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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그려진 하늘을 보라

灘川 이종학 캐나다 한국문협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12-13 14:18

캐나다 서북부 광활한 대평원 한복판에 자리 잡은 에드몬톤은 사방이 까마득한 지평선으로 둘러싸여 시야(視野)가 180도에 달한다. 온 천지가 한없이 넓게 펼쳐져 보인다. 그래서 이곳의 스산하도록 높고 짙푸른 늦가을 하늘이 담아내는 희고 투명한 구름결의 향연은 더없이 감동적이다.

한편에는 새털구름(卷雲)이 수평방향으로 넓게 퍼져 너울대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비늘구름(券積雲)이 물고기가 유영하듯 떠 있다. 면사포 같은 털층구름(券層雲)이나 엷은 잿빛 양떼구름(高積雲)까지도 한 자리를 차지해서 그야말로 복합구름의 아름답고 정교한 모습을 한눈에 바라보고 감탄하게 한다.

180도로 하늘 평원과 땅 평원을 동시에 바라보는 지역이 아니고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구름바다의 아름다운 광경이다. 

내가 구름에 대해 처음으로 인상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중학 3학년 때로 기억한다. 1947년경이다. 청록파 시인들의 시집 ‘청록집’을 우연히 읽을 기회가 있었다. 시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무심히 책장만 넘긴 셈이데, 문득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라는 글귀에 시선이 꽂혔다.

박목월(朴木月)의 시 ’나그네‘의 2연과 5연에 반복되는 민요조 가락의 시행(詩行)이다. 노상 무심히 올려다보던 구름이다. 달이 구름을 따라가는 줄은 전연 몰랐다.

너무나 신묘한 생각에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니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은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으로 말미암아서 정말 달이 구름을 따라 달려가는 착각을 갖게 하지만, 구름은 구름대로 달은 달대로 유유히 떠있었다. 다만, 구름과 달이 조화를 이루듯 서로 어우러지는 광경은 언제 보아도 가슴 뭉클하게 한다.

시인은 시행 하나로 달이 구름과 더불어 가게하고 나그네가 구름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흘러가게도 하는 위대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변화무쌍한 구름의 형태를 유심히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긴 것도 바로 이 무렵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하늘에 무심한 듯이 떠 있는 구름과 더불어 살고 있다.

밤낮 구름을 대하고 그 모양의 변화와 흐름에 마음의 명암이 교차하는 때도 허다하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구름과 얽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신화나 성경, 속담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구름은 단순히 물방울이나 수증기로부터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의 어원(語源(은 물에서 멀어질 수 없다. 구름의 어근인 ‘굴’에 접미사 ‘-음’이 붙어 이뤄진 말이라고 한다. 운(雲)은 비우(雨☞비, 비가 오다) 부(部)와 음을 나타내는 운(韻)이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다. 

우리는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와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말을 인용하여 널리 사용하고 있다. 상반된 뜻이 있으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청운‘은 고대 중국 진(秦)나라의 청운교(靑雲橋)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시 입신출세하려면 수도인 함양(咸陽)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청운교를 건너야 했다.

즉 ’젊은이여, 청운교를 건너서 권력과 부귀를 잡아라.‘는 권유인 셈이다. 한편  뜬구름 잡는 소리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기가 차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양자 모두가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파란 구름이든, 뜬구름이든 잡으려는 끊임없는 도전과 의지와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구름은 바로 하늘이요, 성스런 지고(至高)의 대명사가 아니겠는가.

서해 안면도 앞바다에 수장되었다는 보물선(寶物船)을 찾는데 몰입했던 대학 친구가 있었다.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사온 주간지에 실린 기사가 사단이었다.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 중국에서 약탈한 엄청난 양의 금괴(金塊)를 싣고 일본으로 가던 화물선이 충남 안면도 앞바다 어딘가에서 기관 고장으로 침몰했다는 것이다. 친구는 그 주간지 기사에 완전히 현혹되고 말았다. 직장도 집어치우고 본격적으로 보물선 인양에 뛰어들었다. 1970대의 일이다. 인양장비나 기술이 아주 낙후했던 시절이다.

작은 목선과 서너 명의 잠수부에 의존해서 짐작도 못하는 심해 속을 무턱대고 뒤지고 다닌다니 정말 뜬구름 잡는 허망한 짓이었다. 여러 번 간곡히 말렸지만 마이동풍이었다. 오리려 나도 동참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일확천금 앞에 내 말이 들릴 리 없다.

결과는 참담했다. 잘 살았던 집안 거덜 났고 많은 빚까지 짊어진 채 끝내는 화병까지 얻어 고생하다가 40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아까운 친구였다. 그 이후에도 침몰한 금괴 실은 배에 관한 이야기가 분분했고 여러 사람이 보물선 인양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들을 때면 그 친구의 생각이 나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바로 그 금괴 화물선을 인양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캐나다에서 귀동냥한 소식이고 확인한 바가 아니라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면 그 친구의 허망했던 야망이 구름에 묻혀 허공에 떠돈 것이  아니었다는 감동을 하게 했다. 헛소문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친구는 비참하게 세상 하직했어도 간절히 소망했던 뜬구름을 잡은 셈이다. 하긴 한국의 부자들은 뜬구름도 곧잘 잡아 돈으로 만든다지 않는가.
         
“젊은이여, 야망을 가지라(Boys, Be Ambitious).” 청소년기에 가슴 뛰게 했던 윌리엄 클러크(William Clerk) 박사의 명언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100년 전의 말이지만, 지금도 젊은이들의 좌우명이 되고 있다. 야망은 허욕이 아니다. 뜬구름을 잡으려고 감나무 아래 누워서 입을 벌리는 행위가 아니다. 원대한 꿈을 하늘에 두고 노력하고 매진해서 이루겠다는 결기다.

나도 젊어서는 나름대로 원대한 야망을 품긴 했으나 이루려는 피나는 열성을 다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의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도 소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제는 청운이나 뜬구름에 내 꿈을 두는 대신 편지를 쓰고 있다. 일정한 모습이 없는 구름처럼 흘러가는 내 생애가 다할 때까지 깨끗이 버리고 내주며 살고자 한다. 조금은 남아 있는 소유욕과 명예욕, 남에게 인색했던 옹졸한 심성 같은 걸 말이다. 젊은이의 야망이 늙은이에게는 구토를 동반한 욕망이 된다. “당신은 지금 힘들고 어려우신가요? 구름이 그려진 하늘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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