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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없는 캐나다사회, 소수일수록 뭉쳐야”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04-24 00:00

문영석 캐나다학 교수 두 번째 강연 ‘캐나다 정치’

한국에서 최초로 캐나다학을 개설한 문영석 교수가 지난 15일에 이어 22일 오후 7시 밴쿠버 한인회관에서 ‘캐나다의 정치’를 주제로 두 번째 강연회를 개최했다. 문 교수는 이날 강연해서 캐나다 역사와 지리적 특성에 기인한 캐나다의 정치구조적 특성과 최근의 정치 이슈에 대해 언급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봤다.

“캐나다 정치구조는 3가지가 복합”

캐나다는 입헌군주국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내각책임제이며 지방분권적 연방제 국가다. 이런 구조는 대통령제나 중앙집권제 정치구조에 익숙한 한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할 수 있다.

“캐나다는 ‘캐나다 여왕’이 군림하는 나라”

캐나다는 여왕이 국가를 대표하는 나라다. 흔히들 퀸 엘리자베스 2세를 영국의 여왕이라고 하지만 시민권 선서에도 명시돼 있듯이 캐나다 국내에서 여왕의 공식적인 명칭은 ‘캐나다의 여왕(Queen of Canada)’이다. 시민권 선서는 캐나다의 여왕과 그 후손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총독(Governor General)은 여왕의 권위를 대리하는 자리로, 각국 대표가 캐나다를 방문하면 의전상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 또는 외교관들에게 신임장을 주는 것은 총독이다. 현재 미카엘 쟝 총독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들어 총독에 여성을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총독은 총리가 지명하면 엘리자베스 2세가 인준하는 형식으로 임명되는데, 입헌군주제에 따라 여왕은 총리의 지명을 거부할 권한이 없다.

“미국식과 크게 다른 내각책임제 국가”

캐나다의 정치는 내각책임제로 이뤄진다. 총선을 통해 연방하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내각을 구성한다. 현재 연방정부 내각은 보수당이 소수(약세)집권 중인 가운데 제1 야당 자유당이 지지율을 추이를 지켜보며 내각 불신임 기회를 찾고 있는 상태다.

연방정부는 전국적으로 또는 대외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을 비정치적인 전문직 공무원을 통해 관할한다. 국방, 형사법, 고용보험, 우편, 인구조사, 저작권, 무역규정, 외교, 통화와 금융, 시민권, 운송, 원주민관련 사안은 연방정부 관할이다.
연방과 주 정부, 지방자치단체는 각각 고유의 관할 영역이 있으며 상급정부가 이를 침해하지 못한다.

“주(州)를 하나의 나라로 봐야”

캐나다의 각 주는 한국의 도보다는 국가 개념에 더 가깝다. 캐나다는 지방자치제도가 잘 발달돼 있다. 인구는 적지만 국토의 넓이가 세계 2위 규모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통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 전통은 캐나다의 특징 중 하나로, 지역을 잘아는 지역 거주민이 직접 정치를 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주정부는 재산세와 주민들의 권한, 치안, 천연자원, 환경, 교육, 보건과 후생복지를 총괄한다.

“지자체가 실생활에 가장 큰 영향”

캐나다인들의 실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시청과 시의회)이다. 지자체는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대중교통, 토지사용계획, 도서관, 비상서비스, 동물통제, 경제개발을 총괄한다. 정치에 영향력을 가지려면 우선 한인 시의원부터 필요하다.

시청을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토지개발을 총괄하기 때문에 시민은 시청을 방문해 지적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향후 지역의 개발현황을 알아볼 수 있다.

“캐나다의 정치적 이슈, 퀘벡 독립”

영국계의 캐나다 점령 이후 차별대우를 받아온 퀘벡 주민은 세계적으로 식민들이 독립하는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독립의식을 고취한다.

결정적인 사건은 1964년의 ‘조용한 혁명’(Quite Revolution)이다. 1960년대 초까지 퀘벡을 통치한 것은 사실상 가톨릭 주교였으며 가톨릭은 평화로운 농촌사회를 지향했다. 2차대전을 거치며 캐나다의 타지역의 공업화를 목격한 퀘벡 주민들은 개혁의지를 갖고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던 공교육권한을 1964년 주교들이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사이에 폐지시켰다. 이후 퀘벡에서는 공업화와 함께 분리주의 운동이 힘을 갖게 된다. 분리주의 운동에 놀란 연방정부는 퀘벡이 캐나다 연방 내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퀘벡에 투자하기 시작해 이른바 ‘세인트 로렌스강의 기적’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후 퀘벡은 1980년과 1995년 두 차례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1998년 연방대법원은 퀘벡독립투표와 관련해 확고한 다수의 찬성이나 연방정부의 동의없이 퀘벡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독립투표 열기는 한풀 꺾인다. 최근에는 퀘벡 독립을 정강으로 하는 퀘벡당이 퀘벡내 제 3당으로 지지율이 내려앉으면서 독립투표를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캐나다의 헌법은 젊다”

캐나다는 국가적 상징을 최근에야 갖춘 젊은 나라다. ‘오 캐나다’가 캐나다의 국가로 제정된 것은 1980년, 캐나다의 국기 ‘메이플 리프(Maple Leaf)’는 1965년에 제정된 것이다. 캐나다의 헌법은 1982년에 제정됐다. 이전에는 영국이 식민지 경영을 위해 도입한 노스아메리카법을 바탕으로 작성된 1867년에 제정된 헌법이 있었으나 이 법은 캐나다의 입법과정에 영국의회의 간섭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82년 제정된 헌법은 영국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한 캐나다의 헌법이다. 그러나 이 헌법에 대해 퀘벡 주수상은 승인서명을 하지 않고 ‘퀘벡은 캐나다 타지역과 구분된 지역이다’라는 내용을 헌법에 담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캐나다의 민족적 절대 다수는 없다”

캐나다의 인구구조를 보면 현재 영어사용자 43%, 불어사용자 26%, 기타 언어 사용자가 31%에 달한다. 영어사용자 중에서도 자신이 영국계라고 밝히는 사람은 20.2%, 불어사용자 중 프랑스계는 15.75%에 불과하다. 즉 어느 민족도 다수일 수는 없기 때문에, 기타 31%를 인식해서라도 캐나다 정치인들은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대단히 조심하고 있는 편이다.

유권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면 소수에 속해있을수록 뭉쳐야 한다. 소수에 속한 한인들도 뭉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캐나다의 정치적 민도는 높다”

캐나다 유권자들은 표로 심판을 한다. 1984년 총선 당시 브라이언 멀루니가 이끄는 보수당은 연방하원내 305석 중 210석을 차지하는 캐나다 역사상 최고의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후 연방소비세(GST) 도입,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인기 없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 결국 에어캐나다 항공기 도입사업과 관련해 멀루니 총리가 22만5000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보수당은 1993년 총선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 단 2석을 차지했다. 그 후 보수당은 이합집산 단계부터 다시 정당을 추스르기까지 근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편 최근에 자유당은 퀘벡 독립운동을 막기 위한 광고집행제도인 스폰서십 제도에서 공금을 유용,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 보수당에 정권을 내주었다.
캐나다인들은 정치인의 부정을 용서치 않는다. 그 부정이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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