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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문화재 이수자 지정은 명예가 아닙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2-14 00:00

‘특별한 과거, 이 분야 전문가' 왕년에... 중요무형문화재 45호 대금산조 이수자 오명근씨

대금연주자 오명근씨. 그의 스승은 한국인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당대 최고의 대금산조 명인 죽향(竹鄕) 이생강(李生剛) 선생과 김진성 선생이다. 대금산조 인간문화재 이생강(李生剛 67) 선생은 대금을 넘어 피리, 단소, 소금, 퉁소, 태평소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전통 관악기에 통달한 예인(藝人)이다.

오명근씨는 이생강 선생으로부터 민속악 대금산조와 소금, 단소, 피리, 김진성 선생에게서 궁중음악 정악대금을 사사 받았다. 또한 전라도 광주 전주를 돌며 대금 제작과 소금, 단소 제작법을 배웠다. 99년 대금산조 45호 이수자로 지정을 받은 그는, 한국에서의 강의 제의와 아쉬워하는 스승의 마음을 모두 외면한 채 밴쿠버 이민 길에 올랐다.

■대금에 매달린 외골수 50년

“제가 대금을 끌고 밴쿠버까지 온 게 아니라 분신인 대금이 저를 끌어 안고 있습니다.”
‘이곳까지 와서 대금을 놓지 않을 바엔 차라리 한국에서 보장된 수입과 명예를 누리는 편이 낫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15세에 대금을 처음 만진 이후 대금을 손에서 놓아 본적이 없다는 오명근씨가 이같이 답했다. 한진건설 직원으로 김해공항건설 현장과 해외출장을 떠난 기간 잠시 스승의 곁을 떠났을 뿐 대금을 끌어안고 살았다.
2008년 2월도 어느새 중순을 향해 치닫는 어느 이른 아침, 버나비 에드먼즈의 작고 아담한 아파트에서 녹차 한잔을 앞에 놓고 그와 마주 앉았다. 이런 인터뷰는 말 보다 차 향에 걸 맞는 청아한 대금소리로 시작하는 것이 어울릴 듯 해 대금산조 한 곡을 청했다.
올해 65세. 넉넉하게 품을 잡아 만든 소박한 개량한복을 입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대금 ‘길 들이기’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50여 년 한 길을 고집한 외골수로 여겨지지 않도록 해맑아 보였다. 그러나 대금 연주를 시작하려는 그의 얼굴은 엄숙하고 진지했다.
“악기도 사람처럼 아침엔 소리가 잠겨요.”
잠시 소리를 가다듬어 ‘칠갑산’을 연주 한 그가 “대금도 사람의 따뜻한 훈기를 안으로 불어 넣어주고 온기가 흘러야 비로소 제 소리를 낸다”며 활짝 웃었다.

■청아한 대금 소리 듣고 충격

서울 홍릉 토박이인 오씨의 어릴 때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명문 경기고등학교에 진학,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는 것이 수순이라 생각한 그는 아침마다 홍릉 산에 올라가 발성연습도 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중학교 2학년 시절, 우연히 대금소릴 듣고 불꽃이 번쩍 튀는 듯한 강한 충격에 그 길로 대금에 마음을 빼앗겨 국악반이 있던 명지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대금 연주자’로서 멀고 험난한 고생이 시작되었다.   
“대すジ?뚫어 만든 악기에서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얼마나 청아하고 아름다운지 충격적이었어요. 그 악기가 대금인 줄도 모른 채 뚫어진 구멍과 구멍 사이를 손가락으로 잰 다음, 연탄집게를 달궈서 대나무를 뚫어서 만들었더니 비슷한 소리가 났어요.”
대금의 몸통 부분인 대나무 관(管)의 내경(內徑)을 뚫어 일정한 크기로 판 뒤 취구(吹口)와 지공(指空), 청공(淸孔)을 뚫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가난했던 그의 집안은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여력이 없었고, 배고픈 직업이라는 편견으로 음악인으로 성장하길 바라지 않았다.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국악반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배우는 것이었다.
“다행히 명지고등학교에 국악반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수업이 끝나면 매일 지도를 해주셨는데 대금, 소금, 단소, 시조, 찬가, 가야금, 거문고 등이 있었는데 저는 주저 없이 대금을 잡았죠. 이 3년 동안 국악과 음악 전반의 기초를 다질 수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강력한 반대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정규 음악교육을 받고 국악을 전공한 쟁쟁한 사람들 틈에서 대금산조 인간문화재의 이수자가 되기까지 그는 험난하고 고독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국립국악원 찾아가 정악대금으로 입문
 
