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빚내서 아내,아이를 미국으로 보낸 '기러기 아빠'의 마지막

문갑식 선임기자 gsmoo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5-02 10:12

문갑식 선임기자

꿈도 시작은 소박했다 그런데 욕망이 불타오르는 순간 그것은 늪이 돼
아버지·어머니와 임금님마저 삼켜버렸다 계절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옛날에 잘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헌법(憲法)은 딱 두 줄이었습니다. '모든 백성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단, 임금보다 덜 행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임금님은 자기가 나라 다스리느라 고생했기에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나라엔 관리들이 많았습니다. 누군가 의무를 어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은 그래도 못 미더워 몸소 궁성(宮城) 밖을 다녔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이 자기보다 더 행복한 촌장(村長)을 발견했습니다. 임금님은 그 벼슬을 빼앗았습니다. 그래도 사내가 행복해하자 그의 예쁜 아내와 착한 아들·딸을 죽였고 다음에는 사내를 거지로 만들었습니다. 임금님도 스스로 너무 모진 게 아닐까 뉘우쳐 보았습니다. 그래도 결론은 같았습니다. "헌법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어!"

임금님은 마침내 사내를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거기서 고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이 궁금해 가 보니 지푸라기, 나무젓가락, 밥풀이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행복하구나!" 임금님이 떨며 독배(毒杯)를 건네자 사내는 오히려 즐거워했습니다. "잘됐군요. 하늘에서 가족을 만나게 됐으니…." 질투에 몸 단 임금님은 "너에게 질 순 없다"며 독배를 빼앗더니 냉큼 자기 입에 부었습니다.



서울 운현궁 터 근처에 한의원이 있었다. 세상을 고통에서 구하자며 할아버지가 세워 3대(代)째 내려오던 그곳이 얼마 전 사라졌다. 부지런하고 불우이웃 돕기에도 남달랐던 주인이었다. 그의 때아닌 영락(零落)이 궁금해 수소문해봤다.

퀭한 눈빛의 50대가 털어놓는 스토리가 허무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미국 보냈잖아. 손님은 주는데 타지(他地)에서 처자식 고생할까 봐 빚을 썼지. 넘어갔어, 경매(競賣)로." 사나이 실패,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지만 결말이 괘씸했다.

"마누라와 아들은 연락도 없어. 딸만 몰래 전화해 울더군. 자기들은 잘 지낸다며…."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기러기 아빠'의 말로(末路)를 이렇게 목격했다. 그에게 건넬 수 있는 건 쓴 소주 한잔, 말 한마디뿐이었다. "꼭 재기하십시요."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박완서(朴婉緖)의 소품 '마지막 임금님'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남을 못 이기곤 못 배기는 우매한 임금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욕심이 너무 커 그걸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삶을 용납하지 못한다." 평론가 박덕규의 해설이다.

한의(韓醫)의 꿈도 시작은 소박했을 것이다. '남보다 조금 더 앞서보자'는 그 작은 욕망이 괴물이 돼 가족을 손익(損益)이란 차가운 관계로 만들고 말았다. 만일 그에게 이리 말했던들 들었을까. "사실…, 김치찌개 한 그릇에 온 식구가 숟가락 꽂고 다투는 게 행복인데요."



'아버지의 마지막'을 목도하며 '마지막 임금님'을 떠올리다 보니 주변이 온통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군상(群像)투성이다. 한 대학 후배는 갓 부장된 자기 회사 상사의 말에 통음(痛飮)했다고 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의 말은 이랬다고 한다.

