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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13번 출구서 '1식3찬'을 달게 먹는 노숙자 보면서...”

문갑식 선임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3-07 09:18

문갑식 선임기자

기근은 맛난 조미료 노숙자들의 1식3찬 부자 밥상보다 더 풍성
南은 배불러 병 생기고 北은 배곯아 굶어 죽고 밥이 곧 天心이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신용산역~삼각지~남영동을 거쳐 광화문 회사까지 걸어서 출근한 지 1년이 다 돼간다. 그 길을 만보(漫步)하는 데 80분이 걸린다. 출렁이는 몸속 뼈 200개와 근육 600개에, 장기(臟器)들이 장단을 맞추는 시간이다.

살 빼보겠다는 애초 목적은 이뤘다. 걷는 것만으로 무게를 9㎏ 줄였는데, 망외(望外)의 소득도 있다. 민초(民草)들 사는 모습을 무심히 보는 게 곧 취재다. 아침 지하철 서울역 13번 출구 부근에서 볼 수 있는 풍경도 그 축에 속한다.

종교단체에서 마련한 아침밥을 기다리는 행렬에 꾀죄죄한 사십대 노숙자 풍(風)에 말쑥한 칠십 노인, 아주 드물게 여성도 섞여 있다. '스뎅 식판'을 놓고 한술 뜨는 광경을 곁눈질하면서 매일 아침 '밥'의 뜻을 되새겨 본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말했다. "기근(飢饉)은 세상에서 최상의 조미료다." 주르르 늘어앉아 1식3찬을 달게 밀어 넣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갑부 밥상의 진미(珍味)를 넘는 성찬(盛饌)이 따로 없어 보인다.

그제도 그 앞에서 칠판을 봤다. '10시 서울역교회 김밥, 12시 신성교회 밥, 16시 노숙자선교회 밥.' 그걸 적는 모습에서 궁상(窮狀)을 봤는지 자원봉사자가 "어서 오라"고 하는 통에 놀라, 내 가족의 밥을 벌러 발을 재게 놀렸다.



"굶은 사람들의 눈 속에는 차츰 끓어오르는 격노의 빛이 있다. 사람들의 영혼 속에는 '분노의 포도'가 차츰 가득해져서 심하게 익어간다." 존 스타인벡이 쓴 '분노의 포도(葡萄)'에 나오는 구절에 친구의 경험담이 오버랩된다.

지금 공직자로 떵떵대는 그가 어린 시절 무전(無錢)여행에 나섰다. 호기로운 출발은 얼마 가지 못했다. 주머니가 비고 몇 끼 굶다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고 한다. 그때 주린 그가 어느 농가 개(犬) 앞에 놓인 밥그릇을 보게 됐다.

"된장국에 갓 밥 말아 김이 무럭무럭 나는 걸 보니 눈이 홱 뒤집혔다. 개가 달려들길래 한방 후렸더니 옆에서 낑낑대더라…." '굶은 자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 맹자(孟子)를 읽었을 리 없는 그에겐 굶는 게 교과서였다.

얼마 전 대학 캠퍼스 안 양극화 현상이 보도됐다. 2500원짜리 점심 사 먹기도 벅찬 학생들이 최고 4만원짜리 런치를 즐기는 있는 집 자제들을 보며 적개심을 키운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며 30년 전 대학때가 생각났다. 당시엔 구내식당에서 150원짜리 밥 사먹는 이가 '부르주아'였다. 보통 20원짜리 단팥빵 하나에 물배 채우거나 '왕진(往診)가방'에서 누가 볼까 도시락을 꺼내 외진 곳에서 후딱 해치웠다. 세대가 바뀌어도 사람 사는 건 같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인간의 3대 욕구가 식욕·수면욕·성욕이라 한다. 곰곰 견줘보니 성욕은 일단 제쳐도 될 것 같은데 나머지 둘은 위아래를 가리기 난감하다. 그래서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먹고 잔다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이란 단어가 나왔을 것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5인 가족을 기준으로 쌀을 많이 먹는 집이 한 달에 25㎏ 정도 소비한다고 한다. 기자의 집은 군것질을 많이 했는지 15㎏ 정도 된다. 유기농이냐 아니냐에 따라 값이 다르겠지만 요즘 쌀 20㎏ 포대가 보통 4만3000원 안팎이다.

그런데도 밥 한 그릇 챙기는 게 큰일인 이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자원 배분 논의(論議) 방향이 삐뚤어진 건 아닌가 싶다. 하기야 방금 전에 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이용객이 없는데도 저 혼자 펑펑 전기 써가며 움직이지 않는가.

지금도 정치권에 살아 꿈틀대는 화두(話頭)인 무상급식은 또 어떤가. 있는 이에게 추렴해 없는 이 돕는 복지의 기본을 망각한 허담(虛談)이다. 식당 고치고 그러다 식중독이라도 나면 아예 어느 대학처럼 최고급 레스토랑이라도 지어야 한다는 걸까.

상황이 나빠져 이것저것 다 줄이면 밥 한 그릇에 반찬 두어 가지면 족하다. 그걸 모르는 세상이 아이패드니, 소셜네트워크니 하며 입방아 찧는다. 그러다 곡물파동이니 국제 농산물 가격 앙등 소식에 비로소 소름이 쫙 돋고 만다.



'굶주린 개는 사자를 겁내지 않는다.' 터키 속담이다. '굶주린 자는 허리칼이라도 가슴에 안는다.' 아라비아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배 터지게 먹다 병 앓는 남(南)과 배 들러붙어 굶어 죽는 북(北)이 공존하는 게 이 땅이다.

'흰 쌀밥에 고깃국 먹이겠다'던 북한 왕조(王朝)는 70년도 안 돼 그 약속 못 지켜 장마철 흙담 처지다. 임어당(林語堂)이 한 말을 독재자에게 전한다. "민중이 굶었을 때 제국(帝國)이 붕괴했고 공포정치도 사라졌다." 밥이 천심(天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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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갑식 선임기자 기근은 맛난 조미료 노숙자들의 1식3찬 부자 밥상보다 더 풍성 南은 배불러 병 생기고 北은 배곯아 굶어 죽고 밥이 곧 天心이다 서울 용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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