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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기자의 세상보기] 21살의 아줌마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9-12-16 00:00

지난 학기, 집에서 멀리 떨어진 UBC까지 통학하느라 매일 아침 힘든 시간을 보냈던 필자는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은 생각에 이번 가을 학기부터 캠퍼스 근처에 적당한 자취방을 하나 구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살았던 경험이 없던지라 처음에는 “내가 괜한 일을 벌이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도 했었지만 자취 생활을 시작하고 채 2개월도 지나지 않아 오히려 가족과 다시 같이 살면 더 불편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취의 달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바로 ‘아줌마 본성’과 함께 말이다.

필자는 매주 금요일이면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본다. 자취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장을 볼 때면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앞뒤 생각지 않고 한 움큼 집어다 계산대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무리 맛있어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라는 깨달음이 생긴 이후로는 필수품 외에 먹고 싶은 음식은 되도록이면 당일 세일하는 것 한두 가지만 정해 소비하는 습관이 길러졌다. 한 주간의 식량으로 채워진 장바구니를 들고 카운터로 향할 때, 멤버십 카드 지참은 자취생으로써 갖춰야 할 기본 수칙이라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계산이 끝나고 영수증에 출력된 할인된 금액을 보며 느끼는 희열은 마치 가족경제를 위해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현명한 아줌마’가 된듯한 느낌까지 들어 뿌듯해졌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식당들은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 손수 저녁을 지어 먹어야 하는 자취생을 심하게 유혹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만 참고 집으로 돌아와 얼려 놓은 구수한 된장국을 데우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을 지어 밑반찬과 함께 한 상 차려놓으면 곧 “아, 식당밥 안 먹길 잘했어”라는 생각과 자부심이 든다. 식사를 마친 후, 다음 날 점심이 될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는 일까지 끝 마치면 내일 점심 값도 아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생기면서 왜 아줌마들의 검소한 생활력이 가끔 꼼꼼함의 도를 지나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아줌마들의 알뜰한 생활력엔 분명 경제적인 요소뿐만이 아니라 ‘절약의 미학’도 큰 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자취생으로 살며 발견한 또 하나의 ‘나용학표 아줌마 본성’은 냉철한 현실 감각과 책임감이다. 세상에 홀로 서서 누구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섬뜩할 정도로 자신에 관한 일에 대해 악착 같아지게 된다. 예를 들어, 통학 하던 시절에 간혹 가다 너무 피곤한 날에는 ‘어머니가 아침에 깨워주겠지’라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자취생의 신분이 된 이후로 알람시계는 필자의 보물 1호가 되었다. 행여나 아침에 너무 깊은 잠에 빠져 알람을 듣지 못한다면 제때 수업을 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니와 만약 그날이 중요한 시험날이기라도 한다면 수습하기 힘들어지는 대사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그만 과오의 결과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진리를 자연히 터득하게 되는 자취생들의 삶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심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굳건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집에서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것들을 깨닫고 배워간다면,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은 훗날 살아가며 필요한 재산으로 분명 다시 돌아오리라 믿는다. 자취생활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것도 참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자취 생활은 고달프지만, 우연히 어머니가 한 병에 2달러도 안 하는 주방세제를 왜 그렇게 아껴 쓰셨는지, 버려도 되는 남은 음식을 “내가 이러니까 살이 쪄”라고 불평하시며 왜 꿋꿋하게 끝까지 드셨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될 때, 입가에 머금어 지는 웃음 또한 자취생 삶의 큰 낙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용학 인턴기자 alexn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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