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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녀에게 '공부' 얘기만 하고 있진 않습니까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11-25 17:49

서울 강남 지역의 자율고(자율형사립고) 1학년인 A(16)군은 중학교 때 '우등생'으로 통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엄친아(공부 잘하는 엄마 친구 아들, 우등생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녔다. 하지만 고교 진학 후 처음 치른 중간고사에서 A군은 전교 90등을 했다. 충격에 빠진 어머니는 밥도 잘 먹지 못했고, A군에게 "네가 나를 이렇게 실망시킬 수가 있느냐" "쪽팔려서 집 밖에 돌아다닐 수가 없다"고 야단쳤다. A군은 "전학을 시켜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말하고는 최근 일반계고로 전학 갔다. 그는 "내년에 여기서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정말 죽고 싶을 거다"고 했다.

입시를 둘러싼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격해지면서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서울의 한 고3 수험생이 공부를 강요하는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은 이런 현상의 극단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①대입(大入)이 사실상 인생을 결정하다시피 하는 학벌주의 속에서 ②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으며 ③학생들이 과중한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는 상황이 학생과 부모 간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패자부활전' 없는 무한경쟁

'자녀가 공부에서 밀려나면 끝장이다'는 인식은 현재 우리나라 부모들의 정서로 자리 잡았다. '서울대를 나오면 분식집을 하더라도 잘 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일단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하다.

고졸자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전문대가 103~105, 대졸자가 150~160에 이를 정도로 학력에 따른 사회적 임금 격차가 크다는 것을 부모들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고교 졸업생의 82%가 대학에 진학하고 25~34세 인구의 58%가 대졸자라는 기형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좁은 문'을 향한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대입 관문에서 한번 실패하면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패자부활전'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 풍토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차명호 평택대 교육대학원장은 "자녀의 다른 가능성을 보지 않고 오직 성적에만 모든 걸 걸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자식 성공에 목맨 어머니들의 비극

서울의 일반고에 다니던 김모(16)군은 올 초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성적이 중간 정도였던 김군은 학교생활에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는 김군을 볼 때마다 "왜 더 노력을 하지 않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도 "그런 성적으로 제대로 된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고 잔소리를 했다.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전통적인 역할 분담조차 깨진 상황에서 김군은 그만 집을 나와 버린 것이다. 김 군은 "집 안에 있으면 성적 얘기만 한다. 숨이 막힌다"고 했다.

자기 인생과 자식 인생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자신을 투영(投影)하려는 것이 우리나라 많은 부모의 심리적인 특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회적 성취를 이룬 부모는 자식이 그렇게 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고, 실패한 부모는 자식의 성공에서 새로운 보상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부부 생활이 순탄하지 않은 부모일수록 자식에 대한 기대가 높기 쉬운데, 이런 부모는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마치 갖고 있는 주식 가치가 폭락한 것처럼 여긴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출구 없는 스트레스'

이렇듯 성적·진로와 관련해 가정에서 심한 억압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3 학생의 78.3%가 학교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84.2%는 학업 성적과 진로 때문에 부모와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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