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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한지와 종이예술 만나……”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4-14 00:00

페이퍼 아티스트 서윤주씨

한지(韓紙)와 색지(色紙), 감잎 물 들인 자연색지, 발광지 등 종이를 이용해 만드는 모든 예술 작품을 통칭 종이공예라고 한다. 칼로 조각하거나 가위로 오리고 물에 풀어 말리는 과정을 거치며 평면의 종이에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 넣는 종이예술. 손으로 종이를 접어서 만드는 공예는 가장 단순한 기법에 속한다. 최근 종이기둥과 컨테이너 박스의 기상천외한 건축소재로 이용된 ‘페이퍼 테이너’라는 장르도 생겼다. 페이퍼 아티스트(paper artist) 서윤주씨는 93년부터 학교와 문화원 강좌, 페이퍼 공예 전문 샵을 열어 활동했다. 현재 코퀴틀람 ‘Place Des Arts Center’에 페이퍼 공예 강좌를 열어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페이퍼 공예 강의를 하고 있다.

■ 아이들과 놀이로 시작한 종이공예

서윤주씨의 종이사랑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대 건축과 출신인 그는 결혼 후 자녀들의 눈높이에 맞춰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찾아 나섰다가 종이공예를 알게 되었다. 93년 즈음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종이공예를 들여 온 소수의 전문가들이 협회를 설립하고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던 태동기였다.   
“평면의 종이를 조각하고 접어서 만드는 종이공예의 재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고 신기했어요. 종이공예는 끝 없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고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탐구하고 싶은 욕구가 솟는 동화 같은 또 하나의 세상이 있죠.”
전통적인 미술 고유의 형식과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표현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창작의 세계에 심취한 그는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종이공예의 마력에 이끌려 그 길로 들어섰다. 특히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종이조각의 대가 피터 칼리슨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 장의 평범한 종이가 만들어 내는 피터 칼리슨의 종이조각은 작품마다 오려낸 원래의 종이를 흔적으로 연결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품마다 종이의 본질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거창한 작품일수록 근원이었던 종이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한정성을 담고 있어 아픔 같은 독특한 울림이 있죠.”  

■ 회화에서 조형물까지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도 한지(韓紙)에 치자와 감잎, 꽃잎 물을 들여 지함(紙函)을 만들어 바느질 함과 문서를 보관하는 등 생활용품으로 사용하고, 수진본(袖珍本)이라 해서 소매 안에 넣고 다닐 만큼 작은 책을 만들어 메모장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작품으로서 종이공예품이 선보인 역사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길지 않다.
평면의 종이를 접고 가위로 오려 사물을 만들어 내거나 겹겹이 붙여 만드는 등 단순한 기법에 그쳤던 종이공예가 예술 작품으로 승화 된 것은, 섬세한 가위질과 손놀림이 아이들의 두뇌발달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놀이’로서 시작되어 예술로 승화 되었다.

■ 4년 만에 전문가 자격증 취득

자녀들과 놀아주기 위해 시작한 종이공예에 엄마인 그가 심취, 초급 과정을 마친 후 아이들에게 종이 접기를 가르치며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아동심리미술을 전공하기도 했다.
종이와 씨름한 지 4년 만에 한지공예, 지승공예, 지호공예, 종이조각, 한지그림미술 등 관련 지도자 자격을 취득한 그의 이름이 종이공예 애호가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8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그의 지호공예 작품이 전국종이공예대전에서 2위를 차지했던 것.
한지를 물에 불려서 죽처럼 만든 다음 틀에 씌워 말려 떼어낸 속레 한지를 씌워서 1달 정도 건조시켜 색감을 입혀 완성하는 그의 지호공예 작품은 전국대회에서 수상경력이 말해 주듯 섬세하고 수준이 높아 호평을 받고 있다. 한지를 꼬아서 그 줄을 이용해 꽃과 동물 등 조형물을 만드는 지승공예와 종이조각, 한지그림미술도 그이 만의 독특한 예술성을 인정받는 분야.
“지호공예는 조금만 덜 말리거나 건조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곰팡이가 날 수도 있고 작품을 망쳐요. 그래서 애정을 많이 요구하죠. 그래서 더 애착을 갖게 되는 게 아닌가 해요.”
이 종이공예로 밴쿠버 이민을 왔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으며 의욕이 가득했던 그는, 이민 후 기울인 정성에 비해 전혀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밴쿠버에서 가끔 그만 두고 싶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기법의 창작품을 만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 속 어디선가 의욕이 불끈 솟는다.

■ 지호공예, 지승공예, 종이조각이 특기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는 지호공예와 종이조각.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을 단순화 시켜서 일러스트화 한 후 조각 칼로 여러 조각으로 잘라 연결시켜 입체적인 그림을 만드는 종이조각은, 두께가 없는 종이라 해도 조각 칼을 직선으로 잡을 경우 입체감이 사라지므로 반드시 칼의 각도를 45도로 기울여야  입체감을 살려낼 수 있다. 그는 이를 두고 ‘고통’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작은 액자 한 작품 만드는데 10일에서 1개월이 소요되는 중노동이지만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을 때 그 기쁨은 또 고통의 몇 배가 되기 때문이라고.
“모든 예술분야가 정신적인 고뇌와 창작의 고통이 따르지만 종이라는 소재가 쉬운 듯 보이는 것과 달리, 이렇게 정신과 육체를 일치시켜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빨려드는 것일 지도 모르죠.”

■ 코퀴틀람 ‘Place Des Arts Center’ 에서 종이공예 강사

조그만 종이 띠를 0.3mm 감아서 꽃봉오리로 만들어 브로치와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종이기둥과 컨테이너로 만든 건축조형물 공예 ‘페이퍼 테이너’까지 종이공예의 창작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페이퍼 아티스트’로 이민을 올 만큼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배우려는 사람이나 수요가 많지 않은 이곳에서 한동안 그는 작품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캐네디언의 소개로 3년 전부터 이곳 코퀴틀람 아트센터에 강좌를 개설하고 외국인들에게 종이공예를 가르치고 있다.

이재연 기자 jy@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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