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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vs 일본해, 밴쿠버에서 팽팽한 설전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8-19 13:31

[이슈 스케치] 동해 지명과 바다명칭에 관한 국제 세미나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는 하루 이틀 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간 외교적 갈등의 원인이 됐고,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세계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떨까? 17일부터 20일까지 동해연구회와 동북아역사재단은 버나비 힐튼 호텔에서 '제17회 동해 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찾았다.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원, 한국국제교류재단, 해외문화홍보원 등이 후원한 행사였다.


한국 정부는 1992년부터 일본해(Sea of Japan) 대신 동해(East Sea) 표기 확산을 추진해왔다. 수천년동안 한반도 주민들이 사용해왔던 토착지명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국제수로기구(IHO∙해역 명칭 표준화 및 국제수로 업무의 협력 증진을 도모하는 정부간 기구)가 1929년 발간한 <해양의 경계>  초판에 일본해가 명시된 이후, 일본해가 표준화됐다.  1929년이면 한국의 주권이 일본에 의해 강탈당한 때다. 현재 전 세계 지도의 약 70%는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고 있다. 

한국 학자들은 ‘동해’ 명칭 역사가 1602년 마테오 릿치가 만든 ‘곤여만국전도’에 처음 등장한 ‘일본해’ 명칭보다 더 오래됐다고 주장한다. 세미나에서 발표된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의 ‘역사를 통해 본 한국인들의 동해 생활’ 논문 요약을 보면 “동해는 BC 1세기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바다의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심지어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13세기에 발행된 동전에도 동해통보(東海通寶) 새겨져 있었다. 그만큼 동해는 한국인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중략)…동해는 한국인들과 함께 몇 천년 동안 사용된 친숙한 이름이었다. 우리는 이 이름이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사회에서 영구히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본 정부의 주장도 강경하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해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일단 미국과 영국은 ‘일본해’ 표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해∙동해를 둔 분쟁으로 '해양의 명칭은 병기(倂記)하지 않는다'는 단일 명칭 원칙(Single Name Policy)에 따라 동해•일본해를 나란히 적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하나의 명칭으로 표기해야 한다면 1929년부터 전 세계 지도에서 주류를 이룬 일본해 명칭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한국 전문가들은 이같은 동해∙일본해 표기 분쟁엔 학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20여년 전, 이기석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現 서울대 명예교수∙동해연구회 명예회장)은 국제 사회에서 동해 지명을 연구하고 홍보하는 동해연구회(회장 박노형∙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창설했다. 동해를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학술 기관으로1994년 11월 외교통상부 등록 사단법인으로 등록됐다.

동해연구회의 주요 활동사항 중 하나는 매년 ‘동해 지명과 바다명칭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다. 세미나에서 만난 이교수는 “90년대에 동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거의 없었다. 그래서 동해연구회를 시작했다. 처음 학술회의는 한국에서 열었지만,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 효과를 높이려면 해외에서 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2002년 이후 네덜란드 헤이그(2010), 호주 시드니(2009), 튀니지(2008), 오스트리아 빈(2007), 서울(2006), 미국 워싱턴(2005), 프랑스 파리(2004), 중국 상해(2003), 러시아 블라디보스톡(2002) 등 세계를 돌며 회의를 열었다. 17년간 세계의 전문가가 참가하는 학술회의로 거듭난 결과, 이제는 전세계에서 지명에 관한 이론, 방법, 논문 200여편 등 가장 관련 학술자료를 많이 모은 단체가 됐다”고 밝혔다. 박노형 회장은 “매년 꾸준히 개최하는 세미나에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적극 참여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고 중요성을 인정받는 학술 세미나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2011년 17회 세미나는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으로 17일부터 3박4일간 버나비 힐튼호텔에서 개최했다. 12개국 40여명의 세계적 지명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동해∙일본해 지명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의 바다명과 지역명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했다.


<▲ 박노형 동해연구회 회장은 세미나 전 인삿말에서 다양한 전문가들이 동해 문제를 놓고 다각적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한혜성 기자) >


<▲ 제17회 동해 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세미나는 버나비 힐튼호텔에서 진행됐다. (사진=한혜성 기자)>


올해 세미나에는 브라힘 아투이(Atoui∙알제리) 유엔지명전문가회의(UNGEGN) 부의장, 피터 요르단(Jordan) 오스트리아 지명위원회 위원장, 폴 우드만(Woodman) 영국지명위원회 전 사무총장, 조세프 스톨트만(Stoltman)  전 미국지리교사연합회 회장, 포콜리 벨라(Bela) 헝가리 지명위원회 자문위원, 큐  웨이민(Weimin) 북경대학교 교수 등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박노형 회장을 비롯하여 장동희 국제표기명칭대사, 이상태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서대원 전 외교통상부 대사,  주성재 경희대 교수 등이 발표자 및 토론자로 나섰다. 일본에서도 와타나바 코헤이(Kohei) 데이쿄 대학교 교수와 야지 마사타카(Masataka)  요코하마국립대학교 명예교수가 일본 학계의 의견을 발표했다.

