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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백 자유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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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9-08-21 00:00

"평생 엔지니어로 살아온 1개월 차 정치인"

1975년 서울대 박사과정 2년 차, 28세에 이근백 후보는 부인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당시 이씨를 심사한 이민관은 “엄청나게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1200달러를 가지고 온타리오주 해밀튼에 간 이씨는 이민심사관의 장담과 달리 캐나다의 쓴맛을 보아야 했다. 34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유당(Liberal)의 캐나다 하원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아 올해 안에 있을 전망인 뉴 웨스트민스터-코퀴틀람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
 


“이민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1970년에 서울대 공대에 처음으로 컴퓨터가 설치돼 컴퓨터를 익혔습니다. 학교에 대학원생으로 있으면서 컴퓨터를 가르쳤지요. IBM 1130이라고 8킬로바이트짜리, 작은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이 후보는 6.25 당시 부모와 사별하고 조모에 의해 자랐다. 서울대 재학 중에도 학비를 스스로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경기 중고와 서울대, 대학원 연구소 연구원까지 한국에서는 일명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캐나다에 이민은 어떻게 오게 됐습니까?”
“이민관이 ‘당신은 프로그래머에 엔지니어니까 엄청나게 성공할 것’이라고 해서 애들 셋과 할머니는 한국에 놓고 제 나이 28세 때 부인과 먼저 입국했습니다. 당시 애들이 2살, 그리고 각각 1살 이었지요. 막상 왔는데 취업이 어려운 것이 영어를 읽는 건 문제가 없지만 말도 못하고 잘 못 알아듣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취직하려면 영어를 배워야겠다 해서 맨파워라는 영어교육 및 직업 알선기관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캐나다 정부는 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을 데려오면 캐나다는 교육 투자비용을 아낄 수 있는 만큼 이민자 영어교육을 전일제로 제공하고, 생활비도 줬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정도 영어면 보통 일자리 잡는데 충분하다고 교육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엔지니어로 인정받는 길도 막혔습니다. 엔지니어 협회에서 토론토대를 통해 엔지니어 자격 응시를 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데 서울대 석사 수료하고, 박사 2년차 과정을 하다가 온 저를 캐나다 고졸과 학력이 동등하다고 했어요. 그냥 엔지니어 자격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응시자격을 달라고 한 것인데 고졸이니 시험자격도 못 준다는 겁니다”


“이민 온 것을 후회하진 않았습니까?”
“5월에 토론토에 도착해서 처사촌 오빠 2베드룸 아파트에 신세를 지다가 루밍하우스라고 단칸방 하숙집에 머물며 일자리 찾는데 고생을 했죠. 저는 후회하지 않았는데 이민을 오자고 한 처가 더 후회를 하더라고요. 이민 6개월 만에 돈이 거의 떨어져서 결국 동기네 집에 얹혀살면서 일도 돕고, 처는 청소를 하고 그러다가 동기가 지역구의 연방하원의원을 한번 만나서 도움을 청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굴 만나셨습니까?”
“해밀턴 지역구의 자유당 출신 하원의원이던 존 먼로 의원을 만났습니다. 내 평생 국회의원이라곤 만나 본 적이 없고, 이민자라 선거권도 없어서 만나줄까 했는데 사정을 얘기했더니 선거구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만나줬습니다. 만나서 두 가지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영어 때문에 취직을 못 하는데 영어를 배웠으면 좋겠다니까 먼로 의원이 ‘내가 보기에도 당신 영어면 상점에서 일할 정도는 되겠지만, 엔지니어 하려면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동의하더니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됐습니다. 영어학교는 그 다음 주에 나오라는 겁니다. 엔지니어 자격시험도 ‘엔지니어는 어느 나라나 익히는 원리는 똑같다’고 하니 편지를 써줬는데 덕분에 응시 자격도 얹었습니다”
먼로 의원을 만난 후 이 후보의 인생은 달라졌다. 고급 영어반 6개월 과정 중에 3개월 못 다니고 한 회사에 엔지니어로 채용됐고 그 해 말에 식구를 모두 캐나다로 데려왔다. 또 3년을 회사에 다닌 끝에 전문 엔지니어로 인정을 받았다. 이 후보는 이후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선거 때마다 자유당에 투표하고 기부하는 등 ‘보은’을 해왔다고 밝혔다. 먼로 의원은 지난달 타계했다.
 
