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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 상차림은 종합예술이죠”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2-01 00:00

설날특집 설 상차림 / ‘예랑’ 이경란 원장

2월7일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어떻게 하면 편리하게 설 상차림을 할까’ 인터넷에서 실시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모든 정보는 ‘간편함’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주방용품 기업 ‘락앤락’에서 우리나라 주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설 맞이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외부에서 주문한 음식으로 설 준비하는 것에 대해 3명 중 1명은 ‘NO’라고 했다는 결과는 의외다. “음식 준비 힘들어도 손수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는 통계. 주부들이 설 연휴에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음식준비’이면서도 제사 음식 등은 외부에서 주문한 음식으로 차리는 것을 꺼림칙해 한다는 결과는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또 가족들에게 어떤 음식을 대접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곳에서, 그냥 보내기엔 섭섭하고 명절다운 명절음식을 하기엔 번거로운 독자들을 위해 ‘예랑’ 이경란(생활문화학 박사)원장의 도움으로 간편, 간단, 그러나 푸짐한 전통 설 상차림 ‘설날 특집’ 편을 꾸몄다.

◇ 한국의 상치림은‘독상’이 원칙. 붉은 과실은 동쪽에 흰 과실은 서쪽에 홍동백서(紅東白西)로 차리는 제사상처럼, 설상 차림에도 격식이 있다. 차가운 음식은 왼쪽으로 뜨거운 음식은 오른쪽으로 놓고, 중앙에 간장 그릇을 놓는다. 반찬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떡국 상차림은 보통 5첩 반상으로 차리는 편. 이경란 원장이 직접 요리한 음식으로 차린 떡국 상차림 앞에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 음력 1월1일을 ‘설’이라고 한다. 어원이 ‘사린다’, ‘사간다’는 말에서 온 것으로 슬프다는 뜻의 ‘섧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설날은 ‘조심스럽게 행동을 삼가는 날’이라 해서 새 옷을 입고, 좋은 말만 하며 지냈다. 예전에는 첫 손님으로 남자들이 집을 찾아오면 복이 온다고 해서, 남정네들은 설 새벽 서로의 집을 방문 한 다음 조상님께 ‘차례’를 지냈다.
설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무척 많다. “정초(正初), 세수(歲首), 세시(歲時), 세초(歲初), 신정, 연두(年頭), 연수(年首), 연시(年始)” 등이며, 비슷한 의미의 ‘원단(元旦), 원조(元朝), 정조(正朝), 정단(正旦)”등의 말은 ‘설날 아침’을 뜻하는 한자어다.

설날 떡국 상 차림의 의미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도 부른다. 음력 1월1일인 이 날은 집안 어른들의 한 해 건강을 기원하며 세배를 드리고 형제들끼리 덕담을 나누며 상호 맞절로 세배를 한다. 이렇게 설날 음식은 가족끼리 세배를 하며 덕담을 나누면서 즐기는 가족 만찬이자 인사차 들른 이웃과 친지들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정(精)을 나눈다는 풍성한 의미를 갖는다.

설 상차림의 주인공은 떡국. 지역마다 동그랗게 혹은 길쭉하게 썰어 모양을 달리 하거나 이북지방에서는 누에고치 모양으로 작게 만든 조랭이 떡국을 만들어 먹는다.
떡국은 설날이면 으레 먹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경상도 지방에서는 설날 차례 상에도 밥 대신 떡국을 올려 차례를 지낸다.

생일에 국수를 먹으며 장수를 기원하듯, 그 많은 전통음식 중에서도 정월 초하루 첫 상에 떡국을 올려 나누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 설날 떡국으로 식사를 한 다음 후식으로 다과를 나누는 ‘다과상 차림’에 나갈 음식과 덕담을 나누며 차를 마시면서 함께 먹을 수 있는 다식이다. 모든 음식은 화학 색소를 사용하지 않고 곡식을 이용한 자연 색과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포인트. 약식도 1인이 먹기 좋은 양으로 작은 컵에 담아 낸다.

 <열양세시기>라는 문헌에 보면 “좋은 쌀을 빻아 체로 친 후 고수레를 하고 그 가루를 시루에 쪄서 안반 위에 놓고 떡메로 친다. 조금씩 떼어 손을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발같이 늘인 떡을 권모(拳摸: 골무떡)라고 한다. 장국을 펄펄 끓이다가 권모를 돈 모양으로 둥글게 잘라 넣고 돼지고기, 소고기, 꿩고기, 닭고기 등을 넣어 알맞게 끓여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는데 이것을 떡국(湯餠)이라 한다”고 적혀 있다.

