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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의 보물상자엔 지중해와 사막이 들어 있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11-07 00:00

>> 튀니지 기행
바다·하늘·대문… 三靑의 마을
사막 위엔 스페인풍 호화 리조트

플로베르는 "제르바를 두고 죽기가 억울하다"고 했다. 튀니지 동남부 지중해의 제르바섬은 "바다의 오아시스"로 불린다. 아름다운 해변 30㎞에 별 넷 이상 호텔만 130개가 늘어서 있다. 진흙 마사지와 바닷물 요법(thalassotherapy)의 세계적 명소이기도 하다. 중동 건설이 한창일 땐 사막 모래바람에 찌든 우리 근로자들이 잠시 객고(客苦)를 풀고 가곤 했다.

이곳 특급호텔 야디스 제르바. 저녁 뷔페 고기코너 맨 앞에서 요리사가 '로스트 포크'를 썰어주고 있다. 국민 98%가 모슬렘인 이슬람 국가에 돼지고기라니. 예외적인 외국인 관광특구라곤 해도 이슬람 최대 금기에 꼽히는 돼지고기를 버젓이 차리는 게 놀랍다. 돼지 도축부터 요리까지 이교도가 하고, 앞에 자그맣게나마 돼지 그림을 붙여놓아 모슬렘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튀니지는 그렇게 열린 나라였다. 여느 이슬람 국가와 달리 일상의 종교적 규율이 그리 엄하지 않다. 국부(國父) 부르기바는 1956년 프랑스의 73년 식민통치를 끝내고 건국하자마자 일부다처제와 히잡 의무화를 폐지했다. 수도 튀니스는 '북아프리카의 파리'라 할 만큼 서구적이고, '튀니스의 샹젤리제' 부르기바 대로엔 한껏 멋을 낸 여성들이 활보한다. 아랍족과 베르베르족 혼혈이 대다수여서 흑인도 거의 볼 수 없다. 사람들은 이방인을 살갑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튀니지를 가리켜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발은 아프리카에"라고 하는 모양이다.


튀니지 여정(旅程)은 보물상자를 열듯 시종 놀랍고 다양한 마주침이었다. 한반도 3분의 2밖에 안 되는 나라이지만 그림 같은 지중해 해안선이 1300㎞나 이어진다. 남서부엔 광막한 사하라사막이 펼쳐진다. 사막 언저리엔 야자나무 우거진 오아시스와 그랜드캐니언 못잖게 장대한 협곡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기원전 9세기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한니발의 나라 카르타고부터 로마, 비잔틴, 아랍, 오스만튀르크까지 이 땅을 거쳐간 문명들의 유적도 풍성하다. 뉴욕타임스가 2008년 3대 여행지에 꼽을 만하다.

화가 파울 클레는 튀니지에서 진정한 색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했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파란 대문이 어우러지는 삼청(三靑)의 마을이 튀니스 북동쪽 25㎞ 지중해변 언덕에 있다. 시디부사이드는 외벽을 하얗게 칠한 집집마다 청색에 흰색을 섞은 '튀니지안 블루'로 대문과 창들을 장식해 마치 동화마을 같다. 열대 붓꽃 부겐빌레아가 붉고 희고 노랗게 만발한 골목을 각국 관광객들이 어깨를 부비며 거닌다. 언덕길 끝엔 유서 깊은 '카페 데 나트'가 있다. 지드, 모파상, 카뮈, 클레, 생텍쥐페리, 드 보부아르 들이 민트차를 마시며 예술적 영감을 길어 올리던 곳이다.

지중해는 으르렁대지 않는다. 호수처럼 대륙 사이에 끼여 수줍은 듯 찰랑거린다. 수스에서 야스민 하마멧에 이르는 40㎞ 해변은 튀니지가 유럽인에게 얼마나 각광받는 휴양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두 5만 침상을 갖춘 고급 숙박시설들과 카지노, 놀이공원이 신기루처럼 들어서 있다.

