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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高)냐? 장(長)이냐?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0-12 00:00

허 억

우리 집 앞뜰에는 한반도 모양의 꽃밭이 있다. 거기에다 매년 금잔화(marigold)를 심었다. 금잔화는 키가 크지 않아서 땅에 짝 달라붙으므로 새파란 잎새 위에 오렌지색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게 되면 한반도가 잔디밭 위에 뚜렷이 드러나서 보기에 매우 좋았다.

나는 이른봄에 예년과 다름없이 한반도에 거미줄처럼 둥글게 줄을 긋고 금잔화 씨를 뿌렸다. 새싹이 나고 조금씩 자라나면서 금잔화 씨에 코스모스 씨가 섞여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금잔화와 코스모스는 정답게 함께 자라나서 꽃을 피웠다. 2층 꽃밭이 된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2층 꽃밭을 바라보면서 희한하고 아름다운 꽃밭이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리고 우리 내외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2층 꽃밭을 우연하게 만들어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그 동안 더 많은 가지를 내고 여러 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꽃을 하늘하늘 흔들며 자랑하고 서 있는 코스모스를 감상하고자 가까이 다가갔을 때, 키다리 코스모스 밑에서 꽃도 잎도 거의 다 삭아서 쭈그러진 금잔화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꽃인데 코스모스의 키(高)에 눌려 질식사(窒息死) 당한 금잔화가 너무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는 더덕을 좋아한다. 더덕을 방망이로 적당히 두드린 후 고추장에 묻혀서 프라이팬에 슬쩍 구워놓으면 그 맛이야말로 불고기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나는 더덕 씨를 많이 준비해서 개간해 놓은 넓은 밭에 이곳 저곳 많이 뿌려 놓았다. 그리고 여름에는 열심히 물을 주어 꽤 많이 자랐다. 다음 해가 되었다. 나는 체력이 딸려서 멀리 있는 더덕 밭을 돌볼 수가 없었다. 그저 집 가까이 있는 야채며 꽃밭을 가꾸기에도 힘들었다. 한 여름이 되어 궁금해서 먼 쪽에 있는 더덕 밭을 방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잡초로 덮여 있었다. 키가 큰(高) 잡초에 완전히 눌려서 더러는 죽고 더러는 겨우 생명은 유지하고 있지만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아무리 잘 자라는 야생 잡초라 할지라도 나무가 자라서 그 위를 덮으면 아무 말 없이 스스로 그 자리를 양보한다. 키 큰(高) 놈에게는 당할 길이 없는 것이다.

각종 야생초(野生草)들은 각기 그 자라는 시기가 다르다. 한 가지 풀이 너무 많이 자라서 그것을 낫으로 잘라주면 그 계절에 맞는 다른 종류의 풀이 웃자라서 그 자리를 완전히 차지하는 것을 본다. 즉 언제 풀을 깎아 주느냐에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풀이 그곳을 점령하느냐가 결정된다. 이 모든 것은 그 당시에 누가 빨리 자라서 밑에 있는 놈을 질식사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게도 평화스럽게만 보여지던 식물계의 세계가 이렇게도 비정(非情)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에 의하여 생사가 결정되는 것을 보고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高)는 참으로 무서운 무기이다.

그러나 이 고(高)보다 더 무서운 놈이 있다. 그것은 뿌리가 긴(長) 놈들이다. 뿌리가 얼마나 길고 굵은지 햇빛만 조금 있으면 자기의 삶터를 넓혀나간다. 뿌리가 손가락 같은 고사리를 보라. 나무를 드문드문 베어내어 조건을 조금 좋게 해주었더니 살판났다고 영토를 확장해서 우리 집 땅의 한편은 고사리 동산이 되었다. 쇠뜨기(horsetail)는 어떠한가? 고사리보다 뿌리가 좀 가늘어 약하게 보이지마는 얼마나 뿌리가 왕성하게 번식하는지 제거할 도리가 없다. 어떤 사람이 쇠뜨기를 죽인다고 밭 가는 기계(rototiller)로 밭을 파 엎었더니 잘라진 뿌리가 다 개체로 살아나서 완전히 쇠뜨기 밭을 만들었다고 한다. 쇠뜨기의 뿌리를 따라 흙을 파 들어가면 염라대왕 머리에 다다르게 된다나. 나는 하는 수 없이 땅 위에 말꼬리처럼 자라 나온 줄기만 1년에 두어 번 손으로 뜯어내지만 쇠뜨기는 해마다 더 왕성하게 퍼져나갈 뿐이다.

고(高)를 무기로 하는 식물들은 손으로 뽑아내면 간단히 제거된다. 허나 장(長)을 무기로 하는 식물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제거할 도리가 없다. 나는 정말로 그 놈들에게만은 손을 들었다. 무슨 농약을 뿌리면 되겠지만 몸에 해로운 화학약품을 집 주위에 뿌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 인간 세계에도 이러한 고(高)와 장(長)이 있지 않을까? 어떠한 사람이 고(高)에 속할까? 또 어떤 사람이 장(長)에 속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조금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라도 돈 많은 집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그 돈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지배한다. 한편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애를 쓰고 일어서려고 해도 가정형편이 허락지 않으면 고등교육을 받을 수도 없고 또 못 배운 채로 무슨 사업을 해보려고 해도 가족에 대한 부양책임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 한다.

그러나 개중에는 이렇게 어려운 조건을 타고 낳은 가운데에도 악전고투하며 그 역경을 이겨내고 고학(苦學)으로라도 공부하고 세상을 이기고 많은 사람 앞에 우뚝 일어서는 사람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좌판장사를 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여학교 앞에서 뻥튀기 장사를 하고 대학에 다닐 때는 청소부로 일하면서 공부한 사람이 대기업의 사장, 회장을 지내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 후보로 당당히 입후보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참으로 뿌리가 길고 깊은 사람이다.

고(高)를 타고 난 사람은 남들 보기에는 행복하다. 그러나 막상 깊이 알고 보면 불행한 사람이 많다. 자기에게 많은 재화가 주어졌지만 그것을 뜻 있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측근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책과 원망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받쳐주고 있는 재화가 어느 날 갑자기 무지개처럼 사라지는 날, 재기불능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날 때부터 고(高)에 속한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은 되지만 숭배의 대상이 되기는 매우 힘들다. 반면, 장(長)에 속한 사람의 뼈를 깎는 듯한 인생 여정을 선망할 사람이야 별로 없겠지만, 그들이 이루어 놓은 값진 업적과 지칠 줄 모르는 다이 하드(die hard)정신에 대하여는 참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꿈을 갖자. 고(高)는 타고나지 못했을지라도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오뚝이처럼 칠전팔기(七顚八起)하면서 장(長)을 향하여 꾸준히 노력하면 그런 대로 보람된 인생이 되지 않을까? 비록 세상 사람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인생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 물론, 모름지기 선(善)한 마음을 가지고 노력할 때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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