 구석구석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어 물을 주면서 일주일에 한 시간, 두 시간 주어지는 체육시간에는 아이들과 마음껏 뛰며 이겨냈죠. 운동장은 내게 교실이잖아요. 내가 심은 활짝 핀 꽃을 보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정말 행복했어요.”

타고난 조경사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 그는 운동장을 가꾸는 일로 힘든 시간을 극복했다. 그러나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가르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학교의 입시위주 정책에 무조건 따라야 하고, 가장 폐쇄적이면서 수동적인 직장이 학교라는 사실에 회의를 느껴 사표를 던졌다. 94년이었다.
 
◆ 현재 그는…

95년 이민을 온 후 12여 년 만에 밴쿠버 문화원에서 다시 칼을 잡고 학생들 앞에 선 그는, 여전히 멋진 포즈와 현란한 풋워크의 녹슬지 않는 칼 놀림을 보여주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칼을 휘두르며 피스트(펜싱 경기용 매트)위에서 신명 나게 일본 최고의 선수를 무릎 꿇리던 국가대표선수로 다시 복귀한 듯 하다. 현역시절보다 멋진 풍모마저 느껴진다. 마치 ‘어떻게 다시 잡은 칼인데’ 외침인 듯 칼 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는 현재, 국가대표선수시절 전지훈련과 세계대회를 다니며 언젠가 살아보고 싶었던 밴쿠버에서, 좋아하는 나무와 꽃을 심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조경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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