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 춤사위에 빠져 시작
강렬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텅 빈 듯 조용한 공간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찰그랑 챙챙’ 검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쇳소리에 음악이 흡수되며 쌍검을 휘두르는 무용수들의 손끝에서 쌍검무의 화려함이 살아난다. 소리와 울림, 몸짓은 이내 동심원처럼 일정하게 리듬을 타며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 들고, 춤을 추는 그들의 어깨가 들썩거릴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면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춤 사위에 빠져드는 관객들. 그들은 무용수들과 함께 시대를 거슬러 올라 간다. ‘징 하게 배우기 어렵다’는 한국무용, 특히 쌍검무의 마력이다.
화려하지도 현란하지도 않은 춤사위가 오히려 강렬하게 빠져들게 하는 쌍검무는 전쟁터에 남편을 보낸 여인이 기다림의 한과 외로움을 달래며 추었던 춤이다. 밴쿠버 한국무용단(단장 정혜승)의 정기공연 ‘황진이’의 무대에서 쌍검무를 펼쳐 보이는 그들 속에 남주연양이 있었다.
◆상고북을 보고 재즈댄스 버리고 시작
젖살이 남은 뽀얀 뺨에 여드름이 송글송글 솟아 오른 남주연양이 처음 한국무용을 시작한 것은 밴쿠버로 이민을 오고 난 이후.
“재즈댄스를 하고 싶어서 찾아갔다가 상고북을 보고 ‘아, 저거다’ 싶었어요. 손 몇 번 올렸다 내렸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너무 단순한 춤이 제가 알고 있던 한국무용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온몸으로 표현하는 상고북 춤을 보면서 무언가에 홀리듯 엄마를 졸라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햇수로 5년을 넘었다. 밴쿠버한국무용단 단원으로 무대에 오른 정기공연 외에도 100회 넘는 공연을 했다.
“한국무용이 단순하다고 하지만, 발레처럼 춤을 추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무대에 설 기회가 많고,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수 만가지 얼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발레보다 좋은 것 같아요.”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 시작한 한국무용이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주연양에게 잘 맞았던 듯,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주연양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한국무용에서 머물러 있다.
◆태평무와 쌍검무 좋아해
남양은 한국무용 중에서도 태평무와 쌍검무를 좋아하고, 예쁘게 추는 춤보다 ‘멋’있게 추는 춤을 좋아한다. 재즈 댄스를 배우기 위해 무용학원을 찾았다가 상고북 춤에 반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조용하게 춤 사위를 보여주는 춤보다 강렬한 소리와 온 몸으로 추는 것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전통무용의 기본적인 틀에 바탕을 둔 창작무용에 비중을 두겠지만요, 저는 삶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태평무나 쌍검무 같은 춤으로 재탄생 시켜 창작해 놓은 선생님들의 춤 사위가 좋아요.”
한국무용가 김소희씨는 ‘예술은 모방이 아니다. 스승을 따라 하면 원숭이지 예술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지 않고 그의 춤사위를 ‘따라 한다’는 것을 바꾸어 말한다면 전통을 잇는 것. 이와 함께 자신의 ‘춤 길’을 찾아낸다는 말은 창작과 전통 ‘모두’를 갖고 싶은 차세대 춤꾼의 당연한 욕심,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UBC에서 언어학 공부할 예정
이제 열 여덟 살. 밴쿠버에 살고 있는 주연양으로서는 책에서 접해 본 역사 속의 인물 황진이가 살던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주인공의 삶 속에서 춤을 추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표현하기엔 버거울 터. 그러나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황진이를 공연할 때 마음을 비우고 그 시대로 돌아가 황진이가 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음악이 나오고 춤이 시작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대로 돌아가게 돼요.”
‘승무’가 ‘하늘과 내통하는 장삼자락의 춤’이라 평했던 것처럼, 무대에 서면 삶의 체험 없이 이런 영감을 떠올리는 특별함이 ‘타고난 춤꾼’이라는 소릴 듣게 되는 일면이다.
“한국에 잠시 다니러 가서 무용학원을 다닌 친구가 한국에서 한국무용을 하는 학생들은 무용학원에서 하루 종일 산대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평소에 공부하고 정해진 연습시간에 순수하고 좋은 친구들과 만나게 되니까 오히려 춤을 좋아하게 되고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고상한 춤을 추기 위해 팝송이나 힙합을 거부하지 않고, ‘추는 춤 말고 추어지는 춤’을 추길 원한다고 했다. 진학을 하기 위해 무용학원에서 24시간 해야 하는 고난과 같은 무용이 아니라, 좋아서 하기 때문에 한국무용은 주연양에게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즐거운 ‘놀이’에 가깝다.
