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쩨쩨하게 시작 말고 큰 포부로 공부하라"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8-12-04 00:00

김윤식 서울大 명예교수
곤충학·어류학도 인류를 위해 공부할 수 있어
식민사관 극복하려 사명감으로 한국문학 연구

 

▲ 김윤식 교수는“루카치를 공부하며 소설이 인류사와 더불어 진화한‘근대’의 장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김모(某)라는 사람은 남의 글 읽고 가르치고 쓴다고 생을 탕진한 사람입니다. 지 글은 하나도 못쓰고, 왜그런가 하니, 자기는 쓸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남의 글 아주 애 써서 읽고 해설하느라 탕진한 사람이지.”

지난 11월 10일 서울 동부이촌동 김윤식(72) 서울대 명예교수의 자택을 찾았을 때 그는 자신을‘아무개’로 얼버무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비평가는 남이 쓴 글 읽는 사람이요. 전부 죽은 사람의 글들이니 시체를 읽는 거지. 책이란 게 관(棺) 아니요? 이걸 살아있는 사람인 내가 몸을 빌려줘야 읽을 수가 있잖소. 그러니까 묘지기가 아니고 뭐야.”

한국문학 비평사에 그의 족적은 너무나 크고 화려해 설명이 필요없다. 문학을 전공한 이들 가운데 김 교수의 책을 읽지 않은 이가 있을까. ‘미증유의 필력’이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다.

“한 150권 정도 집필하지 않을까요. 서울대 교수정년(2001)을 마치고 나서도 20권 넘게 썼으니까…. 개중에 10권 정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겸사의 표현이지만 1973년 박사논문을 묶은 첫 책‘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이후 어림잡아 35년 동안 1년에 4권이 넘게 책을 냈다. 오직 앞뒤 돌아보지 않고 평생 공부하고 책읽고 글쓴 결과다. 시인 고은은 김 교수의 의식을 빗대‘온통 박물관 지하실 명제들이 줄 서 있다’고 했다.

“고은 선생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한국에 독종이 둘 있다. 하나는 고(故) 박경리 선생이고 하나는 김 아무개다.’시인의 직관으로 그런 말을 했어. 어떤 면에선 제대로 봤구나 생각이 드는데….”

 

□ “교장 선생님이 돼라”

“경남 마산이라는 조그마한 항도에서 학교를 다녔지. 총리를 지낸 노재봉씨는 마산중학에 다니고 난 마산상업학교를 나왔어. 서울대 상과대학에 진학하려는데 웬걸 아버지가 말리셨어요. 교장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어요.”

김 교수는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한다. 고교시절, 시를 써서 중앙지에 실리기도 했고 대학생이 돼서는 소설가를 꿈꿨다.“ 아직도 습작 원고가 남아있다”고 했다. 한번은 당대 지식인들이 주로 읽던 월간 ‘사상계’에 소설을 투고, 최종 본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대학에서는 학문을 가르쳐요. 향찰식 표기법이니 순경음이 어떻고 반치음이 어떻게 변하고 아래아가 어떻고… 재미가 없어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잖소. 2학년 때 군에 가버렸어. 자원해서.”

군복을 벗고 복학해 대학원에 적을 두게 됐을 땐 벌써 소설이나 시를 쓰겠다는 생각은 깡그리 떨쳐버린 뒤였다.“ 복학해서 돌아오니 친구도 없고…그래서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 할 수밖에”라고 했다. 그는 창작 대신 학문에 빠져든다. 당시 인문학도들에겐 민족적 사명감이 있었으니 ‘식민사관 극복’ 이었다.

“‘너희 민족이 못나 잘난 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식민사관 아닙니까. 이런 일본학자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옳다면 할 수 없지만, 제국주의가 만든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면야 부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 밝히는 게 당시 남북한 인문학도의 사명이었지요.”

당시 북한에서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속도를 내고 있었지만 남한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규장각에서 18세기 대구지역 토지대장이 나온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토지대장을 분석해보니 남한에서도 땅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경영을 했다는 증거가 나온 거지. 김용섭 교수가 ‘조선후기농업경제사’연구를 통해 밝혀낸 것이었소. 우린 밤새워 토론하고 공부하며‘식민사관은 가짜’라고 외쳤지. 자생적 근대화론의 가능성을 열어 놨던 것이지요.”