쌀을 빻아 찐 다음 길게 뽑은 가래떡의 떡가래처럼 가족과 이웃 모두가 장수(長壽)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순수함을 의미한다.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고 부르며 새해 첫날 첫 음식으로 먹는 것도 365일 평탄하게 지내고 나이를 한살 더하라는 ‘무병무사’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연유했다.
한편으로 가래떡을 쌀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정월이면 가난한 집에서는 쌀 구경하기가 어렵던 옛날, 쌀로 떡을 빚어 떡국을 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나눠 먹을 수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가래떡을 동그랗게 써는 것은 엽전 모양 같은 떡을 먹음으로써 재화가 늘어나 부자가 되고 싶은 서민들의 기원을 담고 있다.

이 떡국도 지방마다 떡을 써는 모양이나 조리법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보통은 엽전모양으로 동그란 모양인 것과 달리 이북 개성지방에서는 조랭이 떡을 만든다. 떡의 가운데 부분을 잘록하게 누에고치처럼 만들어 끓여 먹는 조랭이 떡국은, 맛에서 차이를 느낄 수 없어도 보는 재미를 더해 명절 기분을 느끼게 한다.

조랭이 떡은 금방 뺀 굵기가 가느다란 가래떡을 일정한 길이로 잘라 대나무 칼로 가운데를 살짝 눌러서 조롱박 모양으로 만들었다 해서 이북 사투리로 ‘조랭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누에고치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의미와 재물, 풍년, 경사를 부르는 길운(吉運)의 상징. 특히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지방 백성들이 나라가 망한 한을 조랭이떡을 만들면서 풀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 온다. 칼로 떡의 중앙을 한번 찍어 누르는 것이 태조 이성계의 목을 조르는 것을 뜻한다는 것. 야사로 전해지는 역사는 구전되는 것이 많아 사실을 확인 할 길은 없지만 역사학자들은 상당한 신빙성을 가진 내용으로 믿고 있다.

설날에 차려내는 전통 상차림의 기본은 ‘떡국 상차림’, ‘다과 상차림’, ‘차 상차림’. 밴쿠버에서 우리전통생활문화 지킴이를 자청하고 나선 이경란(전통문화원 ‘예랑’ 원장)씨. 제자의 도움을 받으며 부지런히 조리를 하고 있는 부엌에는, 흰 재료는 더 희게, 검은 재료는 윤기를 더해 더 까맣게 손질되어 있다. 저마다 원색을 드러내며 기다리고 있는 재료를 보는 것만으로 명절의 풍성함이 느껴진다.

아일랜드 주방 작업대 위에는 양념류를 제외하고도 상 차림에 쓰여질 재료가 수 십 가지. 주방 안을 종종걸음 치며 바쁘게 움직이는 어깨 너머로 한 수 배울까 해서 기웃거렸지만, 워낙 많은 재료들의 종류에 가르쳐 준다고 해도 쉽지 않을 듯 하다.

가지런히 정리된 재료들 곁으로 어느새 완성된 까만 깨강정이 쌓이고, 소복하게 눈이 쌓인 테라스에 놓여 있는 항아리에서 떠 온 식혜 위에 살포시 살얼음이 떠 있다. 뽀얗게 삭힌 쌀알이 바닥에 깔려 있는 맑은 물이 깔끔하다. 마시는 음료 하나에도 이런 정성으로 빚은 마음이 느껴지는 것, 그 마음을 음미하며 서로의 정을 느끼는 것, 이런 것이 우리 전통 음식이 가진 아름다움이다.

한식은 강렬한 향과 소스를 사용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잠시도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맛과 색을 잃어버린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 명절 음식은 그래서 “종합예술”에 가깝다.

◇ 명절에 식사와 후식이 끝난 후 마지막 코스로 내놓는 차상 차림. 좋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면 소화 흡수가 빨라져 허전함을 느끼지 않도록 다식을 곁들여 내놓는다. ‘예랑’ 지하에 꾸며진 다실에서 차를 나누며 설날 다도예법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경란 원장과 최정옥씨, 김애경씨(사진 왼쪽부터).

이경란 원장이 50여 가지 음식을 조리하고 만들어 설 상차림에 내 놓기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 남짓. 하루 전 재료를 모두 준비해 두고, 조리할 재료의 흐름을 꿰뚫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보고 먹고 자란 것이 곧 배움이었지만 전통이라면 진저리를 냈었지요. 절대 그런 집안에 시집도 안 가겠노라 다짐했지만 피는 못 속이는 지, 내 나이 마흔 아홉에 시작한 공부가 전통생활문화였습니다. 그때부터 어른들 찾아 다니며 배워서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게 제 스스로 신기하죠.”

