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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임원에서 國樂 전도사 된 강인철(66)씨

정리=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6-08 09:53

"예전의 삶이 중중모리였다면 국악 강사인 지금은 휘모리"
마흔여섯에 직장 그만두고 실크로드부터 희망봉까지
배낭 하나 메고 전 세계를 누볐다
여행 중 국악 소중함 깨닫고 지리산에서 판소리·북 배워
다문화 가정에 소리 가르친다

인도네시아 티모르에서 시집온 '섬 색시' 알리파는 오늘 또 지각이다. 내가 시계를 자꾸만 쳐다보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몽골에서 온 막내 짜야가 거든다. "마종 하까요(마중 나갈까요)?" 몇 분 뒤 얼굴이 시뻘게진 알리파가 딸아이 손을 잡고 교실 문을 빼꼼 연다. "선생님, 아임 소리(I'm sorry)!"

서울 마포평생학습관에서 내가 매주 강의하는 다문화 가정 대상 국악 교실의 풍경은 늘 이렇다. 한국말인지 중국말인지 베트남말인지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분간하기 어려운 각 나라 말이 뒤죽박죽 섞여서 오간다. 그래도 몇 달 전 처음 강의가 시작됐을 때를 떠올리면 많이 나아졌다. 그땐 우리말이 서툴러 손짓 발짓으로 얘기했는데 이젠 세마치 가락도 알고, '얼~쑤 절~쑤' 추임새도 곧잘 넣는다. 요즘 내 인생을 채워주는 이들은 이렇듯 피부색은 다르지만 어엿한 대한민국의 며느리로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아내들이다. 그들과 내가 공유하는 언어는 '국악(國樂)'이다.

1980년대 삼진제약 총무부장 시절 생일을 맞은 강인철씨. 직원들이 사온 축하 케이크 를 앞에 두고 포즈를 취했다.
이들과 나의 인연만큼이나 나와 국악의 인연에도 사연이 많다. 197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은 대기업의 한 계열사였다. 중동 근무를 주로 했는데 아이 다섯을 아내한테 맡기고 혼자 외국 생활을 해야 했다. 결국 참다 못한 아내가 따졌다. 가족을 택할 건지, 일을 택할 건지. 고민 끝에 1981년 중동지사장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직업을 알아봤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게 당시로써는 드물게 주 5일 근무를 하던 '삼진제약'이었다. 약은 계획 생산을 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인생을 살 수 있었다. 당시 직원 50명의 작은 회사였지만 정말 온 정성을 쏟아 일했다. 총무부장 시절엔 새마을운동을 도입해 회사 환경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 만 10년이 지나니 직원이 380명으로 불어나고 회사 몸집도 몰라보게 커졌다. 이사로 승진해 한창 잘나가던 1991년 돌연 사표를 썼다. 이유는 단 하나,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형님이 책 한 권과 영어사전을 선물로 줬다.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일주'였다. 책장이 너덜너덜 닳도록 매일 밤 그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꼭 세계일주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린 시절의 치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간절한 바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중동에서 근무할 때도 제약회사에서 일할 때도, 세계여행의 꿈은 접지 않았다. 되레 시간이 흐를수록 간절함은 커지기만 했다. 결국 세계여행을 위해 마흔여섯에 회사를 그만뒀다.

국악과 함께 새 삶을 사는 지금의 모습. 꽹과리의 쨍한 소리를 여러 나라 사람에게 알리는 게 꿈이다.
중동 근무 시절에 모은 돈으로 작은 상가 건물을 구입해 둔 게 세계여행의 밑천이 됐다. 이후 10년 동안 배낭을 메고 실크로드부터 시작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희망봉까지 세계일주를 했다. 한꺼번에 돌기엔 체력적인 부담이 있어서 몇 달씩 나갔다가 돌아와 체력을 보충하고 다시 나갔다. 네 아들과 함께 미국을 횡단한 뒤 여행기를 책으로 쓰기도 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처음엔 외국 문물이 그저 신기하고 좋아 보여서 기념품을 사 오느라 급급했다. 그런데 여행 횟수가 늘면서 우리 문화를 알리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는데, 그때 떠오른 게 국악이었다. 1992년 서울 흥사단의 풍물강좌를 수강하고 전북 남원으로 내려가 지리산에서 판소리와 북을 배웠다. 어느 틈에 꽹과리는 나의 든든한 여행 파트너가 됐다. 세계여행을 떠날 땐 배낭 안에 꽹과리를 넣고 가서 현지의 젊은이들과 즉석에서 한판 공연을 벌였다. 영혼을 쨍 하고 깨우는 듯한 꽹과리 소리에 매료되자 국악을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이론적인 부분을 채우기 위해 국립국악원에서도 공부했다. 그러다 우연히 1994년 서울 마포 평생학습관에서 국악을 가르치게 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올봄 다문화 가정을 위한 특별교실을 맡으면서 국악을 가르치는 보람을 어느 때보다 많이 느끼고 있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어쩌면 그렇게 일찍 회사를 그만뒀느냐고, 어떻게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둘 수 있었느냐고, 그렇게 쉽게 버려지더냐고.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버려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면, 간절한 다른 바람이 있다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다고. 직장인 시절 내 삶은 국악 장단으로 치면 중간 정도의 빠르기를 지닌 중중모리였다. 저 가슴 아래 열정을 묻어놓고 평범히 살아간 세월이었다. 지금 내 삶은 가장 신명나는 휘모리장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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