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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하는 스님, 그 목소리에 성당도 눈물바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8-19 22:42

[美서 5년간 150여회 찬불가 공연하고 돌아온 정율 스님]
불교계서 보기 드문 성악가 '한 시간 설법보다 나은 한 곡' 찬불가 들은 큰스님들도 극찬
"무대가 禪房, 노래는 참선… 내겐 노래하는 순간이 곧 수행"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열릴까/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리고/ 얼마나 버려야 자유스러울까/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

2009년 9월 19일 오후 7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세인트마이클 성당에서 열린 '사랑·자비·희망 콘서트'. 한인 교포와 미국인, 천주교와 불교, 기독교 신자 등 800여 명 관객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흐느꼈다. 무대 위에 선 작은 체구의 비구니는 '찬불가 스타' 정율(廷律) 스님. "얼마나 고단하셨어요. 험하고 외로운 가시밭길이지만 불법(佛法)에 의지해 걸어가다 보면 부처님께서 언젠가는 여러분 앞에 환한 등불을 켜주실 거예요."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인 동포들의 고단한 마음을 보듬는 찬불가에 객석은 울음바다가 됐고,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찬불가를 부르는 불교계의 보기 드문 성악가 스님인 정율 스님은 “무대는 내 선방(禪房)이고 노래는 곧 내 참선(參禪)이어서, 노래에 빠져 들어가 노래하는 순간과 법당에서 기도하는 순간이 내게는 별개가 아니라 수행 그 자체로 또렷이 하나”라고 했다. /정율 스님 제공

성가곡과 합창 문화가 발달한 기독교와 달리, 불교계에서 정율 스님은 보기 드문 전문 성악가다. 지난 5년간 하와이부터 뉴욕까지 오가며 150여회 공연과 찬불가 강의를 했고, 최근 귀국해 3집 음반 '오늘은 좋은날'을 냈다. 예비 스님인 사미니 때인 1988년 우연한 기회에 처음 무대에 선 뒤 크고 작은 공연이 그동안 1000여회에 달한다.

출가 전까지 정율 스님은 정식 성악공부를 한 적은 없다. 고1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출가의 뜻을 굳힌 그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출가했다. 어린이 포교를 꿈꾸던 그에게 1988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장애올림픽 기금 마련 삼소음악회는 인생행로를 바꿔놓은 전기였다. 삼소음악회는 불교·천주교·원불교 성직자들이 힘을 합친 공연. 당시 범패 공연단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었던 스님은 우연히 합창단 오디션까지 보고 발탁됐고, 소프라노 솔로와 중창 공연까지 하게 됐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고, 정율 스님의 노래는 어른 스님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 미니계를 받고 운문사 승가대학에 진학한 뒤엔 당시 학장이던 명성 스님이 정율 스님의 '멘토'였다. 틈만 나면 공연을 주선했고, 승가대학 4학년 때부터는 영남대 음대 학장을 지낸 성악가 김금환 교수에게 1주일에 한 번씩 보내 레슨을 받게 했다. "김 교수님은 수녀로 '출가'한 따님이 있으셨어요. 그래서인지 저를 딸처럼 여기고 자상하게 가르쳐주셨고, 찬불가 활동을 활발히 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기뻐하셨죠."

비구니계를 받은 뒤 도반(道伴)들은 선방(禪房)으로 들어갔지만, 스님은 원광대 음악교육과에 진학했다. 학부 4년과 대학원 5학기를 거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스 님은 스스로를 '음악하는 수행자'로 여긴다. 격식대로 가사 장삼을 갖춰 입고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말할 때도 여법(如法·불법에 합당함)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어느 수녀님이 제게 말씀해주셨어요. '수도자는 목소리만 갖고 노래하는 게 아니라 영혼을 담아 온 마음과 몸을 다해 노래해야 하는데, 스님의 노래에는 진짜 혼이 담겨 있다'고요. 지극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도록, 부처님의 진리와 음악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요."

그래서일까. 당대의 선지식들도 스님의 찬불가를 극찬했다. "전생에 법화경 독송을 많이 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타고난 것"(전 직지사 조실 고 관응 스님) "항상 수행자로서 여법함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비구니 회장 명성 스님) "정율 스님에게는 노래 수행이 곧 포교"(고운사 조실 근일 스님) "한 시간 설법 듣는 것보다 정율스님 찬불가 한 곡 듣는 것이 훨씬 낫다"(광덕사 회주 혜인 스님)는 평을 들었다.

스님은 미국에 가기 전까지 운문사 승가대학 불교음악 전임교수로도 10년을 가르쳤고, 불교TV의 찬불가 교실 '오늘은 좋은날'을 약 3년간 진행했다. 팬카페에 회원이 5000여명에 달할 만큼 불교계에서는 이미 전국구 스타다.

참 선에 용맹정진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스님들도 많은데, 출가자로서 찬불가를 부르며 살아가는 삶이 무상하진 않을까. "온 마음으로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할 때 염불하고 참선하듯 삼매에 든다고 생각해요. 무대가 제 선방(禪房)이고, 노래가 제 참선(參禪)인 셈이지요. 노래에 빠져 들어가 노래하는 순간과 법당에서 기도하는 순간이 제게는 별개가 아니라 수행 그 자체로 또렷이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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