“엔지니어가 되고 사는 게 순탄했습니까?”
“회사에 들어가 보니 영어를 잘 써야 되더라고요. 매일 하루 한 페이지 뭘 쓰든 꾸준히 썼는데, 붉은 펜으로 고쳐주며 제 영어를 돌봐준 사람 좋은 동료가 제대로 쓰려면 대학원에서 논문을 써보라 해서 맥마스터대에 한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이 분은 그래도 서울대를 아는 분이라 한국 학점을 인정해줘서 전일제 석사 과정을 6개월 만에 끝냈습니다. 세미나와 발표가 많아 수 백만장은 보고서를 썼는데, 세미나를 진행하다가 제피 피셔라는 캐나다 토목학회 회장 겸 엔지니어링 회사 중역을 만나게 됐어요. 학교 끝나고 400명쯤 되는 파크레인이란 회사로 들어오라 해서 거기로 가게 됐습니다. 첫 직장은 직원이 한 20명 정도였지요.” 이후보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이 후보의 처가 온타리오주정부 산하 보건실험실에서 근무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대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회사를 계속 다니셨습니까?”
“두 번째 회사에서 일을 잘했어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일을 따오는 사람인데 별로 많지 않아요. 첫 직장에서도 도시관망 확장에 관한 프로그래밍 능력 덕분에 일을 따왔고, 두 번째 회사 다닐 때는 마침 한국에서 중동건설 바람이 불어서 한국 회사들이 미제 자제를 사들이기 위해 뉴욕 지사를 많이 설립했습니다. 지사 가서 일감 따오고 일벌레로 한 5년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저보고 파트너(공동 사주)가 되겠느냐는 전혀 기대도 못한 제안이 왔어요. 그러나 파트너 자격을 받으려면 기존 파트너 5명이 전원 동의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사람 속이 참 이상한 것이, 파트너 하자는 얘길 듣지 않았으면 괜찮은데, 듣고 안되니 정이 떨어졌습니다. 마침 첫 회사에서 제 영어를 봐줬던 제리 그로엔이란 친구가 합작회사를 세우자 해서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후보가 세운 그로엔-리 컨설팅은 창업 직후 81년 캐나다 불경기에 휘말렸다. 밴쿠버로 온 계기도 불경기 대책의 일환이었다.
 
“언제 밴쿠버로 오셨습니까?”
“불경기라 일감을 따놓은 것도 사라지는 판국이었어요. 돌아보면 불경기였던 것이 다행입니다. 이민 5년 만에 회사를 차린 것 자체가 시기상조였죠. 일을 해본 경험은 있지만 갑자기 회사를 경영하려고 하니 능력 부족을 많이 느꼈지요. 회사 싹수가 노란 상황이니 차라리 내가 다른 주로 취직하겠다 해서 일자리를 찾다가 상하수도 관계 컴퓨터 모델링을 할 사람을 찾는 써리시와 연락이 됐습니다. 안성맞춤 일자리라 연락했더니 나 같은 사람을 2년 동안 찾았다고 합니다. 전화면담에 비행기표를 보내줘서 직접 면담하고 채용이 됐습니다” 써리시청에서 일은 단기간만 할 생각이었지만, 계속 살아보니 써리가 훨씬 살기 좋다는 판단 아래 온 가족이 써리로 이주해왔다.

