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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미소를 닮은 사람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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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9-03-27 00:00

중년부부의 미얀마 여행기

깔로 트레킹(2)

새벽 닭 소리는 언제나 정겹고 싱그럽다. 이 새벽의 재촉에도 이불 속에서 뭉기적대기란 쉽지 않다. 밖은 아직 안개가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지만 우리는 길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조촐한 아침상에 이어 어제 밤 집주인이 정성껏 만든 대나무 찹쌀 밥으로 후식까지 챙겨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대나무 속에 넣어 구워낸 찹쌀 밥은 가래떡 모양인데 사탕수수 조청에 찍어 먹는다.) 대나무 건조대에 널어 두었던 빨래들이 밤새 안개로 눅눅하다.


이 집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마당에 나와 우리를 배웅했다. 꼬마녀석이 아내가 지팡이로 사용했던 대나무를 얼른 들고 왔다. 잠깐 머물다 가는데도 그새 정이 들었나 보다. 엄마를 도와 수고한 큰 딸아이에게 꼭 선생님이 되라 말해주고 아끼던 볼펜을 손에 쥐어주었다. 계속 오르막이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주로 논밭과 마을을 지난다. 만다익 시골 간이역에서 잠시 쉴 때, 송일국의 왕팬인 시장 국수집 처자에게 줄 주몽 포스터를 한 장 구입했다.


날씨는 여름처럼 더웠지만 지금은 건기인데다가 파종 전이어서 한가한 농촌 풍경이 갈색 톤으로 이어졌다. 물소는 쟁기를 끌어 논을 갈고 있고, 농작물을 머리에 이고 장에 가는 시골 아낙네들이 우리를 스쳐갔다. 백일도 안된 갓난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가 잰 걸음으로 장에 가기에, 불러 세워 포대 속에 있던 콩깍지를 샀다. 아기 엄마는 시장에 가기도 전에 물건을 반이나 처분해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 콩깍지는 오늘 밤 묵을 탄툰네 집에 줄 선물이다. 볕이 뜨거워져서 우리는 작은 승원에 들려 잠시 땀을 식혔다. 큰 마루 중앙에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우습게도 고물 TV 수상기가 선거 유세장에서나 봄직한 커다란 스피커에 연결되어 한쪽 책상 위에 놓여있다. 불상과 수상기와 대형 스피커의 이질적인 대비가 나에게는 부조화를 표현하려는 일종의 설치미술 같아 보였다.

이 설치미술의 주인공인 60대 노승이 차를 대접하다가 우리가 코리안이란 걸 알고 바로 한국 드라마 DVD를 틀어주었다. 스님은 한국 드라마뿐만 아니라 인도 영화 DVD도 여러 편 소장하고 있는데, 조잡한 해적판이니 화질이 좋을 리 없다. 엄격한 사찰 분위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대웅전 법당에서의 드라마 시청은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드라마 시청의 답례로 스님에게 사진을 찍어 프린트해 주었는데, 24세 때 그렸다는 자신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사진 속 자기가) 매우 늙었노라고 안타까워하는 바람에 우리도 함께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을 수행한 스님도 이렇듯 젊음을 아쉬워하니, 우리 같이 세속에 찌든 중생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논두렁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 어떤 동네의 늙은 박수무당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은 탄툰의 다섯째 딸 ‘밀로’가 먼저 와서 준비를 했다. 마루 벽에 과시하듯이 도배한 ‘의관을 정제’한 제례의식 사진들을 보니 그는 한 때 꽤 잘나가던 박수였던 것 같다. 미얀마 사람들은 불교를 신봉하지만, 민간에는 ‘낫’이라고 불리는 토착 애니미즘이 있어, 이들의 기복적 삶을 지배하는 무격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박수무당도 마루 한가운데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걸 보면 불교는 낫의 상위개념인 듯 하다.


점심준비 임무를 마친 탄툰의 딸 밀로도 우리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다섯째 딸 밀로는 시집에서 도망 나와 지금 친정 집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나지막한 야산과 논이 반복되었다. 가끔 마을 사람들이 지나면서 탄툰과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조금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마당에서 목물이라도 하려면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당도해야 한다. 탄툰네 집은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에 이웃과 동떨어져 있었다. 널찍한 밭에는 콩이며, 마늘 같은 작물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고, 집 둘레에는 바나나 나무가 담장처럼 둘러서 있다.


풍성해 보이는 마당과는 달리 집 내부는 매우 낡았다. 판자로 이은 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데, 그 구멍을 막으려 신문지를 덕지덕지 발라 더욱 구차스럽게 보였다. 우리가 잘 방은 한술 더 떠 틈이 쩍 벌어진 마루바닥 사이로 소 우리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목물로 이틀간의 땀과 먼지를 대충 씻고 나니, 이웃에 사는 시집간 맏딸에다 사위, 손자까지 놀러 와 집안이 북적대기 시작했다. 한 줄로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 주는데 도무지 헷갈려 인원파악이 안 되었다. 자식이 열에다 사위, 손주들까지 가세를 했으니 그럴 만도 한데, 사실 탄툰의 친자식들이 아니어서 그도 가끔 헷갈린다.(이 사연 많은 사내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하기로 한다.)


키가 크고 쾌활한 탄툰의 처가 만든 간단한 샨(Shan)족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이미 날은 저물어 사위는 캄캄하다. 탄툰은 모닥불이 있는 부엌으로 건너가 잘 준비를 하고, 아내와 나는 마당으로 내려가 남국 하늘을 수놓은 휘황찬란한 별들을 한동안 올려다 보았다. 지상에서 불빛이 사라지니 천상의 별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네팔 히말라야 설산의 유난히 밝았던 별들, 사하라 사막과 인도 타르사막 위로 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유성들, 남태평양 이스터 섬 밤하늘에 흐르던 은하수…. 문명과 멀어지니 별들은 빛났다.


넝마 같은 이불 속에 몸을 눕혔다. 너저분한 방의 분위기나 옆에 쌓아놓은 곡물포대를 보건 데, 밤새 쥐가 설설 댈 것이 뻔했다. 때 국물이 졸졸 흐르는 국방색 군용 이불도 만만치 않다. 오늘밤 나는, 이 이불을 거처로 삼고 사는 빈대와 벼룩에게 내 피를 공양하기로 각오했다. 판자벽 틈바귀로는 냉기가 새어 들어 오고, 마루 밑에는 물소들이 푸~ 푸~ 긴 숨을 내쉬며 깊은 잠에 빠져있다. 나는 공양으로 바친 종아리를 긁느라 밤새 몇 번이나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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