올해의 학술회의는 크게 ▲ 바다 이름 제정의 개념적 논의 ▲ 영유권 이슈와 바다 이름 제정 ▲ 바다에 대한 인식과 이름 제정 ▲ 지리교육에 있어 지명의 역할 ▲ 지명의 병기는 불가능한 일인가? ▲ 동해∙일본해 이슈▲ 패널 토론 등 총 7개의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이번 회의에서 수렴된 견해는 종합해 바다 이름을 국제적으로 다루는 기구인 국제수로기구(IHO) 제18차 총회(2012년 4월)와 유엔지명표준화회의 제10차 총회(2012년 8월)에 전달할 예정이다.

제3국은 한쪽 편 들기 힘든 상황
세미나에선 한국 학자들과 일본 학자들의 근본적인 견해가 대립했다. 18일 첫번째 세션에서 서정철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는 김인환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공동 집필한 논문, ‘바다 이름, 고지도, 외래지명/토착지명: 명칭론적 접근’을 발표했다. 언어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이스트 씨(East Sea)’이 가장 유효한 명칭이라는 요지였다.

발표 후 질문∙답변 시간에 와타나베 코헤이 교수는 논문에 대해 “이름은 이름일 뿐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반박했고, “일본해(Sea of Japan)라는 이름은 유럽인들이 먼저 부르고 인정한 것이지, 일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한국이 주장하듯 식민지 시대의 책임 또한 없다”고 다른 견해를 보였다. 이에 서 교수는 “일본해 명칭이 IHO에 의해  표준화된 것은 식민지 시대에 진행된 것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한국 학자들의 논문은 ‘동해’의 정당성에, 일본 학자들은 ‘일본해’의 정당성에 힘을 뒀다.  제3국의 전문가는 대부분 한 쪽의 편을 들기보다 다른 분쟁 해결 사례 소개나 문제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할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박회장은 이에 대해 “한∙일 국가간 대립관계가 형성된 마당에 전문가들도 쉽게 의견을 내놓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세계적으로 지명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은 여러 건 있지만, 동해∙일본해는 두 나라의 큰 외교적 문제로도 불거져 분쟁 지명이 발생한 경우”며 “이같은 상황은 제3국이 개입해서 좋은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한다”고 설명했다.

브라힘 아투이 유엔지명전문가그룹 부의장은 ‘동해∙일본해∙Sea of Japan∙East Sea의 지명학적 위상과 범주’에 대한 논문에서 “한국과 일본간 양보할 수 없는 분쟁”을 언급하며 “양국은 바다 지명을 문화적∙역사적 한  부분으로 여기기 때문에 지명을 지키는 것에 필사적인데, 공유되는 공간은 공유할 수 있는 이름을 써야한다”고 조심스러운 중재안을 밝혔다.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합의점은
과연 동해∙일본해 분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문제일까? 박회장은 이 질문에 “동해를 인정받는 방법이 2가지가 있다. 우선 국제권위인 IHO와 UN지명위원회의 개명이다. 현재 표준으로 표기되어 있는 일본해가 동해로 바뀌면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각종 출판물과 학교에서 사용하는 명칭 표기 변경이다. 보다 많은 단체가 일본해보다 동해를 인식한다면 동해 명칭이 표준화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대원 (前 외교통상부 대사)국가브랜드위원회 국제협력분과위원장은 “일본해가 이미 표준화된 마당에 일본 학자들은 이 같은 세미나를 열지 않는다. 우리들(한국인)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이 노력해 보다 많은 나라의 국제적 지지를 얻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학자들은 동해∙일본해 분쟁 해결에 합의점을 제시했다. 주성재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동해 수역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중요성 부각에 비추어 볼 때 이 지역의 영토, 경제수역, 그리고 표기를 둘러싼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해결되어야 한다”며 동해∙일본해 표기에 관한 3가지 해결방법을 들었다. ▲ 새로운 제3의 이름에 합의하는 것 ▲2개의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  ▲ 바다를 분리하여 분리된 바다에 각각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주 교수는 “그러나 어떤 해결이라도 각국의 정치적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노력∙일본의 필사적인 저지
한국 정부는 동해 단독 표기를 원칙으로 삼되, 국제사회에서 일본해가 통상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것을 목표로 2000년부터 움직여왔다. IHO가 1953년을 끝으로 개정하지 못한 공식 해도를 바꿀 때, 일본해와 함께 동해란 명칭도 실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지도의 약 28%는 '동해∙일본해'로 병기하고 있다.

2002년 제16차 IHO 총회에선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일 간의 공방을 인식한 IHO가 일본해 표기를 지운 후, 이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명칭을 공백으로 남겨두기로 초안을 잡았었다. IHO는 회원국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표결을 부치려 했으나 표결은 돌연 무산됐다. 일본 정부가 배후에서 외교력을 집결해 총공세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2007년 제17차 IHO 총회 때도 이 문제에 대한 표결은 이뤄지지 못했고 내년 총회에서도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한혜성 기자 Helen@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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