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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사, 한국 VIP 40여명 싸잡아 “각계 귀빈 여러분”

지해범 동북아연구소장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1-28 09:26

지해범 동북아연구소장

지난 24일 저녁 서울 P호텔 대연회장. 국내의 한 사단법인과 중국대사관이 공동 개최한 한·중 신년회가 열렸다. 한국측 주최자인 K회장의 인사말이 시작됐다. "존경하는 L 전 국무총리님, J 전 국무총리 서리님, L 전 국회부의장님, K 도지사님, C 국회○○위원회 위원장님, Y 전 외교통상부 장관님, K 대통령실 ○○특보님…." 미리 배포한 자료에 올라 있는 VIP가 40명을 넘었다.

뒤이어 장신썬 중국대사가 연단에 올랐다. "존경하는 K회장님, 그리고 각계 귀빈 여러분…." 40여명 한국 VIP의 이름은 단 한 명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장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으나, 장 대사는 한·중 관계의 현황과 미래를 수치를 들어 설명하고선 "감사합니다"란 한국어로 연설을 끝냈다. 중국의 의전문화로 볼 때, 일반적으로 현지 대사가 주재국 전직 총리나 국회부의장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중국 대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날 한국 VIP들은 무시를 당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최근 한국에서 개최되는 중국 관련 행사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느낀 점이지만, 중국 관련 행사만 열리면 한국 VIP들이 넘쳐난다고 할 정도로 많이 온다. 한국의 유명 인사들이 한·중 우호를 다지는 모임에 많이 참석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대중(對中) 인맥을 쌓는 데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양측 간에 어느 정도 균형도 있어야 한다. 가령 베이징에서 한국대사관이 중국 민간단체와 이런 행사를 연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중국의 전직 총리, 전직 전인대(全人大) 부위원장, 성장(省長), 전직 외교부장 등이 한꺼번에 참석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들 중 한두 사람을 참석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리펑이나 주룽지 전 총리가 한국대사관 행사에 참석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문화가 다르다고 해도 두 나라에서 열리는 행사의 풍경이 너무 차이가 난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 전직(前職)들이 너무 가볍게 처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VIP들이 중국 행사에 우르르 몰려왔다가 중국 대사에게 "각계 귀빈 여러분"이라고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 나라가 경박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G2 시대라고 할 정도로 중국의 위상이 커졌다고 해도, 한국은 결코 중국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나라는 아니다. 중국의 시장경제, 올림픽, 엑스포 등 많은 부분이 한국이 먼저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선 상대를 존중하되 스스로 품위를 잃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 해군이 아덴만 구출작전에 성공하자, 평소 혐한(嫌韓) 감정을 드러내던 중국의 4억명 네티즌들이 일제히 "한국 군대 최고"라며 찬사를 보내는 것을 보았다. 존엄이란 개인이나 나라나 실력과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행동할 때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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