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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 연기 보면서 아쉬움 삭히죠”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1-31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왕년에… 전 잠실롯데월드 아이스링크 지도강사 현 '서병철 스케이팅교실' 대표 서병철씨

우리나라에 최초의 아이스링크가 개장된 해는 1992년. 서울 잠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이다. 리라초등학교와 계성 초등학교 경기초등학교 등 소위 서울 5대 명문 사립초등학교로 꼽히는 학교에서 피겨스케이팅을 지도하던 서병철씨는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첫 지도강사가 된 92년 이후, 17년 동안 이곳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가르쳤다.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어디서도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세계빙상연맹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우승했고, 쇼트트랙 선수 연습용으로 빙질이 맞춰진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 우리나라 피겨 스케이팅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ISU(국제 빙상연맹) 시니어 그랑프리 피겨대회에 입상했다. 이때 허리 부상이 있는 상태에서 이코노미 클래스 비행기를 타고 세계 선수권대회에 참가해, 세계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세 번째로 시니어 그랑프리 피겨대회 파이널 2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는 1990년생 한국인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들에게 용기를 준 1위의 인물로 선정 된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 인터뷰 기사 가운데 서두 부분이다. “열악하기 그지 없는 환경”을 극복한 김연아 선수의 피나는 노력과 천부적인 재능을 강조하기 위한 내용이지만, 이 기사를 읽고 난 서병철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 미끄러운 얼음판 위에서 1시간 서 있는 건, 땅위에서 한 시간 걷는 것만큼 운동 효과가 큰 스케이트는 ‘전신 운동’이라고 말하는 서병철씨. 그는 어린 시절 중지도에서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 겨울만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이민 후에도 겨울과 여름 방학 두차례 서울 잠실롯데월드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가르쳐 온 그는, 요즘 영어와 스케이팅 교육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스포츠 교환 프로그램을 개발해 유학사업을 하고 있다.

“90년생 김연아가 운동하기에도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조건이 아직 이렇게 열악하다는 데 놀랐습니다. 그래도 가르쳐 줄 수 있는 코치와 빙상장이 있다는 건 또 부러움이죠. 제가 피겨를 시작한 70년대에는 내가 잘 하고 싶어도, 기본기를 배운 다음 혼자 연습하며 터득하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스포츠는 스스로 터득해서 성장할 수 있는 단계에 한계가 있고, 코치 없는 선수란 있을 수 없죠. 대회 출전은 상상도 못했어요.”

대회 출전과 입상 경력에 대한 질문에 서병철씨가 넋두리처럼 털어놓는 이야기 속에는 안타까움이 녹아 있었다. 또 비록 이룰 수 없다 해도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던 자신의 소망을 누군가 대신 이루어 낸 것에 대한 기쁨 같은 것도 느껴졌다.

■선배로서 바라보는 김연아 선수

그는 김연아가 세계최고가 된 것을 두고 ‘기적’이라고 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수 백배 가치가 있다고도 말했다. 혹시 그가 접어야 했던 꿈을 누군가 이루어 준 대리만족감에서 평가한 ‘절대치’가 아닌가 되물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뿌리’에서 기인한 애국심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30여 년 넘게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또 까마득한 선배로서 바라보아도 그 가치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고 매스컴에서 왁자지껄하기 전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비인기 종목의 스포츠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뒤에서 구슬땀 흘리며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극복하고 세계정상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기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코치 김국전 선생을 만나 지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다. 기본기를 배우면 “그저 열심히 타면서 스스로 터득해 나가는 방법”에 의존했지만, 그는 피겨 스케이팅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동대문실내스케이트장이 개장된 70년 시작

서울 한강 중지도에서 바닥에 두 줄로 나란히 쇠심을 박은 나무로 만든 썰매를 타고 놀던 서병철씨가 처음 피겨 스케이트를 접한 것은 70년. 대학에 입학하던 해다.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도 이때 문을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피겨 스케이팅 코치 김국전 선생으로부터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엔 스케이트를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나마 스피드 스케이트가 주류를 이룬 우리나라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의 스포츠였다.

■음악과 함께 율동감의 피겨 스케이팅

“피겨스케이트는 속도감을 즐기는 스피드 스케이트에서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홀림’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운동의 기능이 강한 스피드 스케이트에 비해 알고 나면 무작정 빠져 들게 됩니다.”
그 역시 스피드 스케이팅을 하다가 피겨 스케이팅을 배운 다음, 음악과 조화되어 빨려 드는 율동감에 ‘미친 듯’ 수년 동안 얼음 판 위에서 살다시피 피겨 스케이팅에 푹 빠져 지냈다.    

대학 졸업 후 어린이들에게 피겨 스케이팅 지도를 시작한 곳은 서울의 리라초등학교와 경기, 계성, 경복, 은석 초등학교. 비록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화려한 연기력을 펼쳐 보이고 싶은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피겨 스케이팅을 가르칠 수 있는 남자 강사가 전무하던 서울에서 특별활동 교사로 그는 ‘스타급’ 대접을 받으며 지도자로 변신했다.

“지도자는 트리플 악셀이나 팔을 벌리고 허리를 뒤로 젖히는 이나바우, 스핀 같은 기술을 직접 연기하지 않지만, 선수를 통해서 연기를 펼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수의 실력이 곧 지도자의 실력이라고 말해도 좋겠지요. 물론 지도자의 능력 이상으로 연기를 해 내는 우수한 선수나, 지도력에 못 미치는 선수도 있지만 대개 가르치는 만큼 연기를 하게 되고, 드물게 김연아 선수처럼 그 이상인 선수도 나오죠.”

이때 그가 가르치던 학생 가운데 뛰어난 자질을 가졌던 선수로 현재 서울 외국인학교와 롯데월드에서 그의 대를 이어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곽양민, 박윤희씨 등을 꼽을 수 있다.  

■초보자는 넘어지는 요령이 첫째

“스케이트는 중심 이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이 무서운 사람은 수영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얼음이 무서운 사람은 먼저 얼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부터 해결되어야 합니다.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얼음과 친해지면, 뚱뚱하거나 연세가 드신 분들도 누구나 배울 수 있어요.”
‘잘 넘어지면’ 절대 다치지 않고 안전하다는 그의 지도 노하우는 ‘넘어지는 요령’부터 완벽하게 익히는 것. 그리고 스케이트 신발 끈 묶기라고 했다.

스케이트 지도는 ‘선수의 신발 끈을 잘 묶는 것이 절반의 가르침’이라는 그는, 유능한 코치일수록 선수들의 신발 끈을 묶어주느라 손이 거칠다고. 그의 손도 꽤 거칠다. 30여 년 피겨 스케이팅 코치를 하면서 얻은 영광의 상처가 남긴 훈장 같은 거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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