그는 식민사관 극복이란 관점에서 1973년 김현 선생과 함께‘한국문학사’를 펴냈다. 두 사람은 한국 근대의 시점을 영·정조 시기인 18세기까지 끌어올려 한국문학사를 정리했다. 모든 장(障)과 문장을 석공처럼 고치고 다듬은 결과였다.

김 교수는 인문학의 식민사관 극복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문학과 상관없는 세계정치사를 조망해야 했고 근대라는 자본주의를 경제학을 통해 배워야 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쩨쩨하게 식민사관이나 조선민족, 국가를 위한 공부보다 인류가 나가는 길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루카치가 가르쳐줬어요. 헤겔, 마르크스, 골드만 이 패들이 바로 인류를 위해 공부한 사람들이지.

 

□ “인류를 위해 공부하자”

1970년 하버드대 옌칭 장학금으로 도쿄대에 유학간 30대 서울대 교수는 이 대학 정문 서점에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을 읽고 충격에 빠진다. 한국에서 금서인 그 책을 그 날 밤새워 읽었다고 한다. 루카치를 공부하며 “소설이 인류사와 더불어 진화한 ‘근대’ 의 장르” 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그런 공부 라면 해볼만 하지 않겠느냐” 고 환호한다.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 서문을 ‘복되도다’ 로 시작했어요. 시를 써버린 것이지요.‘ 우리가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할 길을 창공의 별이 지도가 되고 그 별이 우리가 가야할 길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라고 했어요. 그때 식민사관 같은 이데올로기를 연구하지 말고 인류사를 위해 공부해야겠다고 깨달았소. 소설을 가지고도 인류사회가 나가야할 길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루카치가 가르쳐 줬어요.”

김 교수는“인문학은 아직도 유효하고 위대하다”고 주장한다. 평생 소설과 문학공부에 빠져 살았지만“여전히 소설을 통해서도 인류사를 공부할 수 있다”고 외친다.

“지엽적이고 쩨쩨한 공부 대신 큰 공부를 하세요. 가령 소설로도 인류사를 공부할 수 있어요. 곤충학이나어류학도 인류를 위해 공부할 수 있지요. 처음부터 좁게 출발하지 말고 큰 포부를 갖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해요. 비틀즈의 노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러시아의 무인 우주선에 실려 우주로 퍼지듯 자연과 우주, 인류사를 위해 공부하세요.”

 

