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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앓다가 남 웃기면서 내 웃음 되찾다

정리=김미리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2-23 15:02

우울증 앓다가 남 웃기면서 내 웃음 되찾다
아이 셋 키우느라 퇴직한 뒤 전업주부 15년
웃음치료사 공고 보고 무작정 지원… 꿈을 실현하는 데 연령제한은 없다

"안녕하세요. 1978년 미스코리아 진(眞)에 당선되고 싶었지만, 신발 사이즈가 안 맞아 떨어진 2011년 미스코리아 진(眞) 김순옥 인사드립니다."

요즘 내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말하는 첫 소개 멘트다. 172cm의 꺽다리 아줌마가 휘청대며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들이 황당하게 쳐다본다. "미세스 코리아도 아니고 웬 미스코리아?" 그러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 같은 커다란 목청으로 비장의 멘트를 날린다. "미소로 스마일 코리아를 리드하는 아줌마, 미스코리아 김순옥입니다!" 어떤 인간인가 염탐하던 이들이 싱거운 농담에 그제야 박장대소다.

나이 쉰넷, 나는 충남 천안에 사는 '웃음치료사'다. 울화통 터지고 복장 터지는 사람들, 웃음으로 살살 치유해주는 사람이다. 미간 사이에 '내 천(川)'자 달고 사는 이들 입꼬리 살짝 올리는 게 내 일이다. 지금은 웃음을 직업 삼았지만 나도 한때는 웃음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유치원 교사 시절 아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치는 모습.

젊었을 때 나는 유치원 교사였다. 어려서부터 마음이 따뜻해서 코흘리개 울보 친구도 그냥 못 지나쳤다. 내 옷소매에 친구의 콧물을 닦아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교육자였던 아버지는 "너는 커서 보육원 원장이 될 거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의 말을 계속 들어 학습 효과가 생겼는지 대학에 진학할 때 자연스레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1978년 유치원 교사가 됐다.

유치원 교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먹고 살았다. 티 없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나 역시 맑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그 생활을 1990년까지 꼬박 12년 했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건설업을 하는 남편 사업도 잘 돼 남 부러울 게 없던 때였다. 그런데 딸 둘까지는 '워킹맘' 생활이 가능했지만 아들 하나를 더 낳고 보니 아이 셋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유치원 교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은 아이들 키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잡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전업주부 생활이었다. 그렇게 15년 넘게 살았다. 아이들이 꽤 크고 여유가 생길 무렵 시련이 찾아왔다. 막내아들을 2007년 초 중국 하얼빈으로 조기유학 보낸 뒤였다. 준비 없이 보낸 유학이라 적응하지 못한 아들이 하루가 멀다고 전화해 울어댔다. 때마침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남편 사업이 부도 직전까지 몰리게 됐다. 속사정 모르고 "넌 사장 부인이어서 좋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속으로 숨죽여 울었다.

하루에도 수백 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까지 생겨 병원 앞을 몇 번이나 서성였지만 막상 그 문을 들어설 수는 없었다. "○○ 엄마 정신병원 다닌다더라"는 소문이 천안 바닥에 삽시간에 퍼져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던 어느 추석이었다. 불면증이 심해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혼자 돌아가는 TV를 끄려고 리모컨을 들었을 때였다. 한 종교방송에서 웃음치료사 자격증 수강생 모집 공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웃음치료사라는 용어조차 몰랐던 내 눈에 순간 '웃음'과 '치료'라는 두 단어가 번쩍 띄었다. 아이들에게 웃음을 가르쳤던 과거의 나, 그리고 무언가의 치료가 필요한 지금의 내가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그 길로 수강등록을 했다. 천안에서 서울로 통학하며 2007년 말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땄다. 마침 그해 모교 동문의 밤에서 학창시절부터 나를 아꼈던 은사가 사회를 맡겼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었던 한 대학교수가 자기 학교 평생교육원의 웃음치료사 지도자 과정 강의를 제안했다.

보물 1호인 바보 안경을 가지고 웃음 치료를 강의하는 김순옥씨.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웃음치료사로 공식 데뷔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전국 교장 연수 초청 강연이었다. KTX로 광주로 내려가던 길에 몇 번이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왜 이 나이에 사서 생고생하고 있지." 근엄하고 젠체하는 교장선생님들 앞에 서니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렀다. 하는 수 없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보물 1호인 대머리 가발과 바보 안경이었다. 이것들을 쓰고 원더걸스의 '노바디' 음악에 맞춰 망가졌더니 단단히 팔짱 끼고 있던 교장선생님들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남의 웃음을 되찾아주는 일을 하면서 잃었던 '나의 웃음'도 찾게 됐다. 수강생들 앞에서 나는 내 허물을 가감 없이 말한다. 전업주부로서 느꼈던 박탈감과 자괴감, 남편과의 갈등, 그리고 남들에겐 털어놓을 수 없었던 우울증…. 이혼의 충격으로 말더듬 증상이 생겼던 40대 주부 수강생은 내 강의를 듣고 웃음치료사의 길을 걷고 있다. 돌잔치 이벤트 사회를 봤다며 보낸 그녀의 감사 문자를 보며 괜스레 눈물이 날 뻔했다.

지금까지 만 4년 동안 교육계 특강, 학부모 오리엔테이션, 자녀특강, 기업체 웃음특강 등 200회 넘게 초청 강연을 했다. 아직도 주위에선 "옛 경력을 살려서 어린이집 하면 돈도 많이 벌 텐데 왜 돈 안 되는 일 하느냐"고 조언하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의 2막을 열어주고, 나를 치유해준 웃음치료를 나는 버릴 생각이 없다.

꿈과 희망에는 연령제한도, 커트라인도 없다. 한때의 나처럼 웃음이 말라버린 무미건조한 낯으로 '나'를 잊고 사는 이 땅의 주부들이 자신만의 꿈과 희망에 과감하게 도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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