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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멈춘 사회, 2000만명(日 인구의 15%) "친구나 동료 없어"… 늙어선 외톨이 알바

도쿄=차학봉 특파원 hbch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6-22 12:32

[10년 후 우리의 모습…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일본] [3·끝]
한때 자유의 상징 프리터族 중년 넘어서까지 못 벗어나, 수입은 정규직의 20~30%
직장에 뿌리내리지 못해 인간관계 맺을 기회 줄어 "이웃과 왕래한다" 13%뿐

고다마 에이치(30)씨는 10년째 파견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인력회사의 소개로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짧게는 1~2주일, 길게는 서너 달씩 일을 하다 보니 어떤 회사에서 일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도 않는다. 당연히 어느 조직에도 깊이 뿌리내릴 기회가 없었다. 고다마씨는 "월급이 작은 것도 문제지만 일하는 곳이 자주 바뀌다 보니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고 연애를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일본 기업들은 20년 불황을 겪으면서 정규직을 줄이고 대신 파트타임이나 파견사원을 고용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일본 피고용 인구 3명 중 1명이 '떠돌이 직장인'이 됐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그리고 장기불황이 계속되면서 성장을 멈춘 일본 사회의 자화상이다.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삶을 마감할 '중년 프리터'는 13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수입은 같은 연령대 정규직의 20~30%에 불과하다. '프리터'는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일본식 조어다.

인간관계 맺는 방법을 잊었다

일본 시사잡지 '주간 다이아몬드'는 최근 OECD 조사를 인용해 일본인 15.27%가 친구·동료들과 전혀 또는 거의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1억2800만명 인구 중 거의 2000만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특히 프리터와 파견사원이 늘면서 직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지자 외톨이형 인간이 급증하고 있다. 프리터 중에는 어떻게 사람들과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지를 아예 잊었거나 귀찮게 여기게 됐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자신감도 사라졌다고 한다. 또 떠돌이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고 모임에 나갈 기회도 줄었다고 한다.

일본 구직정보회사 'AN'이 최근 프리터에서 정규직 사원이 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정규직이 되고 보니) 아르바이트를 할 때보다 사람들과 훨씬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기면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응답이 나왔다. 안정적인 직장은 늘어난 수입 외에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직장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면서 조직 내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기회가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이웃과 가깝게 지내는 일도 쉽지 않다. 아사히(朝日)신문이 최근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13% 정도만이 이웃과 왕래를 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답했다. 극단적인 경우는 아예 집안에 처박혀 외출을 거부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약 70만명에 달한다. 또 히키코모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 폐쇄적인 젊은이들이 155만명에 달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고독사 방지운동을 펼치는 나카자와 다쿠미(中�n卓�|)씨는 "인간관계에 서툴다 보니 이웃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 대신 캐릭터에 빠진 젊은이들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자 사람 대신 게임 속 캐릭터에 빠져 지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 8월 일본 3대 온천의 하나인 아타미시의 한 호텔. 관광버스에서 내린 젊은이들은 모두 게임기를 한 대씩 들고 호텔로 들어갔다. 닌텐도 게임 속 캐릭터 여성과 여행하는 이벤트에 참가한 젊은이들이었다. 이 여행 이벤트는 첫날에만 250명 이상이 신청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도쿄 아키하바라 등에는 만화 속 복장을 한 젊은 여성들이 나오는 '메이드카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도요에이와(東洋永和)여자대학 하루키 이쿠미(春木育美) 교수는 "일본은 친구들이 미팅을 주선하는 등의 문화가 많지 않아 주로 직장을 통해 연애하고 결혼을 했지만, 요즘엔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연애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애에도, 일에도 소극적인 일본의 젊은이들은 외국유학을 꺼리고 해외근무도 기피한다. 이 역시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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