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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미소를 닮은 사람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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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9-04-10 00:00

중년 배낭족의 미얀마 단상


띠보행 퍼스트 클래스


내일 떠나는 띠보행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만달레이 기차역으로 나갔다. 2층 매표구에 도착해 보니 황당하게도 모든 안내판에는 숫자마저 미얀마 문자로 적혀 있어서 단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었다. 난감했지만 그러나 걱정하기엔 이르다. 경험상, 이럴 경우 반드시 도움을 주는 흑기사(실제로 얼굴이 검었다)가 나타나게 돼 있으니까…


흑기사는 창과 방패 대신 어느 정도의 영어로 무장하고, 백마 대신 ‘친절’을 타고 다가온다. 이번에도 난처한 얼굴로 서성대고 있는 우리에게 예의 흑기사가 출현했다. 참고로 이들의 속성은 ①자신의 영어 실력을 주위에 과시하고 싶어한다. ②습득한 영어를 실습하고자 한다. ③도움을 빙자해 뭔가 이득을 취하려 한다. 놀놀한 인도인이라면 대체로 3번 사항에 해당되겠지만, 순박한 미얀마에서는 3번이 제외된다.이번 미얀마 흑기사는 늙고 매력이 없었지만, 우리를 친절하게 매표 창구로 데려가 매표원에게 인도해 주었다.


다행히 매표원은 영어가 훨씬 뛰어났다. 그도 자신의 영어에 도취되었는지 발권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대화로 거의 20분을 소모하고 나서야 누런 재생 시험지로 된 기차표를 넘겨 주었다. 표에는 만달레이 → 띠보, 퍼스트 클래스, 아침 4시40분 출발, 6달러, 이렇게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세컨드 클래스 3달러. 외국인에게는 2중 가격이 적용된다.)


다음날 새벽 4시,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플랫폼에는 담요를 뒤집어 쓴 채 바닥에 누어 자고 있는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도 기차여행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또 한번 당황했을 것이다. 역원이 기차표를 확인하고는 4번 플랫폼에 대기하고 있는 띠보행 기차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새벽 어둑한 조명아래 졸고 있는 낡은 기차- 그 주변은 짐과 사람들로 어수선하고 분주했다. 객차 내로 올라 가자 우리 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비지정석 승객들이 자리를 비워 주었다. 객차 안에는 이미 승객들로 만원이었고, 선반과 통로에도 짐이 가득해 이동이 거의 불가능 했다.


기차는 마치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줄곧 운행 되고 있는 것처럼 노후했고 더러웠다. 페인트는 벗겨졌고 천장에는 먼지와 거미줄이 온통 뒤섞여 있었다. 말이 좋아 퍼스트 클래스지 세컨드 클래스와 차이는 지정석이라는 것과 나무 의자의 바닥에 단지 얇은 쿠션이 놓여 있을 뿐이다.  우리는 배낭을 선반에 구겨 얹고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기차는 제시간에 정확히 출발했지만,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 띠보까지는 11시간. 그러나 미얀마에서 운행시간을 말할 땐 반드시 ‘운이 좋으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만큼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만달레이를 떠나 온 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급경사를 오르는 기차는 전진과 후진을 갈지자로 반복하면서 고원지대로 향했다. 노후한 철도 탓에 기차는 덜컹덜컹 좌우상하로 심하게 흔들렸다. 풍랑 만난 배처럼 좌우로 롤링을 하는가 하면, 승마를 하듯 위아래로 널을 뛰었다. 마치 몸에 붙은 이물질을 털어 내기나 하려는 듯이… 여러 나라에서 기차여행을 많이 해보았지만 이렇게 요동치는 기차는 처음이다.


기차는 시골 역마다 정차 했다. 그때마다 시골 아낙네들이 먹거리 쟁반을 머리에 이고 플랫폼으로 몰려 나와 기차를 반겼다. 쟁반 안에는 파인애플이나 오렌지 같은 과일과 오래 사용한 기름에 튀겨서인지 거무튀튀한 닭튀김 등이 담겨 있다. 이 기차의 종착역인 라쉬오 지방에는 중국 국경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미얀마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우리가 역에 내려 화장실을 찾고 있는데, 건너편 자리에 앉아있던 사내가 우리를 역원이 사용하는 깨끗한 화장실로 안내해 주었다. 그는 육군 대위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기차로 돌아와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대위에게 사진을 프린트해주었다. 객차 내에서 사진이 화제가 되자, 그때까지 다리를 뻗고 자고 있던 하사관도 사진 한 장을 부탁 해왔다. 대위는 그가 자기 부대의 주임상사라고 소개를 해 주었는데, 그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대위 앞에서 군기 빠진 자세로 앉아 있는 태도를 보아 능구렁이 주임상사쯤 되리라는 추측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 상사는 제 사진을 들여다 보더니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아니 이게 뭐야…  케냐 아니야 케냐…!?
그는 나에게 케냐의 의미를 설명 하려는 듯이, 볼멘 소리로 ‘니그로, 니그로’를 반복해대는 것이었다. 나는 세가지로 놀랐다. 우선 우리가 삼가는 단어인 ‘니그로’를 너무나 쉽게 입에 올리는 것과, 또 ‘니그로’를 닮아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굳은 의지, 그리고 자신은 그들보다 매우 우월하게 생긴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들이다. 그에게는 안됐지만, 나는 그를 본 순간 그가 케냐는 아니더라도 우간다의 이디아민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이 나라는 군부가 통치하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며, 어느 안전이라고 상사님의 심기를 건드리겠는가…


나는 그를 케냐에서 미얀마로 되돌려 놓기 위해 그의 얼굴을 요리조리 탐색하고 분석해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에게서 ‘얼짱 각도’를 찾아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그의 겉옷 사이로 삐죽이 나와있는 형형색색의 훈장(약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이, 상사, 이 멋있는 훈장을 왜 숨겨놓고 있었나? 겉옷을 제치고 다시 한번 찍어보세…” 상사는 약장이 붙어있는 왼쪽가슴을 한껏 부풀린 다음 거드름이 만발한 표정으로 모델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진을 손에 쥔 상사는 뚫어져라 제 사진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그가 훈장을 보고 있던, 케냐를 확인하고 있던 간에 나도 이젠 알 바 아니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기차는 160km
를 주파해 제시간 안에 목적지에 당도했다. 그러나 불과 160km를 이동하는 데 무려 11시간이나 걸렸으니, 이런 경우에도 ‘주파’라는 표현을 써도 될는지 모르겠다.(노후하고 불량한 철로 탓에 미얀마 기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41km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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