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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조카(김정은) 뒤에서 수렴청정?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12-22 15:46

'김씨 왕조'가 김정일 사후(死後) 20대 후반에 불과한 김정은의 보호막으로 고모인 김경희(65) 당 경공업부장과 고모부인 장성택(65) 당 행정부장을 '투 톱'으로 내세운 모양새다. 특히 김정일의 유일한 동복(同腹) 혈육인 김경희의 급부상이 눈에 띈다.

김경희 6년 만에 재등장

2009년 6월 김경희가 김정일의 함남 협동농장 시찰에 동행, 6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의미를 눈치 챈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건강이 악화된 김경희가 죽기 전에 바람이나 쐬려는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김경희는 작년 9월 당대표자대회 때 김정은과 나란히 '대장' 칭호를 받으며 권력 핵심으로 떠올랐다. 북한군의 첫 '여성 대장'이다. 당시 남편 장성택은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머물렀지만 김경희는 정치국 정위원이 됐다.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사진 왼쪽).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오른쪽 사진 앞줄 가운데) 노동당 경공업부장이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당 대표자대회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정부 소식통은 "김정일이 2009년 1월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지 6개월 만에 김경희를 복귀시킨 것은 일찌감치 '김정은 후견인'으로 결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희의 재등장 배경은 "김일성 직계 혈통이기 때문"(국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고위탈북자는 "김경희 복귀는 김일성 가문을 의미하는 '백두산 혈통'이 김정은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는 걸 알리려는 의도"라고 했다.

김정일과 김경희는 각각 일곱 살과 세 살 때인 1949년 어머니 김정숙이 출산 중 사망한 이후 서로를 의지하며, 장성택과 함께 계모 김성애 등의 후계 도전에 맞섰던 동지관계다. 일본의 대북 소식통은 "김경희는 파티에서 술에 취하면 장난으로 오빠(김정일)에게 뽀뽀를 할 만큼 남매가 허물없었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김경희는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기념 촬영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바람기 있던 남편 장성택과의 불화, 2006년 중반 프랑스 유학 중이던 친딸 장금송의 자살 등이 겹치면서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등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금송은 김경희가 남자친구의 신분 문제를 들어 결혼을 반대하자 자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소식통은 "당시 김경희는 폐인처럼 지냈지만 지금 김경희는 김정은을 도와 '수렴청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정일 "믿을 건 핏줄뿐"

장성택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쓰러졌을 때 비상사태를 수습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2004년 측근의 호화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분파 조장' 혐의로 숙청됐지만 2007년 말 공안·사법기관을 총괄하는 당 행정부장에 올랐다. 김정일 시대 '2인자'로 불렸다.

김정일은 리더십을 갖춘 장성택을 경계하면서도 작년 6월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앉혔다. 작년 9월 당대표자회를 전후해 최룡해 당비서, 박명철 체육상 등 한때 좌천됐던 장성택 측근들이 속속 복귀했다. 정부 당국자는 "2009년 12월 이후 김경희·장성택 부부는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했다"며 "김정일은 말년에 믿을 건 가족뿐이란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북한 후계와 관련, 당초 김경희·장성택 부부는 장남인 김정남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가 김정남 생모인 성혜림과 가까웠고, 성혜림이 신병 치료차 모스크바로 떠난 이후 어린 김정남을 돌봐줬던 인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이후 김정남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으로 관측된다.

김경희와 장성택의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황장엽 회고록 등에 따르면 김경희는 김일성대 정치경제학과 동급생이던 장성택에게 빠졌다. 장성택은 머리도 좋았고 아코디언 연주·노래·춤에도 뛰어났다. 그러나 김일성은 장성택 아버지 쪽 출신 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장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쫓아버렸다. 하지만 김경희가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1972년 겨우 결혼했다고 한다.

이후 김과 장의 결혼 생활은 딸 금송의 자살, 김경희의 알코올 중독, 장성택의 두 차례 숙청 등이 겹치면서 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고위탈북자는 "김경희는 연회에서 '어이, 장 부장'이라고 부르는 등 장성택에게 살갑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정보 당국자는 "김경희·장성택은 정치적으로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며 "이들이 반목해 북한 권력이 혼란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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