"내 3년은 더 해먹어야겠는데…. 아무래도 네가 걸리적거리니 나가 달라!" 그 말을 한 이는 자신의 삶만이 영생불사(永生不死)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어디 '마지막 부장님'뿐이랴, '현대판 임금님'은 연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날 위해 몸 던지는 이는 없고 다 제 살 길만 찾는다" "내가 기업 있을 땐 안 그랬다" "남 탓하는 사람 성공 못한다"…. '현대판 임금님'은 자신이 허무(虛無)에 젖어 있는 동안 주변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4·27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특히 한나라당 수도권지역 의원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그중 한 의원이 딸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때문에 아내가 울먹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의 아내는 매일 관내 복지관을 돌고 있다. 그 수가 열개가 넘으니 식모(食母)도 이런 식모가 없다. 그게 벌써 3년째다. 물론 목표는 남편의 재선, 몇 표 더 얻자는 '소망'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저녁때만 되면 팔다리가 퉁퉁 붓기 일쑤인데 딸이 앞치마를 넣어둔 핸드백을 보고 한마디 던졌다는 것이다. "엄마, 너무 냄새나." 앞치마 빨아주겠다는 '효도'까지 기대한 건 아니지만 격려는커녕 '짬밥 냄새' 타박하는 철부지의 말에 아내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보고 뺨 한 대 올려붙이려다 겨우 참았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오월이다. 가정의 달이고 계절의 여왕(女王)이다. 그렇게 소중한 하루하루인데 임금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두터운 욕망의 담장 속에 틀어박혀 세월을 잊고 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햇빛 좋은 이 봄이 오히려 애처롭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캐나다 과학기술자협회(이하 AKCSE)가 주최한 수학경시대회 시상식이 지난 28일(금) 오전 밴쿠버총영사관에서 개최됐다.   AKCSE는 차세대 한인 과학도들을 양성하고자 매년...
350만 달러 재정 지원··· 12개 교육기관 대상
영어 학습부터 의료·유아교육 등 과정 수강
BC주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성인 기초 교육 및 영어 학습 패스웨이 프로그램’ 혜택이 올해도 이어진다. 리사 비어(Beare) BC 고등교육·미래기술부 장관은 19일 성명을 통해 12개의 공립...
니코메클 엘레멘터리 증축··· 200명 추가 수용
라치나 싱 BC 교육부 장관 /BC Government Flickr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랭리가 학교 건물 신축과 증축을 통해 과밀 학급 문제를 해소할 계획이다.   7일 라치나 싱 BC 교육부 장관은...
토론토대 25위 UBC 38위··· 앨버타대 톱100 복귀
MIT 13년 연속 1위 지켜··· 서울대는 31위
토론토대 전경/Getty Images Bank 세계 대학 순위에서 캐나다의 대학 4곳이 10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는 4일 2025년 세계 대학 평가 순위를...
라시나 싱 교육보육부 장관 / BC Government Flickr BC주에 더 많은 학교 놀이터가 지어질 전망이다.   4일 BC 교육보육부는 어린이들의 신체 활동을 장려하고 나눔 등의 사회적 기술을...
‘건축가란 무엇인가’ 특강 내달 22일 개최
15년 경력의 제이정 건축가 강연자로 나서
건축가를 꿈꾸는 밴쿠버 청소년들을 위한 특강이 오는 6월 22일(토) 오전 11시, 밴쿠버 다운타운에 위치한 Jay Jung Architect Inc. 본사에서 열린다.   청소년 한국문화 사절단(KCYAS)이...
한인 여성, 모든 인종·성별 통틀어 대학 진학률 최고
졸업률은 평균 수준··· 백인은 진학률 낮고 졸업률 높아
한인들의 대학 진학률이 캐나다 모든 인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연방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인과 중국인의...
한인과학기술자협회 주최··· 제15회 행사
BC주 거주 4~11학년 학생 183명 참가
지난 4일 캐나다한인과학기술자협회(The Association of Korean Canadian Scientists and Engineers, 이하 AKCSE)가 주최한 수학경시대회가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SFU) 버나비 캠퍼스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K-3학년 대상으로 난독증 검사 실시
4학년 이전에 치료 시작해야 효과적
BC주가 초등학교 K-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난독증을 비롯한 기타 학습 장애를 검사한다.   16일 데이비드 이비 BC 수상은 이와 같이 발표하며,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난독증 검사를...
10일 발표된 ‘QS 세계대학평가 전공별 순위’에서 여전히 미국과 영국 대학들이 최상위권을 휩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중국이 꾸준히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재학생들이 직접 가이드 나서 다양한 팁 전달
UBC와 SFU 진학을 준비하는 한인 고등학생들이 캠퍼스의 낭만을 미리 경험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라움한글은 UBC 인턴기자단인 하늬바람, SFU의 한인동아리 KSU(Korean Student Union)와...
트뤼도 정부, 4월 예산안 발표 앞두고 공약
5년간 10억 달러··· 2024-25년도 시행 기대
이르면 올해부터 캐나다에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교 급식제도가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와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재무장관은 1일 토론토에서 열린...
소셜미디어가 학생들 정신건강·학습에 악영향
지난해 미국 41개 주정부도 메타에 집단소송
대형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온타리오 교육청 네 곳으로부터 대규모 소송을 당했다. 소셜미디어가 학생들의 학습과 정신건강, 사이버괴롭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4월 1일부터 주전역 95% 데이케어에 적용
“양육 가정 보육료 부담 덜기 위한 조치”
오는 4월부터 주전역 보육 시설에서 시행되고 있는 ‘대기료(waitlist fees)’ 관행이 사라진다. 28일 그레이스 로레(Lore) BC보육부 장관은 주정부의 수수료 인하 사업의 일환으로 BC에서 허가...
트뤼도 정부, 3가지 보육 실천 공약 제시
2026년까지 전국에 25만 개 보육공간 조성
트뤼도 정부가 맞벌이 가정의 보육 공백을 최소화할 실질적인 대안책을 마련했다. '하루 10달러' 보육 공간을 확대해 더 많은 양육 가정에 저렴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벤처 1세대’ 최기창 서울대 산학협력교수 강연자로 나서
밴쿠버 청소년 한국 문화사절단(Korean Cultural Youth Ambassador, 이하 KCYA)이 광역 밴쿠버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온라인 특강을 개최한다.   오는 4월 6일(토) 오후 5시부터 진행될...
토론토대, 3년 연속 세계 21위 안착
UBC는 작년 보다 4계단 오른 36위
올해 캐나다 명문 대학들이 세계 대학 평판 랭킹에서 지난해에 비해 약진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타임즈의 대학 평가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발표한 2023 세계 대학...
유학생 모집하는 신규 대학 2년간 승인 중단
“사립 대학에 최소 어학 요건도 새롭게 도입”
앞으로 2년간 BC주 대학들의 무분별한 유학생 유치 활동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29일 BC주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을 모집하려는 신규 고등교육 기관에 대한 승인을 오는 2026년 2월까지...
오는 9월 학기부터 휴대전화 사용 금지령
사이버 폭력 예방 차원··· 올봄 법안도 도입
다가오는 9월 학기부터 BC주 전역 학교에서 교내 휴대전화 사용이 본격적으로 금지된다. 데이비드 이비 BC 수상은 금요일 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 위협(online threats)’으로부터...
맥길 등 영어권 대학 등록금 약 30% 인상
졸업 전까지 불어로 의사소통 가능해야
퀘벡 “불어 보호 위한 결정”··· 대학들 반발
앞으로 퀘벡 소재의 영어권 대학에 진학하는 타주(州) 학생들은 등록금을 더 지불하고 불어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   14일 퀘벡 교육부는 다가오는 2024-25학기를 시작으로...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