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메이플리지 산 속 화랑으로 초대합니다”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0-08-06 15:42

 한국에서 지인이 오면 꼭 데려가고픈 곳이 생겼다. 바로 메이플리지에 거주하는 중견작가, 박광진씨(사진)의 화실 겸 개인 화랑인 ‘소진 화랑’이다. 소진 화랑은 박씨 가족이 사는 2층집 옆, 40평 남짓한 마구간을 고쳐 만들었다.  

산 속 외딴 곳에 위치해있어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아기곰이 출몰하고, 화랑 뒤 산보길에는 들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자연과 함께하는 캐나다'의 아름다운 삶이 그려지는 곳이다. 버나비에서 출발해도 45여분 남짓 걸려야 도착하는 곳이지만, 한가로운 시골길이라 운전하며 달리는 기분이 제법 좋다.

박씨는 화랑을 1주일에 단 하루만(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특별히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그림만 알던 폐쇄적인 작가였지만, 근래에는 좀 더 인간적이고 근접한 거리에서 사람들과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 화랑을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토요일 하루만큼 화랑은 박씨의 작품을 원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쉼터가, 박씨에게는 인연이 닿는 사람들과의 소통의 장이 되어준다. 박씨는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과 화랑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을 함께 보면 작품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귀뜸했다.

박광진씨는 캐나다보다 미국 화단에 더 알려져 있다. 시카고에 있는 모 갤러리에 10년 넘게 전속 작가로 있으면서, 그의 유화 및 판화 꼴라쥬는 그 에이전트가 대부분 가져간다. 박씨의 작품의 콜렉터는 주로 큰 기관이나 기업체, 고급 호텔 등이며 개인 콜렉터에게도 인기가 높다.

박씨의 작품 가운데 2점은 미국 캔사스 대학교 내 스펜서 미술관(Spencer Museum of Art)이 영구 소장용으로 있다. 작품을 구매한 큐레이터는 박씨에게 "보통은 화가들이 대개 자기 작품을 기증하고자 하는데, 미술관 측이 직접 작품을 구입한 것은 동양작가로서 처음"이라고 했다. 미술관은 박씨에게 통역까지 대주어 강연회도 개최하고, 개인 전시회도 열어줬다. 그야말로 '극진한' 대접이었다.

“저는 지난 50여년간 작품만 치열하게 그려왔어요. 마치 회사원이 출근하고 퇴근하듯 일주일에 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혼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을 했죠. 작가는 그림으로만 이야기하고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는 동안 잠시 대학에서 선생도 했고, 국내 외에서 많은 개인전∙단체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도 발표했습니다. 99년에 캐나다로 이주해오고나서도 작업과 전시회 활동을 계속 했어요. 평화로운 캐나다에서는 작업에 더 몰두할 수 있어 좋아요”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는 박씨는 부부모임, 동반 야유회 등도 참석하지 않아 남편의 직장 동료로부터 오해도 많이 샀다. 하지만, 박씨는 한번 사람들을 만나 떠들고 나면 다시 작품 세계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쉽게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던 박씨에게 화가와 작품을 보는 사람 사이에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는 일이 발생했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 일본에서 2년간 살았습니다. 이방인으로써 말도 안 통해서 위축되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서 혼자 가이드북을 가지고 여러 화랑을 찾아다녔어요. 어느 날, 일본서 활동하는 중국인의 개인 화랑을 갔는데 작품이 너무 좋은 거에요. 언어는 안통했지만 그림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교감이 되고 공감이 되었죠. 정신이 확 깨었어요. 화가의 공간을 보여준다는 것이 매우 신선한 자극으로 느껴졌죠"

박광진씨는 일찍이 구상 작업을 하다가 추상의 세계로 들어왔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단순하고 절제된 추상의 세계로 표현한다. 처음에는 ‘빛’, ‘공간’, 물성과 영성’ 같은 주제를 다루다가 요즘에는 ‘음과 양’, ‘대립적 이원론’을 거쳐 ‘하나임’, ‘합일’, ‘진동하는 우주’ 등 근원적 물음에 머무르고 있다고. 가장 최근 연 개인전 주제는 ‘소리없는 소리’, ‘Resonance’였다.

“추상화는 감상하는 이가 느끼기에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의 입장으로서는 제가 뭘 그리려고 했는지 알아주길 바라진 않습니다. 감상하는 분 나름대로 제 그림을 휴식을 느끼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욕심을 부리자면 꽃 하나 자세히 볼 시간도 없는 현대사회에서 삶을 되돌아볼 여유도 갖으셨으면 좋겠구요.”

박씨는 산속생활을 좋아하고 항상 예술가 부인을 응원하는 남편 사이에 장성한 세 아들이 있다. 남편은 일찍이 은퇴해서 집고치기, 가구만들기 등 여러가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아들 셋은 캐나다 동부∙중부∙서부에서 각각 제 갈길을 가고 있다. 그 중 첫째와 셋째(쌍둥이 중 둘째)는 미술과 관계된 일을 하고 있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한번도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도 엄마의 유전자가 더 강했는지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림 좋아하시는 분들은 토요일 날 가족과 함께 제 화랑에 와서 잠시 쉬었다가 가세요. 조용히 차 한잔 마시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조용하기만 한 화랑이지만 다시 한번 생활의 ‘여백’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박씨가 인터뷰 말미에 밴조선 독자에게 전한 말이다.

웹사이트: artsojean.com

화랑 주소: 10234 266th Street, Maple Ridge, B.C
전화번호: 604) 462-7576

글∙사진=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 박광진씨는 1981년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결혼 후 일본 동경 다마 미술대학을 수학하고 서울의 이화여대와 숙명여대 한성대 등 강단에 선 경력이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