김태완 맛있는공부 기자 kimchi@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암기 예행 연습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발표할 내용이 확정되면 이를 외운다.  발표 -발표를 할 때는 몸을 꾸부리지 말고 똑바로 서서 말한다. 특히 몸을 자주 비비 꼬거나 조바심을 내는 행동으로 청중의 집중을 딴대로 돌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청중들의 눈을...
김윤식 서울大 명예교수곤충학·어류학도 인류를 위해 공부할 수 있어 식민사관 극복하려 사명감으로 한국문학 연구   ▲ 김윤식 교수는“루카치를 공부하며 소설이 인류사와 더불어 진화한‘근대’의 장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허재성...
비자없이 가는 미국여행 김성윤 기자 gourmet@chosun.com   "니가 가라, 하와이."영화 '친구'에서 동수(장동건)가 '부산 조직폭력계를 떠나 하와이에서 쉬다 오라'는 준석(유오성)에게 내뱉은 말.장동건은 가기 싫었는지 모르겠으나, 하와이는 전 세계 신혼부부들이...
인도의 눈물 2008.12.04 (목)
  아요디아는 인도 북부의 작은 도시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이곳은 진실과 도덕의 화신이면서 신에 필적하는 완벽한 인간 라마왕의 출생지다. 힌두교도들에겐 매우 중요한 성지중 하나. 아요디아의 불행은 그곳에 하필 이슬람 사원이 함께 있다는 데서...
"나의 불찰...죽음으로 사죄" 유서직원들 “검찰 수사 부담 느꼈다” 3일 오전 11시40분께 서울 마포구 현석동 A아파트 앞의 한강변 산책로에서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장인 신모(58) 씨가 극약을 마시고 숨져 있는 것을 신 씨의 동생(47)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제 한파로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는 가운데 박명수, 유재석, 정준하 등 MBC TV ’무한도전’에 출연 중인 개그맨들이 약속이나 한 듯 훈훈한 선행을 펼치고 있어 화제다. 3일 아름다운재단에 따르면 박명수와 유재석은 최근 수년 동안 매달 일정 금액을 이...
[조선데스크] 좀비 기업과 건설업계의 위기 차학봉·산업부 차장대우 hbcha@chosun.com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부실업체까지 정부와 금융권이 부도를 막아주고 있는 실정이에요." 최근 만난 A건설업체 사장은 부실기업까지 정부와 은행권이 부도를 막아주는 바람에...
비타민과 철분, 칼슘 등의 영양소가 풍부해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굴은 지금이 딱 제철이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가되고, 생으로 먹어도 익혀서 먹어도 좋아 가족들에게 환영받는 굴요리. 맛있게, 건강하게 먹는 방법을 공개한다. 생으로… for...
  [OSEN=상암, 황민국 기자] '스리백에서 포백 다시 스리백. 정신 없네'. 수원은 3일 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1-1 무승부로 끝난 서울과의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경기 내내 변화무쌍한 수비 전술로 상대팀과 축구팬들의 눈을...
노건평씨 세종증권 비리관련 혐의 내용은… 검찰, 노건평·정대근씨 만난 호텔영수증 확보 알선수재죄 인정되면 최고 징역 5년형 처벌 류정 기자 well@chosun.com  김경화 기자 peace@chosun.com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과정에 개입해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노무현 전...
“경제위기 대처 위한 대안”
BC 노동조합(The B.C. Federation of Lavour)과 캐나다 노동 의회(CLC)가 야 3당의 정치적 연합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12월4일 오후 6시부터 이번 사안과 관련된 정치 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장소는 밴쿠버 컨벤션 센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BC 노조 짐...
ESL교사 “한인 일부, 영어 실력보다 점수를 더 중시하는 경향있다”다양한 표현 익혀야 유창한 영어 완성… 오디오북 학습에 도움     사진제공= 인디고-CNW   캐나다와 한국에서 12년간 활동 경력을 가진 ESL교사 자넷 로이츠(Roitz)씨에 따르면 영어를...
영어 열등감 2008.12.03 (수)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언어 습득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는 모국어 말고도 몇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 7세 이전의 아이들은 발음과 언어인식구조에서 모국어를 배우듯 자연스럽게 언어와 문법...
가르치다 보니… 한 푼 없구나 노후준비 최대 敵은 자녀교육비본지·피델리티·현대경제硏 '은퇴준비 인식조사'"계획조차 못한다" 32.1%노부모 부양 의식은 점점 줄어현 40~50대 노후 대비 가장 취약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노모(42)씨의 전 재산은 서울 강남의...
   [줄줄 새는 중기(中企) 지원금] 중기(中企) 위장해 수십억 타내고, 연구비로 빚 갚고 접대 대기업 계열사 등 한해 1조원 이상 받아가 "눈먼 돈 타내자" 中企자금 브로커들 활개 정부가 매년 수십조 원에 달하는 정책 자금을 집행하지만, 복잡한...
북한이 황해남도 해변 지역에 대량으로 떨어지는, 남측 민간단체들의 대북 '삐라'(전단)를 수거하기 위해 군인(軍人)들을 동원하는 등 '삐라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일 중국 내 대북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방송은 이날...
  수면자세 안에 허리건강의 키워드가 숨겨져 있다. 반듯이 누워있을 때 허리 속으로 손이 들어가지 않으면 척추후만증, 반면 손이 너무 쉽게 들락거리면 척추전만증, 무릎을 높게 세우고 자는 것이 편하다면 척추관 협착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자고 난...
  매년 가을이 되면 프랑스 어느 작은 마을 전체가 전세계 뉴스에 나올 정도로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지난 글에서 필자가 잠깐 언급한 것처럼 보졸레는 전세계인의 와인 축제나 다름이 없다. 11월 20일은 전 세계 와인애호가들이...
   보통 자신이 없으면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게 인지상정이다. 메이저리그 FA 박찬호가 선발보직을 보장할 수 있는 팀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령탑인 한화 김인식 감독은 1일 45명의 대표팀 후보선수...
   최근 스타들의 드라마 고액 출연료 문제가 관심을 끄는 가운데 ’한류스타’ 권상우와 중견배우 김해숙이 드라마 시장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잇따라 출연료 삭감하고 나서 고액 출연료 거품빼기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드라마...
 1351  1352  1353  1354  1355  1356  1357  1358  1359  1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