경영학을 전공한 오씨는 졸업 후 한진건설에 취업했다. 직장인이 되어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해지자 그 길로 곧장 대금을 가르쳐 줄 스승을 찾아 나섰다.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앞에 있던 국립국악원을 찾아가 작고한 인간문화재 한범수선생을 만나 정식으로 대금의 세계에 입문했다.
“대금은 정악인 궁중음악과 풍류음악을 연주하는 산조로 나누어 집니다. 정악은 다른 악기와 합주로 해야 하고, 산조는 가락이 화려하고 빠른 손동작으로 하는데 대금 연주는 정악대금부터 입문하는 것이 순서라고 할 수 있죠. ”
직업상 퇴근 후 접대 술 자리와 회식자리에서도 중간에 빠져나가는 그를 두고 ‘젊은 사람이 뭘 그런걸 배우냐’는 비웃음도 있었다. 그의 대금 가방을 낚싯대로 오해한 동료들은 ‘낚시에 미쳤다’며 손가락질 하기도 했다. 그러나 15세 때부터 ‘벼르고 별러’ 시작한 정악 대금연주에 심취한 그는 퇴근하기 무섭게 이문동으로 달려가 대금 연주와 함께 연주의 바탕이 되는 대금 제작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수년간의 연습과 애착으로 숙련기에 접어들 무렵 오씨는 한진건설이 김해공항건축공사를 맡으며 김해로 발령이 났다. 부득이 스승 곁을 떠나야 했던 그가 다시 돌아 온 것은 5년 뒤. 한범수 선생이 작고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는 다시 대금을 가르쳐 줄 스승을 찾아 나섰다.

■이생강 선생을 만난 것이 행운

“이생강 선생님을 만난 것이 저의 대금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활짝 꽃피우게 한 가장 큰 전환점이었죠.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이신 선생님은 소금, 단소, 퉁소, 피리, 태평소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전통관악기 대가이시죠. 봄 가을 선생님과 ‘산 공부’를 가면 ‘세상시름 다 내려놓고 대금을 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죠.”
그가 이생강 선생을 만나 대금 산조를 배우며 특히 악기 제작법을 익힌 것이었다. 대금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국악기임에도 불구하고 표준적인 제작방법 없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대금을 만들고 있다는 현실을 알고 대금 제작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 된 것. 이후 전라도 광주와 전주를 돌며 악기제작 명인들을 만나 배우기도 했다.
“대금은 나무의 성장과정부터 인내와 절제를 담고 있죠. 대금 제작용 대나무는 몸통 부분인 대나무 내경(內徑)이 17㎜ 이하라야 하고 약간 납작하게 휘어져 ‘병신 대나무’로 일컫는 ‘쌍골죽’이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쌍골죽은 해풍이 부는 8부능선에서 모질게 자란 나무죠.”
이런 나무가 대금으로 좋은 이유는 대나무이지만 쇳덩이처럼 단단해 악기를 만들었을 때, 나무가 소리를 먹지 않아 ‘쨍’하는 청아한 소리를 낸다는 것. 이런 나무는 예전에 쓸모 없는 나무라고 잘라서 버렸지만 요즘은 1만 그루 가운데 하나 나올까 말까 해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그의 가보도 쌍골죽으로 만든 대금이다.
 
 ■자신의 집에서 대금 무료지도

 “내가 어렵게 배운 것에 대한 보상은,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누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라는 오씨는 인간문화재 이수자 지정도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보유자인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같은 길을 발전 계승시킬 수 있는 사람을 지정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최근 대금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료지도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에는 배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제가 아니라도 가르칠 사람이 많고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내 작은 가르침이 씨앗이 되어 훗날 어떤 꽃을 피우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의 마음이 해풍을 맞으며 8부 능선에서 모질게 자란 분재 같은 대나무로 만든 대금소리처럼 맑고 깨끗하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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