◆어릴 때 꿈은 탤런트
“힘들 때요? 공연 앞두고 하루 여덟 시간씩 연습할 때는 힘들죠. 하지만 공연 끝나고 무대인사를 할 땐 가슴이 뿌듯해요. 제가 무용 하는 걸 엄마가 무척 좋아해요. 아마 대리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아이다운 솔직함과 순수함이 귀여운 주연양의 어머니는 극단 ‘한우리’에서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남선호씨. 엄마의 ‘끼’를 이어받은 주연양의 어릴 때 꿈도 탤런트나 연예인이었다. 그러다 최근 영어, 일어, 중국어를 공부한 다음, 다국적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전공을 언어학으로 선택했다.
내년 1월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교환학생으로 한국으로 건너 가 영어 다음으로 한국어를 가장 먼저 완벽하게 마스터할 생각이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소매업계 매출 꾸준한 상승세
2007.08.27 (월)
“루니화 강세 계속되면 내수 타격 우려”
BC주 소매점 매출총액이 매월 47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
‘북미 통화 단일화’ 미국인은 반대
2007.08.27 (월)
캐나다 중앙은행 “가능성은 있다”
캐나다화 강세로 캐나다 기업들이 미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자 또다시 북미주 통화 단일화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데이비드 다지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도 미국 시카고에서 연설을 통해 캐나다, 미국, 멕시코의 통화단일화 가능성을 놓고 “3개국간의...
|
써리에서 열기구 화재로 2명 숨져
2007.08.27 (월)
모녀 2명 숨지고 11명 부상
불 붙은 열기구가 RV 파크에 추락해 2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지난 주 24일 오후 7시 30분경 써리에서 발생했다. 연방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열기구가 이륙 직후 화염에 휩싸여 헤이즐미어 RV 파크로 추락했다”며 “열기구에서 일어난 화염이...
|
6-12세 탁아보조금 인상
2007.08.27 (월)
9월 1일부터
BC주정부가 6-12세 자녀가 있는 가정에 지원하는 탁아보조금(Child Care Subsidy) 지급액이 9월 1일부터 인상된다. 27일 주정부 발표에 따르면 학교 외(out-of-school) 탁아 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이 ▲하루 4시간 이하 탁아 시설을 이용할 경우 하루 최고...
|
밴쿠버한국무용단 PNE 축제 초청 공연
2007.08.27 (월)
지난 25일 밴쿠버 헤이스팅스 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PNE(Pacific National Exhibirion) 축제에 한국문화공연 팀으로 초청된 밴쿠버 한국무용단(단장 정혜승)이 ‘황진이’를 비롯한 우리 문화를 잘 드러내는 작품을 골라 선보였다. 페스티벌 스퀘어(Festival Square) 오픈...
|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다면 이곳으로
2007.08.27 (월)
버나비 디어 레이크 밤낚시
이견이 많겠지만 고국의 낚시인들은 낚시방법 중에서 대낚시를 사용한 붕어낚시를 가장 고상한
|
캐나다 부동산 경기와 금융위기
2007.08.27 (월)
캐나다 부동산 경기와 금융위기(하)
캐나다 6대 은행 중 하나인 캐나다은행(National Bank of Canada)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로 불량채권이 된 20억달러어치의 비금융권 보증 채권(non-bank asset backed commercial paper)을 자사 자산으로 구매를 했다. 캐나다은행이 고객의 돈을 이 금융상품에 넣었는데 이...
|
“소아장애인 돕는 일 하고 싶어요”
2007.08.27 (월)
라이온스클럽 봉사상 받은 이영은양
유학생활하며 봉사 활동…올 가을 유펜 진학 밴쿠버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유펜)에 입학하게 된 이영은(영어이름 루이스 리)양은 국제라이온스 클럽이 청소년들에게 수여하는 멜빈 존스 펠로우상을 받고 올해의 회원(Leo of the year)에...
|
21살, 앞으로의 21년을 고민한다
2007.08.27 (월)
한인사회 주역 될 ‘86년생’의 과거와 미래
창간 21주년을 맞은 밴쿠버 조선일보와 함께 태어나고 자라 온 1986년생들. 이들이 거쳐 온 사회상을 되짚어보고, 미래의 주역이 될 이들의 고민과 바램은 무엇인지 진단해본다.
