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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제2의 인생을 열다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9-12-08 00:00

얼마 전,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기분을 느껴보고자 올림픽 성화의 종착점이 될 BC 플레이스 스타디움(BC Place Stadium)에 방문했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스타디움 한 켠에 위치한 ‘BC 스포츠 명예의 전당’이 눈에 들어왔다. BC주가 배출한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프로필과 2010년 동계 올림픽에 관한 여러 전시물들을 관람하던 중 박물관 다른 한쪽에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전시하던 한 동양인 청년이 보였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무얼 하냐고 물으니 이내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올림픽 기념품을 전시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 정확한 영어 발음은 아니지만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작품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이야기를 계속 나누어 보니 이 청년은 한국에서 유학을 온지 3개월 남짓 됐고, 예전 K리그(한국프로축구리그) 유소년 팀에서 남과는 사뭇 다른 유년시절을 보낸 축구 유망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름은 최규현이라고 했다. 한때 축구 선수로의 꿈을 키우다가 어떻게 캐나다 밴쿠버에까지 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축구만을 사랑했던 아이

최규현 학생은 얼마 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Champion’s League)와 리그 컵 우승을 일궈낸 포항스틸러스 축구팀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 중학교와 포항제철 공업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청소년 축구 선수로는 정석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이다. 최 군은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축구를 많이 보고 친구들과도 즐기면서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어린이 축구교실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처음 축구계에 입문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였다.

최 선수의 실력은 나날이 발전하였고 이윽고 중학교 3년 때는 전국대회 우승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최 선수는 우승 당시를 축구를 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으면서 “저희 또래가 주축이 되어 우승을 한 적은 처음이었거든요. 그 뒤로는 축구를 할 때마다 마냥 좋았죠. 그 시기엔 정말 아무 걱정도 없이 축구만 좋아해서 뛰었어요. 그래서 즐길 수 있었고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비선진 유소년 축구 인프라와 팀 내 엄격한 선배위계질서는 가끔 어린 선수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앗아가기도 한다. 학원 축구에 기반을 둔 유럽이나 남미의 명문 축구 국가와는 다르게 한국의 교내 축구부 시스템은 어린 선수들을 무한 경쟁 체제에 무방비 상태로 몰아넣어 운동을 즐길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축구는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을 정도로 좋아했지만 가끔 이러한 딜레마에 빠졌던 최 선수는 “학교를 간다고 해도 수업을 열심히 듣기 어려워요. 왜냐면, 들어도 대부분이 모르는 것들이고 ‘아, 오후에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스트레스가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쉽게 흐트러지기 마련”이라며 빡빡한 교육 시스템과 최고만을 고집하는 축구팀 사이에서 대부분의 유소년 축구 선수들이 선택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학업을 멀리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도 꿋꿋하게 딛고 승승장구하던 최 선수에게 고등학교 선수 시절 축구 인생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부쩍 생각이 더 많아지고 이러한 생각과 스트레스의 결부가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심리적 부담의 연속은 장기적으로 최 선수를 필드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최 선수는 “생각이 많아지니까 자신감도 점점 잃어가게 되더라고요. 왜 생각이 많으면 두려워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경기에 임할 때 자꾸 생각이 많아지니까 자신감도 없어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경기를 하면서 많이 위축이 되면서 팀에 도움이 될 수가 없게 되었죠. 제가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 거 같아요. 축구선수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거죠”라며 자신감 상실이 궁극적으로 축구 선수로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탓인지 최 선수는 대학 축구팀에 진학을 한다 해도 큰 비전을 갖지 못한다는 생각에 학생 본연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제2의 인생

10년간 해왔던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니 그 상실감으로 최 선수는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진로를 바꾸자는 결심을 하자, 영어가 대세인 한국에서 영어만이 이 사회에서 살아 남을 길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으로 최 선수는 영문 서적을 닥치는 대로 구입해 영어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이 운동을 한다며 그라운드에 나가 공을 찰 때 최 선수는 숙소에 남아 영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기 위해 책과의 씨름을 벌였다. 이후, 서울에 상경에 유명 영어 학원을 다니며 3개월간 영어 기초 공부에 매진하였다. 조금이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또 물어봐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고 이후 고향 구미로 내려와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영어 독학에 몰입하였다. 이러한 피나는 노력은 일년 후 영어 숙달 정도를 측정하는 토익(TOEIC) 시험 고득점자라는 결실을 맺게 해주었고 축구 이외의 것에서 맺은 결과는 최 선수에게 특별한 행복을 얻게 해주었다.

“사실 토익 점수를 올린 목적은 영어가 필수인 카투사에 지원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렇게 목적을 가지고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점수가 자연스럽게 올라갔습니다. 물론 공부를 쭉 해온 학생들은 노력만 하면 짧은 시간에 걸쳐 토익 고득점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뒤늦게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한 케이스라 이러한 결실은 저에게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죠.”

이후 대학에 진학해 경영학과 영문학을 공부하던 최규현 학생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기초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원받아 해외에서 한 학기 동안 전공과 관련된 공부를 할 수 있게 도모하는 프로그램에 토익 고득점자 자격으로 합격하였기 때문이다. 8주의 어학연수, 그리고 나머지 8주는 인턴쉽으로 이루어진 16주 프로그램에 현재 최규현 학생은 10주 차에 접어 들고 있다. 스포츠를 좋아해 그와 관련된 인턴 프로그램을 찾던 중 BC 플레이스를 알게 되었고, 8주 간의 어학연수를 끝마친 뒤 곧바로 이곳에 인턴사원 원서를 제출하였다. 최규현 학생은 21000여 개의 기념품을 자랑하는 BC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서 물건 전시, 관리, 사무실 안 파일 및 사진 정리 등 여러 일을 맡으며 다른 어학 연수생과는 조금 다른 그 누구보다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년 1월 본국으로 귀국하는 최규현 학생의 꿈은 경찰이 되는 것이다. 영어는 평생 동안 꾸준히 공부하며 키워나가고 자신의 능력을 또 다른 범위로 넓혀 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밴쿠버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장래에 대한 계획도 더 뚜렷해졌다는 최규현 학생은 마지막으로 운동을 하다 그만두고 학업으로 돌아가는 후배 운동 선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운동에 실패했다고 해서 절대 실망하거나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든지 노력만 한다면 다른 길로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중요한 건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서 남다른 열정으로 과정을 즐기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나용학 인턴기자 alexn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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