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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의 진정한 의미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7-10-18 00:00

勝日探遊寶苑島
하루 종일 Bowen Island를 돌아다니다.

寶苑離城十里許 밴쿠버서 보웬 섬은 십리가량 떨어져서
千頃澄波到美浦 맑은 파도 물결 타니 아늑한 포구 닿네
山色直通遙海闊 푸른 산색 먼바다로 멀리 널리 통해있고
小洞深幽一逕斜 작은 동네 깊은 곳에 외길 하나 비껴있네
穿林別業奇花發 숲을 뚫은 별장에는 기이한 꽃 만발하니
兜率天開海上棲 도솔천이 열린 곳에 바다 위의 둥지라네
生平往事等浮雲 이내 평생 지난 일들 뜬구름과 같은지라
曳杖盡日覓眞寓 온종일 지팡이 끌며 무릉도원 찾는다네

丁亥陽七月二十八日與二人終日探遊寶苑島有懷梅軒偶吟
정해년 7월28일 두 사람과 함께 온종일 Bowen Island를 탐유하다 소회가 있어 매헌은 우연히 읊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만사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겠다'는 넋두리를 한번쯤은 뱉어 놓았을 터이지만 그 말을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흙에 손을 넣고 아무도 없는 오지산골에서 자연을 벗하며 산다는 게 차원 높은 성현일사(聖賢逸士)들이나 은자(隱者)들의 몫이지 우리같이 용속한 사람들로선 감히 감당키 어려운 정신적 사치일 뿐이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한번 해본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19세기 중엽 자연주의자로서 그 유명한 '시민 불복종론'(civil disobedience)을 제기한 헨리 소로우(Henry Thoreau)란 사람이 보스턴 근교의 산속에 있는 조그만 호수인 월덴 호반에 움막을 짓고 홀몸으로 그야말로 자연을 벗하며 불후의 수필집, '월덴'을 집필했지만 기껏 2년이란 기간만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스님으로서 '무소유'를 주창한 법정 스님이 강원도 오지 산골에 움막을 짓고 손수 나무하고 밥하고 빨래하는 독신 수도의 삶을 통해 깨달은 삶의 통찰과 지혜를 가지고 우매한 속세의 중생들을 일깨우지만 그 또한 영원히 산속에 칩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법정 스님을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것은 사바세계와 완전히 인연을 끊고 수십 년 면벽수도하여 성불한 고승의 지위가 아니라 그가 성(聖)의 경지에서 깨우친 바를 밑바닥인 속(俗)으로 끌어내려 중생들이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전파하는, 이런바 성속일치(聖俗一致)의 장을 마련한 데 있는 것이다.

동양최고의 자연주의자로서 오늘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동진의 도연명이 벼슬을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고향에 돌아가 전원생활에 심취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표현한 '귀거래사'(歸去來辭)도 같은 맥락의 양심선언이라 할만하다.

필자가 소개한 대표적 자연주의자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단순하게 사는 것’(Live a simple life)이란 메시지가 아닐까. 소로우가 우리의 삶이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게 영위될 때 인생의 참다운 가치가 비로소 인지될 수 있다고 한 말이나, 법정이 ‘우리가 무엇을 가지려 하고 니꺼 내꺼라고 쌈을 가리는 소유감이 없어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고 한 무소유 사상도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도연명이 '어찌 명예심을 버리고 마음이 가고 머무는 대로 하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서둘러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라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소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소로우나 법정 그리고 도연명처럼 살아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들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 밴쿠버 주변의 무인도나, 첩첩오지 산골, 아니면 태평양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풍광 좋은 해변에 아담한 별장 하나 지어 과연 살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아마 일주일만 살아도 우울증 증세를 보일 것이고 석 달도 못 버티고 짐을 쌀 것이 뻔하다.

우리가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란 전원적이고 목가적이며 물리적인 공간에 살아야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해방이란 텃밭에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음의 해방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육체의 종살이를 벗어나는 것이다. 도연명은 귀거래사의 첫 연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내 마음이 육체의 종노릇 했으니 어찌 무엇을 슬퍼하고 마음 상해하는가'(旣自以心爲形役 奚悲愴而獨悲)라고. 진정한 우리의 행복은 육의 요구에 의해 우리의 마음이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요구에 우리의 육을 종속시킬 때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이지 않을까.

나는 이날 보웬 아일랜드를 온종일 거닐면서 도시문명과 단절된 섬의 구석 구석에 아담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마음의 해방을 얻은 이후 이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라는 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 교민들이 저런 곳에 살 수 없는 일반적인 현상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귀거래사의 그 구절이 내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부질없는 생각일랑 그만두자 이 육체가 천지간에 붙어 살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찌 하여 명예심을 버리고 마음이 가고 머무는 대로 하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서둘러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부귀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 신선세계는 기대할 수 없어라. 좋은 날이라고 생각되면 홀로 거닐기도 하고 때로는 지팡이 꽂아두고 김 매고 흙 북돋우리라. 동쪽 언덕에 올라 천천히 휘파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 다다라 시나 지으리라. 애오라지 자연의 변화에 따라 흙 속으로 돌아가리라.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已矣乎 寓形宇內 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爲遑遑 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而孤往 或植杖而耘耕 登東丘而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塵 樂夫天命復奚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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