“써리에서 일은 어땠습니까?”
“5년간 써리시청에서 일하면서 도시 운영을 파악했습니다. 시의원과 회의도 하고 개발의견서도 올리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지요. 배관망을 전산화하는 일을 하면서 관련 분야로 많이 유명해졌습니다. 각국에서 문의도 받고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5년 다닌 끝에 3년간 스카우트 제안을 해온 UMA라는 직원 1200명 규모 회사에 파트너로 들어가게 돼 캐나다 각 지사를 돌면서 회의에 참석하고 경영관리를 배웠습니다. 써리시는 제가 뭘 할 수 있는 세상에 보여준 일자리였습니다” 이후보는 UMA에 이어 엔지니어 컨설팅 회사 ‘뉴 이스트 그룹’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엔지니어로 계속 살아왔는데, 정치 관심을 둔 이유가 있습니까?”
“정치가로 나서는 것에 관심은 전혀 없었지만, 시에서 일하면서 정치가와 교류는 많았습니다. 게다가 먼로 의원에게 빚진 것도 있어서 자유당을 찍고 기부하다 보니 주위에 있는 분이 자유당 정치인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사업을 이제 접고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출마해보라는 권유가 왔습니다. 조이스 머레이 하원 의원과 이전에 자유당 소속 후보였던 2명이 출마를 권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지난 총선에 보수당이 연아 마틴 상원의원을 후보로 했던 것처럼 한국인 후보가 있으면, 정당이 한인으로부터 호감을 얻을 수 있고, 또 엔지니어출신으로 사업가는 정치인 중 드문데다가 UN관련해 여러 나라를 다녀본 경험도 있으니 이 점을 좋게 여긴 것 같습니다”
캐나다 하원의원 중에는 법조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이 후보는 현재 UN기후변화기구의 전문 자문가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감축 프로젝트에 참가해 기술적인 전문가이면서 친환경 이미지도 갖고 있다. 이 후보는 독일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가다가 출마권유를 받고 차를 돌렸다고 올해 7월 중 밝힌 바 있다.
 
“정계에 진출하면 어떤 일을 하실 겁니까?”
“캐나다 정부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해 효율을 높이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컴퓨터 모델링으로 시작해 빗물과 쓰레기 관리, 벨류 엔지니어링 일을 했습니다. 밸류 엔지니어링은 공사비와 공기를 단축하면서도 시설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로 BC주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정계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캐나다의 복합문화주의 재원을 이용해 수출을 개척하거나, 지구 온난화와 관련해 앞으로 온실가스(GHS)를 방출하면 국제적인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큰데 이 문제에 대한 대응도 관심이 있습니다. 또 IT산업을 이용해 환자정보와 검사결과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방법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하원 소의원회에 들어간다면 공공행정이나 환경 분야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출마하신 선거구에 한인은 많지만 한인 투표율은 높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한인 투표율이 낮은 것이 큰 문제에요. 어느 당에 속한 후보건 일단 공천받는 중요합니다. 우리 선거구면 당원 200명이면 공천을 받습니다. 당비가 점심식사 한끼 값도 안 되는 10달러입니다. 이 돈을 내고 우리에게 잘못 보이면 공천도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느 당이든 좋으니까 한인이 당원으로 가입해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앞서 대답은 미흡한 것 같아 다시 물었다.
 
“한인 표의 결집이 필요한 당사자인데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투표에 참여한 선거인 명단을 통해 한인의 투표여부는 알 수가 있는데, 한인들이 투표를 안 하면 제가 곤란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디어가 좀 있습니다. 그 점은 두고 봐 주세요”
이 후보는 ‘개인정책’ 소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소속 당의 정책을 따라야 하는 정치인 이기 때문이다. 또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한인만 겨냥한 정책도 말하지 않았다. 200개 소수민족이 어우러져서 사는 캐나다에서 캐나다 국민에게 보편적인 수혜가 되지 않는 특정 민족에 대한 공약은 선거전에서 필패의 수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출마한 뉴웨스트민스터-코퀴틀람 보궐선거는 오는 10월13일 이전에 선거법으로 집권당에 의해 선거일자가 발표돼야 하나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이 가운데 이 후보는 선거사무소를 내고 정치적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후보 선거 사무소: 604-931-1940, 자원봉사자 담당자: 유경아: 604-505-9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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