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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에 기부 시작, 평균나이 59세… 절반이 고졸 이하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9-26 09:32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49명, 그들은 누구인가
한국형 고액 기부자 - 50~60代 30명, 40代도 8명 절반이 어린시절 어렵게 살아

 

평소 기부할 생각 갖고 있다가 신문·방송 기사 보거나 가족 질병·사별 후 기부 결심 박순용(58) 인천폐차사업소 회장은 최종 학력이 '사회복지학 석사'다. 하지만 '중졸' 학력으로 사회생활 대부분을 보냈다.

고향은 전북 정읍. 8남매 셋째 아들로 태어나 없는 집에서 대학 가려고 배구를 했는데 그 길로 대성하기엔 키가 모자랐다(180㎝). 럭비로 종목을 바꿔 이리공고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못 가 그만뒀다. 서울 영등포 메리야스 공장에서 일하다 특전사에 갔고, 중사로 전역한 뒤 고물 줍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외지 출신이지, 학벌도 없지…. 폐염전을 사들여 폐차장을 차렸는데, 가진 게 없으니 겁날 것도 없습디다. 사업이 자리 잡자 두 가지가 욕심 났는데 하나는 공부, 하나는 기부였습니다."

그는 2000년 만학(晩學)을 시작해 사회복지학 석사를 땄다. 2005년 라이온스클럽 인천 총재에 취임한 뒤 고액 기부를 결심했다. "30대 중반부터 고향 마을에 대소사 있을 때마다 꾸준히 100만~1000만원씩 송금했지만 이만큼 왔으니 나와 개인적인 인연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크게 한 번 '쏠' 때가 됐다 싶었어요. 남보다 못한 위치에서 출발해 남보다 높이 올라왔으니 기부도 남이 놀라게 해야지요."

박 회장의 기부 행로는 한국형 고액 기부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본지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개인 돈을 1억원 이상 기부한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 49명과 그들의 지인·가족 50여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생애엔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 역사가 그려져 있었다.

회원들의 평균 나이는 58.7세. 50대(16명)와 60대(14명)가 주축을 이루고 40대(8명)가 뒤를 받쳤다. 절반 가까운 사람이 "어린 시절 보통보다 어렵게 살았다"고 했다(46.5%). 네 명 중 세 명이 "철들고 부모님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72.7%).

이들이 기부에 눈을 돌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나 혼자 사업을 이만큼 키운 게 아니다'라는 겸손과 '우리 사회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현실 인식이었다. 최충경(65) 경남스틸 대표는 "사업 해보니 저 혼자 부자 되는 사람 없더라"고 했다. "나라에서 도로 닦아주고 전기·수도 들어오니 공장이 돌아가지 공장이 저절로 돌아갑니까?"

14일 오후 인천 남동구 인천폐차사업소에서 이 회사 박순용(58) 회장이 반파(半破)된 차량의 운전대를 잡아보고 있다. 중졸 학력으로 자수성가한 박 회장은 2000년 사회복지학 석사를 따고 2005년부터 고액 기부를 결심해 실천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지금은 연매출 3000억짜리 회사 주인이지만 그는 한때 서른둘에 혼자 된 어머니 밑에서 매일 끼니를 걱정하고 잠드는 5남매 중 차남이었다. 신문 돌리고 출판사 허드렛일 하며 야간 상고를 마친 뒤 삼성전자 장학금으로 대학을 마치고 곧바로 이 회사에 들어갔다. 샐러리맨 생활 10년 만에 자기 회사를 차려 지금 위치에 왔다. 1994년 별세한 어머니가 "후회 없이 살았는데, 돈이 좀 있어서 어려운 애들 장학금 주고 가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한 게 가슴에 남아 어머니 이름으로 경남 창원의 한 고등학교에 기숙사·체육관 짓고 장학금도 만들었다. "거기서 검사도 나오고 의사도 나왔다"고 최 회장은 자랑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라가 크니 나도 큰 겁니다. 1973년 입사할 때 삼성전자 전 직원이 800명이었는데 10년 뒤 나올 때는 임원만 800명이었어요."

최 회장은 "지금 우리 사회가 각박한 건 정말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진 사람, 배운 사람, 힘있는 사람이 양보해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아, 저렇게 땀 흘려 번 사람이 저렇게 배려하는구나' 생각하고 무리한 요구를 자제합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절반 이상(26명)은 평소 기부할 생각을 갖고 있다가 ①신문·방송 기사를 보고 ②목돈이 생겨서 ③가족의 질병이나 사별(死別) 같은 굴곡을 겪고 느낀 바가 있어 사재를 허물겠다고 모금회를 찾아왔다.

이들은 평소 점심으로 찌개·국수·백반을 먹고(41.7%), 술은 소주(34.9%), 안주는 과일과 삼겹살을 즐기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10년 된 구두, 20년 된 바지를 입은 사람이 많았다. "왜 기부를 하는가?"라는 물음에 49명 중 23명(이하 복수응답)이 "국민의 책임을 다하려고 기부한다"고 답했고 11명은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서"라고 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개인 돈을 1억원 이상 실명(實名) 기부한 사람들 모임으로 2008년 출범했다. 1억원을 한꺼번에 내는 사람도 있고 여러 차례 나눠 내는 사람도 있다. 가입하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건물 1층에 핸드 프린팅 동판을 걸고 회원증을 준다. 정기 모임과 봉사 활동을 1년에 한 차례씩 하며 다른 혜택은 없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기부 활동에 적극적인 갑부 2만명으로 구성된 미국 단체 ‘토크빌소사이어티’를 벤치마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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