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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 유일한 양조장 '서울 막걸리' 유섭 대표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10-28 14:25

“직접 만든 증류식 소주 ‘미’, 밴쿠버에 처음 소개합니다”


술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어색한 친구녀석과 울며불며, 밤새워 신세타령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유희열, 애주가 中)이 바로 술일 수도 있겠다. 시인 황지우는 자신의 산문집을 통해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못 봤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며 술꾼들을 옹호하기도 했다. 애주가들의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질 만한 다소 낭만적인 주장이다.

술과 관련된 얘기 중 가장 신뢰할만한 것은, 술의 맛과 향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같은 회사의 제품, 똑 같은 도수의 술인데도 어떤 날은 달고 또 어떤 날은 쓰다. 누구와 또 어떤 음식과 함께 하는지도 중요하다. 특별한 경우에는 썩 훌륭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한인사회 단 하나뿐인 양조장에서, 술의 또 다른 의미를 만났다.



 



막걸리, 낯선 땅에서 ‘고향’을 들이키다

랭리, 그 중에서 다소 한적해 보이는 곳에 양조장 ‘서울 막걸리’가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보다 술향기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모든 감각을 귀에 집중시키면 막걸리가 발효되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린다. 톡톡톡…, 마치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는 소리 같다. 술향기에 반쯤 취해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 ‘서울 막걸리’ 유섭 사장이 손을 내민다. 유 사장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낯선 땅 랭리에서 한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술인 막걸리를 빚어 왔다.

하고 많은 사업 중에 왜 주조업을 택했는지, 게다가 왜 하필 막걸리였는지 물었다. 첫 질문은 도수가 지나치게 낮은 싱겁기만 한 술 같았다. 하지만 되돌아온 ‘안주’ 맛은 솔직하고 맛있었다.

“막걸리 양조장이 단 한 군데도 없었어요. 사업적으로 승산이 있겠다 싶었죠. 게다가 북미 쌀이 감칠맛이 있잖아요. 랭리에선 지하수를 사용하는데, 이 물맛도 최상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쌀과 좋은 물, 막걸리 만드는 데는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죠.”

유섭 사장은 주조가 출신이 아니다. 96년 이민오기 전까지 줄곧 무역업에 종사해 온 그였다. 사업으로 양조장을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술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에서 술을 많이 담가 먹었어요. 가양주도 그래서 생긴 단어에요. 동네마다 양조장도 하나씩 있었고…. 제게 있어 막걸리는 술 이전에 하나의 추억인 셈이죠. 할머니가 만들었던 누룩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네요.”

그 추억을 복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조장 허가를 받는 것도 꽤 까다로웠다.

“주조 시설을 다 갖춰 놓은 다음에야 사업 신청을 하라고 하더군요. 좀 당황스러웠죠.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곤란하잖아요.”

우여곡절 끝에 받게 된 허가증. 이제부터는 술맛이 문제였다. 누룩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진작이 알고 있었다.

“상품화를 위해서는 재래 누룩은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술맛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일정한 맛을 유지하려면 누룩을 사와야 하는데, 어느 집 누룩을 쓸 지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한국을 수차례 오가는 사이 ‘서울 막걸리’(당시 이름은 밴쿠버 양조장이었다)의 술맛은 점차 그럴 듯 해졌다. 시장에 선보여도 될 듯 싶었다.

“처음 반응은 대단했어요. 사람들에게 맛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어요. 밴쿠버에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가웠던 거죠.”

몇몇 한인들에게 막걸리는 ‘고향’이었다. 술잔에 가득 담긴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키면, ‘캬’하는 감탄사 대신 고향이 먼저 떠올랐다.



세월 따라 술 빚는 내공도 늘어

말한대로 사람들은 막걸리를 반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주조업자로서는 참 속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술맛, 참 쓰디쓰다.

“모든 게 다 제 탓이었죠. 술이란 게 천천히 익어가는 것이고, 세월 따라 술 빚는 내공도 쌓이기 마련인데, 너무 서둘렀어요. 어서 빨리 투자금을 회수해야겠다는 어떤 압박감 같은 게 있었나 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도수였다. 막걸리치곤 세도 너무 셌다. 양주 두 병을 아무렇지도 않게 비우는 주당도 서울 막걸리 앞에서는 기를 못 폈다. 밤새 ‘고향’을 들이키다 보면, 다음 날 침대 밖으로 기어나가기도 힘들 정도였다. 술에 뭘 탔다는 기막힌 소문까지 돌았다.

“원래 막걸리는 6도인데, 저희 집 술은 12도였어요. 이곳은 한국에 비해 술값이 많이 비싸잖아요. 조금 적게 드시라는 의미에서 만들었는데, 한인들이 바랐던 건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막걸리다운 술을 원했던 거에요. 그래서 도수를 낮춰서, 다시 술을 만들었습니다.”

도수를 낮추자 막걸리는 막걸리답게 익어갔다. 서울 막걸리를 찾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식 주점에서도 주인공은 막걸리였다. 유섭 사장은 조용히 자부심을 느꼈다. 술맛, 참 달다!

“캐나다에서 사업한다는 것 그거 참 녹록하지 않죠. 사업해서 아주 큰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한인사회에 작은 기쁨 하나 드리고 있는 것 같아 그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섭 사장이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기쁨’이 있다. 그것은 소주,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증류식 소주다. 대부분이 소주로 알고 있는 희석식 소주와는 원료부터 아예 다른 술이다.

“희석식 소주는 고구마 등을 발효시켜 만든 95도짜리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듭니다. 이렇게 하면 대량 생산이 가능하죠.”

유섭 사장이 희석식 소주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주머니 사정 뻔한 학생이나 직장인들에게 소주는 적지 않은 위로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밴쿠버에서는 이런 낭만을 느끼기가 너무 부담스럽지만 말이다. 반면 증류식 소주는 한국에서도 편하게 마시기에는 다소 힘든 술이다.

“맥주를 증류시키면 위스키, 와인을 증류시키면 꼬냑이나 브랜디가 돼죠. 원래 소주는 막걸리를 증류시켜 만든 거였어요. 소주 한 병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막걸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소주는 술이라기보다는 거의 약으로 쓰였죠. 그만큼 귀했습니다.”

주조 기술이 발달하고 쌀이 풍부해지면서 증류식 소주는 역사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밴쿠버에서는 유섭 사장이 증류식 소주를 직접 만들어 파는 첫 번째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11월 중순 정도면 제가 만든 소주를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미’라고 이름 지었는데, 40도와 21.5도 이렇게 두 가지 종류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유 사장은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술은 정성스레 만들지만, 그 가격은 되도록이면 낮게 책정할 계획이다. 술이 한 민족을 대표하는 문화라면, 유섭 사장은 이곳 밴쿠버에서 그 문화를 소개하는 성실한 가이드가 될 생각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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