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아파트에 사는 친구집을 방문했다가 한 켠에서 식물화분 여러 개를 발견했다. 한 길다란 화분에는 상추, 깻잎, 고추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그 앞에는 ‘삼∙겹∙살’이라는 예쁜 이름표가 매달려 있어 한참을 웃어버렸다. 또 다른 화분은 로즈마리와 라벤더, 페퍼민트가 심어진 작은 허브밭이었다. 조금 큰 화분에는 방울 토마토가 홀로 자라고 있었다.
왠 거냐고 물었더니 슈퍼에 갔다가 봄이고 해서 깻잎과 상추 모종을 샀다고 했다. 그리고 모종을 옮겨심을 화분과 흙을 사러 농장에 들렸다가 허브와 고추, 방울토마토 모종이 잔뜩 있길래 또 충동구매를 했다고. 친구는 “힘들게 옮겨심고 나니까 마치 애완동물 키우는 것처럼 매일 들여다 보게 된다”며 즐거워했다.
아파트에서 채소나 허브를 키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집 안에 싱그러움을 들여놓고, 직접 길러서 따먹는 재미도 누리려는 까닭이다. 이번주에는 똑똑한 도시의 농부가 되는 방법을 알아본다. 모종은 1.49~1.99달러 선에서 판매한다. 농장이나 가든, 한인슈퍼, 캐네디어 타이어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초보 농사꾼이라면 상추∙깻잎부터
식물학자인 윤경은 서울여대 원예조경전공 명예교수는 "상추부터 시작해 자신감을 얻고 다른 채소로 옮기라"고 조언했다. 그만큼 기르기 쉽고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수확의 기쁨을 빨리 맛볼 수 있다는 것. 모종을 화분이나 정원에 심고 물을 일주일에 1~2번 정도 주면 1~2주 후에 상추쌈을 먹을 수 있다. 사먹는 상추보다 잎이 연하다 싶으면 통풍을 자주 하고 직사광선을 쪼여줘야 한다. 심은 지 1달 뒤 퇴비를 넣어 영양을 보충해주면 잎이 더 단단해진다.
상추처럼 비교적 기르기 쉬운 것이 깻잎, 배추, 시금치, 쑥갓 같은 엽채류 채소. 재배 방법은 비슷하다. 이런 식물들은 씨를 뿌려 키우는 방법과 전문가들이 육묘한 모종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실패 확률을 낮추려면 모종을 심는 게 낫다.
방울토마토 지지대는 꼭 세워주세요
방울토마토는 5월 중순경 모종을 사서 화분이나 정원에 심어 일주일에 1~2번 정도 물을 주면 잘 큰다. 방울토마토 기르기의 관건은 지지대를 세우는 것. 열매가 맺히면 뿌리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다. 윤 교수는 "25㎝ 정도 자랐을 때 지지대를 해줘야 한다. 줄기에 바로 지지대를 묶지 말고 간격을 둬 줄기와 지지대 사이에 끈이 8자형이 되도록 돌려 묶어라"고 조언한다. 고추·가지·오이도 같은 방법으로 기를 수 있다.
이 밖에 래디시(radish)라 불리는 '20일 무'도 기르기 쉽다. 이름이 말해주듯 파종해서 수확할 때까지 20일 걸린다. 쪽파 종자도 잘 자란다. 윤 교수는 "쪽파 종자는 9월 초가 지나 화분에 꽂아 두면 잘 자란다. 어린 실파는 샐러드에 넣어 향미를 돋우고, 자라나는 실파는 계속 뽑아서 먹을 수 있어 유용하다"고 했다.
손 까딱 안 하고 가장 손쉽게 키울 수 있는 식물도 있다. 바로 미나리. 유리컵에 먹고 남은 미나리를 3~4마디 크기로 잘라 꽂아 두면 금세 뿌리가 나고 마디에서 새순이 자란다.
생각보다 까칠한 상대, 그대의 이름은 ‘허브’
공기정화용으로 많이 키우는 식용허브로는 바질, 로즈마리, 라벤더 등이 있다. 허브는 조금만 방치해도 금세 잎이 마르고 줄기가 뻣뻣해지기 때문에 키울 때 주의를 기울여 키워야 한다.
허브는 대부분 배수가 잘되고 알칼리에 가까운 중성 토질에서 잘 자란다. 흙에 모래를 섞거나 유기농 비료에 태운 겨를 넣어 산성화된 흙을 조절하면 좋은 토질을 만들 수 있다. 또, 고온다습한 날씨에 약해서 무성하게 피어난 잎과 줄기들이 장마철 습기를 발산해 죽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5월 말에는 오밀조밀한 가지를 쳐내 통풍이 잘되게 해줘야 잘 자란다.
대부분의 식용 허브는 특유의 향이 있어 벌레를 쫓을 수 있지만 만약 병충해가 생겼더라도 살충제를 뿌려서는 안 된다. 일단 진딧물이나 개미가 나타나면 물로 씻어내고 다른 부분에 전이되지 않도록 가지를 잘라낸다.
요리에 사용하기 위해 자를 때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물기 없는 가위로 눈이 있는 위에서 줄기나 잎을 잘라야 새 잎이 자랄 수 있다. 허브티는 향과 맛이 상쾌할 뿐만 아니라 몸 안의 독소를 배출시켜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100℃로 끓인 물을 붓고 3~5분간 우려내 마시면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민트는 상쾌하고 청량감이 있어 모든 종류의 차와 음료에 잘 어울린다. 기본 조미료로 사용하는 식용 허브로 요리를 할 때 마지막에 넣어 향만 배게 하면 느끼한 맛을 줄일 수 있다.
라벤더 허브 잎은 차나 요리에 활용한 후 건조시켜 그물망에 넣으면 천연 방향제로 사용할 수 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건조된 라벤더 꽃잎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꽃이 지고 나면 꽃자루를 눈이 있는 부분에서 잘라주어 영양분이 손실되는 것을 막아준다.
이탈리안 파슬리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고 소화를 돕는 데 효과적이다. 이탈리아 요리 등에 넣으면 요리의 풍미를 더해준다. 냄새가 강한 음식을 먹은 후에 생잎을 씹으면 입 냄새도 없애준다. 뿌리가 곧기 때문에 화분은 깊이가 있는 것으로 고르고 뿌리를 흩뜨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종합=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이미종 기자(여성조선)
사진=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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