신기루 같기는 내륙으로 한 시간쯤 달려간 한촌(寒村) 엘젬에서 느닷없이 만나는 콜로세움이 더하다.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튀니지를 지배한 로마가 3세기에 지었다. 3만5000명을 수용해 3번째로 큰 로마 원형경기장이자,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곳이다. 지하엔 14세 때부터 소년들을 가둬 검투사로 사육하던 방들이 있다. 방 한쪽엔 고기 놓는 곳, 다른 한쪽엔 물 놓는 곳도 그대로 남아 있다. 건너편 바닥이 안 보이는 40m 깊이 우물의 심연이 맹수들과의 사투를 기다리던 검투사들의 암담한 심사를 상징하는 듯했다. 엘젬 콜로세움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모티브가 된 곳이자 촬영지였다.

 


사하라로 다가가면서 만나는 아틀라스산맥 인근 메틀라우이 역에서 협궤 증기열차를 탔다. 기기묘묘한 협곡과 황토빛 구릉들을 누비며 왕복 86㎞를 달리는 열차 '붉은 도마뱀'도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붉은 열차가 사막의 도마뱀처럼 꼬리치며 달린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메틀라우이 남쪽 '숏 엘 제리드'는 마른 염호(鹽湖)다. 옛날 바다였던 곳이 융기해 5000㎢에 이르는 거대한 솔트레이크로 남았다. 사방 끝도 없이 널린 호수바닥 소금들이 햇빛을 받아 오렌지빛 핑크빛 초록빛으로 신비하게 빛난다.

사하라 초입 오아시스들로 향하는 길은 좁고 험해 4륜구동 SUV로 갈아타야 했다. 황야를 한 시간쯤 흔들리며 가자니 홀연히 호텔이 나타났다. 도저히 호텔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이글스가 노래한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불쑥 타메르자 팰리스가 나타났다. 그것도 5성급을 넘는 고급스럽고 안락한 시설, 객실 테라스 앞에 푸른 야자숲과 황폐한 옛 집들을 펼쳐 놓은 스페인풍 휴양호텔이다. 곳곳에서 묵은 다른 호텔들도 저마다 개성 있고 훌륭해 튀니지의 탄탄한 관광 기반을 말해줬다.

사하라 체험의 백미는 사막 깊숙이 들어가 유목민 베두인족과 함께 길게는 보름씩 살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하라 관문 두즈에서 1시간30분 동안 낙타를 타는 것, 영화 '스타워즈' 세트장이 있는 웅크쥬멜의 모래언덕에서 사막의 장쾌한 일몰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난폭하게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얹고 호텔로 돌아가는 사막길, 갑자기 일행 누군가 "낙타다"라고 외쳤고 차가 멈췄다. 땅거미 짙게 내린 찻길을 열댓 마리 낙타떼가 건너고 있었다. 유원지, 지중해 비치, 골프장 입구까지 돈을 받고 관광객을 태워주는 낙타들이 있었지만 사막을 가는, 날것 그대로의 낙타였다. 다들 카메라를 치켜들고 낙타떼를 쫓았다.

사람들에 놀라 낙타들이 뛰기 시작했다. 목동이 무리 맨 끝을 가던 낙타 한 마리의 고삐를 잡아 멈춰 세웠다. 갑자기 나타나 훼방놓는 이방인들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사진을 찍으라는 말없는 배려였다. 튀니지 사람들은 그렇게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 여행가이드

한 달 미만 머물면 무비자. 예방주사도 필요 없다. 지중해성 기후로 7월 평균 기온 29도, 겨울 11도. 음식은 거부감 없이 잘 맞는 편이다. 어디든 고추장 비슷한 매운 고추소스 하리사가 나온다. 무를 얇게 썰어 붉은 고추에 버무린 도르시는 영락없는 깍두기다. 야자대추 다마르는 우리 곶감보다 달다. 1㎏에 1디나르(1000원가량), 실속 있는 귀국선물감이다. 카타르항공은 도하를 거쳐 튀니지까지 연결하는 항공편이 다양하다. 지금은 오사카에 잠시 멈추지만 도하 직항 허가를 받아놓고 운항시간을 협의 중이다. 주한 튀니지대사관 (02)790-4334. 카타르항공 (02)3708 -8542.


튀니스(튀니지)=글·사진 오태진 기자 tjo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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