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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제품구매력 폭발시키는 파워"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1-24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전 삼성전자 생활가전 디자이너 현 공방 ‘나무이야기’ 대표 이형식씨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국제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기업의 선두주자는 단연 삼성전자. 그 중에서도 ‘백색가전’이라 불리는 생활가전에서 제품구매력에 미치는 영향력은 디자인이 거의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디자인 제품에서 디자인은 기업인지도를 높여 이후 브랜드만으로도 시장이 폭발하는 파워가 생긴다. 산업디자인은 이렇게 생활가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형식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81년 즈음 우리나라는 산업디자인이라는 단어의 개념조차 생기기 전이었다.

■공방 ‘나무이야기’연 순수 청년

목각조각품과 우리 전통 고가구와 소품, 세계 각국의 앤틱 제품 전시 공방 ‘나무이야기’에서 만난 이형식씨. 어깨까지 길게 기른 머리를 뒤로 질끈 묶어 젊은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그는, 한 눈에 결코 평범한 직업인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한다. 

원목 마루가 깔린 매장 바닥과 전시된 상품의 디스플레이도 보통 감각적인 솜씨가 아니다. 상품은 모두 젊은 날 그가 직접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것들과 한국에서부터 끌고 온 우리나라 골동품들. 그간 수집해서 집안에 소장하고 있던 물건들을 진열해 둔 전시관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여기에 그가 직접 깎아 만든 목공예품과 조각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 그의 공방 ‘나무이야기’는 앤틱 상품들의 전시와 더불어 교민들 가운데 뛰어난 아이디어로 만든 창작품을 전시해두고 판매도 한다. 지나가는 길에 누구나 찾아와 작품을 구경하며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우리 교민들의 사랑방과 같은 곳이 되고 싶다는 ‘돈벌이’와 크게 상관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열었다. 공방을 운영하는 틈틈이 장승을 깎아 판매하고, 작은 가게의 디자인과 원목에 상호를 조각, 멋스러운 간판 제작을 해주기도 한다.

 워낙 오랫동안 모은 것들이라 구체적으로 구입원가가 얼마인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우선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원가를 붙여 두고 팔고 있다니 과연 ‘돈을 벌기 위해 가게를 낸 걸까’ 의구심이 든다.
어설픈 초보 장사꾼(?) 이형식씨.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에서 산업디자인의 개념조차 정립되기 전인 80년대 삼성전자에 입사, 20여 년 생활가전 디자인을 하며 산업디자이너로 많은 제품의 디자인을 해온 전문가다. 
“현대인들에게는 생활가전 구매 결정요소는 가격보다 디자인, 기능, 실용성이 판매를 좌우하는 소비자 감성시대죠. 특히 생활가전의 디자인은 기업경쟁력이며 세계시장에서도 국가와 국가간의 치열한 다툼을 하고 있죠. 바로 디자인이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와도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출중한 그의 출중하지 못한 이야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커피 대신 이웃 한식당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들고 와 테이블에 놓고, 디자인의 힘을 ‘그 자체가 경제를 좌우할 만큼 파워를 지닌 막강한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용날 용시’의 출중한 시(時)를 타고났지만 대학입시에서부터 1차에서 떨어지는 등 ‘출중하지 못했다’는 그의 과거는 현재에서 출발, 40년 이전으로 역 주행으로 시작했다. 
그는 숭실대학교의 전신인 옛 숭전대학교 71학번. 그러나 삼성전자 디자이너로 입사를 하던 81년 졸업했다. 이후 91년 대학원을 졸업한 것을 시간으로 따지면 무려 20여 년 학교를 들락거리며 숭실대 사상 최장수 학생신분을 누린 학생으로 유명하다. 
“1차에서 떨어지고 2차에 갔지. 전공만 맞으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건데, 지금 생각해도 스트레스 안받고 후딱 들어가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걸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대학에서는 산업디자인(industrial design)을 전공했다. 대학 3학년이 되던 해 군대를 갔다가 제대 후에 3년을 딴짓(?) 하느라 휴학하고,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고, 그 해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때가 81년. 이후 9년 동안 ‘백색가전’이라 불리던 삼성의 냉장고 믹서기, 세탁기 등 모든 생활가전 제품 대부분이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디자인이다.  
“세계 경제흐름에 산업디자인이 미치는 영향은 막강하죠. 그래서 각국에서는 '디자인 선진국' 타이틀을 얻기 위해 전쟁 중입니다. 중국도 뒤 늦게 '디자인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후발국들도 디자인 분야에 대대적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디자이너에 투자해 얻는 수익은 엔지니어의 5배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어요. 우리나라도 ‘2010년 세계 8강 디자인선진국 도약'이라는 비전을 내걸고 산업자원부에서 디자인산업 육성전략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산업디자인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 하던 그의 술잔이 벌써 다섯 잔째 비워지고 있었다.

■산업디자인은 직업, 순수창작이 좋아

대학 졸업 후 중앙대, 동덕여대, 상지대, 한양공전 등에서 겸임교수로 6년 가량 외도를 했던 것을 제외하고, 삼성전자 생활가전 디자이너, 사무기기 전문기업 신도리코 제품디자이너로 도합 20년을 보냈다. 
“당시에 월급쟁이지만 내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미국에 몇 만대 수출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정말 뿌듯하죠.”
그는 89년 사무용 복사기와 기기 생산업체인 신도리코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는 복사기와 팩스, 프린터기 등 제품의 디자인을 맡았다.
“산업디자인의 최고봉은 ‘자동차 디자인’인데 저는 그걸 못해보고 끝나서 좀 아쉬워요. 생활가전 뭘 디자인 했느냐고 하면 나열하기도 힘들지만, 워낙 우리가 시작할 땐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라 크게 그 분야가 대접받고 그런 시대가 아니었던 것도 후배들 보면 부럽죠.”
중앙대학교와 동덕여대 등 겸임교수로 출강하며 진로를 대학으로 바꾸기로 한 그는, 다시 대학원에 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국을 떠났다.
“너무 늦게 박사학위를 받고 보니 후배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후배들과 경쟁하며 선배가 후배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 포기하기로 했죠. 또 대학교수가 공식적인 자격요건을 갖추고 실력만 키우면 된다고 믿었지만, 재단에서 요구하는 실력 외 조건들에 무척 실망했죠.”
일반적으로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자격요건을 점수로 환산한 만점이 320점. 그는 경력과 학위 등을 합쳐 450점을 넘어섰다. 그러나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실력 외 학교재단에서 요구하는 또 다른 무엇(?)의 조건에 환멸을 느꼈다. 이 이유가 결정적이긴 했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내면에 잠재한 것들 때문이었다. 직으로 산업디자인을 하고 있던 내내 ‘순수 창작’에 대한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아 핑계를 댄 것이기도 했다. 

■55세의 철부지……

그는 디자인은 이제 그 자체가 경제를 뒤흔들 만큼 파워를 지닌 막강한 '산업'이지만, 세계에서 유독 밴쿠버에서만은 ‘디자인이 없다’며 실용성 위주의 구매 패턴으로 디자인이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원목 실내인테리어와 목공조각을 하고 있는 그는, 이곳에서 인테리어를 시공비를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있더라도, 외롭더라도 차라리 ‘외로운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55세의 철부지’라며 웃었다.  
“언젠가 나이가 더 먹으면 우리나라 충무에 가서 싱싱한 생선회나 실컷 먹으며, 내가 하고 싶은 작품 만들면서 살고 싶어요.”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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