|
젊은 그녀, 세상을 만나다-The Nanny Diaries
2007.08.27 (월)
베스트셀러 소설 영화로 만든 ‘내니 다이어리’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새 영화 ‘내니 다이어리(The Nanny Diaries)’는 20, 30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칙-릿(Chick-lit)’ 영화다. 지난 해 개봉된 비슷한 성격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워낙 폭발적인 흥행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내니 다이어리’가...
|
여권소지 의무화 이렇게 대처하자
2007.08.24 (금)
BC주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보안강화 운전면허증(Enhanced Driver’s Licence) 제작은 재검토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브 앤 메일은 사설 ‘A licence to complicate’에서 “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 여권을 소지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지만 BC주정부가 추진하는 대안도...
|
“휴가 중에도 민심 따라잡기 바빠요”
2007.08.24 (금)
BC자유당“유례없는 호황” 경제 성과 강조 BC신민당“분배 이뤄져야…최저임금 10달러로”
주 4일 근무제이면서 한 달에 한 주는 쉬는 직장. 학생도 아니면서 6월부터 9월까지는 공식일정이 없는 직장. 바로 BC주의회다. 올해 5월 31일 휴회에 들어간 BC주의회는 10월1일 개회해 11월 29일까지 올해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고 1월 30일부터 내년 2월 중순까지 또...
|
캐나다 이민 ‘先취업 後이민’
2007.08.24 (금)
수속기간은 2년 이상 걸려
캐나다 전문인력이민의 추세가 ‘선취업 후이민’ 형태로 변하고 있다. 최주찬 웨스트캔 이민컨설팅 대표는 “2006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1년간 주한 캐나다 대사관을 통해 모두 503건의 전문인력이민 신청서가 심사됐다”면서 “약 76%인 386건이 승인되고 117건은...
|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스읍~’ 침 흘리지 마! 생갈비야
2007.08.24 (금)
한국인들이 반한 생갈비 맛 ‘로얄 서울관’
예로부터 신선로와 탕류, 너비아니 구이와 같은 고급 일품요리에 길들여지며 지순한 세월을 살아 온 우리 한국인들의 입맛을 따라 올 민족이 또 있을까. 쇠고기를 단순히 소금 후추 등 밑간 해서 소스에 찍어 먹는 서양사람들이 아무런 재료 가미하지 않고...
|
풍성한 볼 꺼리! 신나게 놀 꺼리! 짜릿한 즐길 꺼리!
2007.08.24 (금)
PNE(Pacific National Exhibition) 축제 1
8월 18일부터 9월3일까지 열리는 PNE(Pacific National Exhibition)축제는 조용한 밴쿠버에서 보기 드물게 ‘보고 즐기고 놀 거리’가 풍성한 대표적인 행사다. 밴쿠버시는 이 행사를 위해 400만달러를 투입했다. 1년에 한 차례 열리는 밴쿠버시의 가장 큰 가족놀이...
|
“공권력 투입해 폭력시위 조장”
2007.08.24 (금)
북미 정상회담장 시위 관련 노조 대표 주장
퀘벡주 경찰이 폭력시위를 조장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물의를 빚고 있다. 20일 퀘벡주 몽테벨로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장 앞에서 벌어진 시위와 관련해 시위를 주도한 통신·에너지·제지 노조는 당시 시위대 앞에 서서 검은 옷을 입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
밴쿠버시청, 내근직 공무원과 협상
2007.08.24 (금)
밴쿠버 시청은 23일 “내근직 공무원을 대표하는 캐나다공무원노조(CUPE) 15지부에 5년 계약에 봉급 17.5% 인상 협상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15지부는 시청이 제시한 협상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며 “협상을 통해 최종 합의가 이뤄지길...
|
“파티에서 인기 최고 찰떡 레서피”
2007.08.24 (금)
이미현 주부 (밴쿠버 웨스트 거주)
처녀시절 결혼하면 “하다가 하다가 정말 먹고...
|
톰슨 사막을 지나면서
2007.08.23 (목)
필자는 자동차 여행을 좋아한다. 북미지역은 비행기로 날아가 둘러보는 것보다 아예 집에서부터
|
“무대 위에 서면 주인공의 삶 속으로 빠져들죠”-남주연양
2007.08.23 (목)
◆한국무용 춤사위에 빠져 시작 강렬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텅 빈 듯 조용한 공간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찰그랑 챙챙’ 검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쇳소리에 음악이 흡수되며 쌍검을 휘두르는 무용수들의 손끝에서 쌍검무의 화려함이 살아난다. 소리와 울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