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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나의 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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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7-07-26 00:00

나의 스승, 나의 조부 송산 정재혁

登西馬山望菲江
쑤마산에 올라 프레이저 강을 바라보며

一身閑適自隨意 한가한 몸이라서 마음대로 길나서니
滿目春光客愁迷 온산누리 봄경치에 이내 시름 끝이 없네
谷轉山圍一逕遙 산과 계곡 돌고 돌아 오솔길은 멀고먼데
沿徑芳草新薇肥 길섶엔 기화요초 고사리는 새 살 불어
春風幽林野花潔 그윽한 숲 봄바람에 야생화는 저리 곱고
淸和天氣宜詩思 화사롭고 맑 은날씨 시 생각이 절로 나네
行身世路愧無謀 허송세월 나의 인생 부끄러이 생각하니
菲江不盡入海時 프레이저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가나

丁亥陽五月三日與三人登西馬山有懷梅軒偶吟
정해년 5월 3일 세 사람과 함께 Suma Mt.에 올라 프레이저 강을 바라보며 소회가 있어 매헌은 우연히 읊다.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와 쌍계사가 지척에 있는 청학동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원래는 서양의 신문명에 거부감을 느낀 일부 향로(鄕老)들이 전통유도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갱정유도'(更正儒道)정신으로 세운 선비들의 폐쇄적 은둔처요, 현대문명의 사각지대였던 것이 요즘은 전국의 조무래기들의 코흘린 돈을 긁어 모으기 위한 2박3일의 관광명소로 전락한 느낌이 없지 않다. 청학동이 이처럼 희소가치의 성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서당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타임캡슐로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일 터이지만, 필자가 코흘리개 시절인 50년대와 60년대 초반까지, 적어도 이쪽의 지리산 오지지역은 서당문화가 엄연히 건재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한반도의 문화교류 여건상, 이북 서도지역과 남한의 기호지방이 중국과 인접해 있던 까닭에 역사적으로 신문화 수입의 개화가 빨랐지만 유독 한반도 남동쪽 구석에 위치한 옛 신라지역이 비교적 문화적 후진성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이치와 맥을 같이한다. 불교의 전래가 고구려나 백제보다 신라가 한참 뒤진 사실이나, 천주교를 필두로 이 땅에 들어온 서양문명이 추풍령과 소백산맥 이남지역을 풍미하는데도 지연될 수밖에 없는 지리적 고립의 그 유비관계에서 나는 청학동의 존재를 이해한다. 지리산 공비토벌로 카빈소총을 멘 전투경찰들이 우리 마을에 진을 치고 있던 50년대 우리 고장은 상투를 튼 사람들과 짚세기를 신고 다니는 핫바지 저고리차림의 사람들이 다수였고, 서양 옷 입은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니 내가 자란 안의 골짜기 전체가 청학동에 다름 아니었다. 동네어른들은 의무교육제도라는 명분의 국민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도 오히려 서당교육을 신뢰하고 있었으니 동네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짓는 연기와 함께 서당에서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그 특유한 음악성을 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부님이 안의 골짜기에서 몇 안 되는 서당 훈장님이셨으니 서당문화 훈도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영락(零落)한 양반가문의 자존심을 목숨처럼 알고 계셨던 조부님은 당최 먹고 사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으신 대책없는 선비로서 항상 갓망건과 도포차림으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위엄을 갖추시어 문하에는 항상 열댓 명 이상의 제자들이 모여들었고, 지방에서 내로라하는 문객들과 주붕(酒朋)들이 없는 살림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팔자에 없는 미곡거래상을 하시다 왜놈들의 꼬임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시고 자괴감을 못 이겨 중국 하얼빈으로 야반도주하셨다가 해방 후 두 동강이 난 삼팔선을 구사일생으로 너머 고향에 돌아와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것이 서당이었고 나는 단 네 살배기 코흘리개로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하늘 텬 따 지"를 배우는 금쪽같은 장손자겸 애제자로 조부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것이다. 천자문에서 시작, 사자소학,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상하권, 대학 중용까지의 과정을 영어공부를 시작한 중 2 때까지 조부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읽었으니 나는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전통서당을 다닌 세대인지도 모른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전근대적인 봉건사상의 훈도 속에 자라난 것이 자랑일 수는 없다. 그 이후 상경하여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만해도 나는 이 사실이 부끄럽기만 했고, 영어공부를 비롯한 신학문으로 전향하여 한학을 철저히 배제하며 살아온 지난 50년의 세월이었다.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런가. 나는 조부님의 유택과 선영이 있는 고향산하를 등지고 이역만리 서양 땅에 기거한지 어언 32년이 흘렀고, 95년 밴쿠버에 조부님의 아호 송산(松山)을 빌린 서당을 개설하여 지금까지 억지로 맥을 이어오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고등 수학 문제를 푸는 신학문을 백안시하셨던 조부님의 철학은 간단하다. 사람은 공부보다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하는데 그 가르침이 바로 정심수기치인(正心修己治人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자기를 닦음으로써 남을 다스린다)이요. 옛 선현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있다고 강조하셨다. 호랑이 띠시라 그런지 호랑이 같은 두 눈을 부라리고 앞산이 쩌렁쩌렁하도록 호통을 치시면 간이 콩알만해지고 동네전체가 숙연해 질정도로 철저한 선비의 의연함은 어려서는 무섭기만 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추모의 정이 새록한 나의 스승, 나의 조부님이다. 50-60년대의 한국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그래도 예의염치를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인생의 가치로 삼고 있는 미풍양속이 살아있는 사회였었다고 필자는 기억한다. 주자가 대학장구서에서 말한 쇄소응대(灑掃應待 물 뿌리고 쓸고 응하고 대하는)와 진퇴지절(進退之節 나아가고 물러가는 절도)을 체득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이륜강상(彛倫綱常사람으로서 떳떳한 도리와 변함없는 원칙)이 과연 현대화의 극을 달리며 물질적 풍요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물론 교민사회에 현존하는지는 우리가 두고두고 생각해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주자가 "큰 가르침의 내용은 모두가 임금이 몸소 실행하여 마음으로 체득한 나머지의 것이라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날마다 행하는 평상적인 도리 밖에서 구하지 않았다"(其所以爲敎則又皆本之人君窮行心得之餘不待求之民生日用彛倫之外)고 장구서에서 말한 이것이 서당의 존재 이유였음을 나는 50년이 지난 지금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다. 또한 조부님의 유택을 등진 불효막심한 죄를 속죄하고 싶은 심정에서 필자가 송산서당을 개설했는지는 오직 할아버지 한분만이 알아주시면 그만인 것이다. 할아버님 정말 사랑합니다. 그 언제 저 세상에서 우리 조손이 해후할 때 제가 운을 맞추어 시를 지어 바치면 저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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