철종의 6대손. 우리나라 마지막 정경부인의 손녀라는 등 왕실의 자손이란 것이 요즘 세상에 ‘다 부질없다’고 차치 하더라도, 음식 솜씨만은 물려 받은 게 틀림 없어 보인다. 그래서 예부터 남자들이 장가를 들 때 “장모 자리 손 맛을 보면 신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나왔을 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손끝 흐름에 따라 기계로 찍어 낸 듯 앙증맞은 다식에서부터 정과가 순서대로 나왔다. 순수 곡물과 자연 재료를 이용한 우리 음식의 정갈하면서도 아름답고 화려한 색깔과 그 모양에 구경하던 사람들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어머니의 손길에서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응석쟁이 아이 마냥 잠시도 틈을 주지 않던 음식 앞에서 경건함 마저 생긴다.

“음식은 정성이 맛을 낸다고 보면 됩니다. 이 말은 곧 조리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구요. 급하다고 중불에서 조리할 음식을 불을 높이면 어김없이 빛깔이 변해서 맛은 괜찮을 지라도 결과적으로 망친 음식이 됩니다. 간장, 소금, 고춧가루, 참기름이 모든 음식에 기본 양념이 되는 한식은 대화하듯 눈길을 주거니 받거니 교감을 나누며 만들 때 비로소 그 음식이 내게 답을 하지요. 그것이 곧 정성이라 할 수 있고……”

인삼정과만 해도 그렇다. 미리 설탕을 듬뿍 넣어 넉넉하게 만든 시럽에 인삼을 푹 담궈서 꿀에 한번 더 졸이면 될 것을, 일일이 수저로 인삼 위에 설탕 물을 끼얹어 졸이는 정성. 사진으로 간단하게 보여지는 사진 한 컷에 나온 음식 하나에도 열 번 스무 번 손길이 스치고 지나간 다음 나온 음식들이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검은 깨 강정

재료 검은 깨, 꿀, 땅콩
① 바닥이 두꺼운 프라이팬에 검은깨를 넣어 볶는다.
② 1의 재료에 조각 낸 땅콩을 넣고 소금을 넣은 다음 한번 더 볶는다.
③ 깨 모양이 볼록볼록 해지면 불을 약하게 한 다음 꿀을 넣어 잘 저어준다.
④ 바닥이 반듯한 그릇에 곱게 펴서 1분 쯤 방치한 후, 김만 빠지면 예쁘게 썰어낸다.

■인삼 정과

재료 인삼 3~4뿌리, 설탕 2T, 꿀 1T
① 프라이팬에 먼저 설탕을 붓고 물을 넣는다.
② 중간 세기의 불에서 녹인다
③ 녹인 설탕 물에 인삼을 올린 다음, 수저로 물을 떠서 인삼에 끼얹으며 졸인다.
④ 뽀얀 거품이 일면서 물이 거의 졸아들면 꿀을 넣어 같은 방법으로 잠시 더 졸인다.

■ 궁중떡볶이

재료 흰떡 250g, 숙주 100g, 당근 200g, 양파 50g, 표고버섯 2장, 느타리버섯 5장, 쇠고기 50g, 달걀 지단 1개, 잣가루 1/2c
쇠고기양념장: 간장 2/3T, 설탕 1t, 다진 파 1t, 다진 마늘 1/2t, 참기름 1t, 깨소금1t, 후춧가루 약간 참기름 장: 간장 1t, 참기름1t

① 흰떡은 4~5cm길이로 잘라 2등분해서 끓는 물에 데쳐 건진다.
② 1의 떡을 기름장에 버무려 놓는다.
③ 소고기는 파, 마늘, 간장, 참기름으로 양념해두고, 숙주는 머리를 뗀 다음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소금, 흰파, 마늘, 참기름으로 양념, 느타리는 살짝 데쳐 건져 놓는다.
④ 표고버섯은 기둥을 떼어 채 썰고, 당근은 채 썰어 소금으로 살짝 절여 볶고 양파와 파도 각각 볶아 놓는다.
⑤ 먼저 고기를 팬에서 볶다가 표고버섯을 넣어 볶으며 살짝 물을 넣어 국물이 자작하게 되도록 익힌다.
⑥ 5의 재료에 떡을 넣어 익힌다.
⑦ 마지막으로 볶아 둔 야채를 모두 넣고 간장, 설탕,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
⑧ 예쁘게 담은 다음 위에 잣가루를 뿌리고 지단을 얹어 낸다.

■ 고구마경단
재료 고구마, 소금, 잣가루
① 고구마를 푹 삶아 으깬 후 소금 간을 하고 작은 크기의 경단을 만든다.
② 잣가루에 경단을 굴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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