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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 할머니, 미혼 손녀 결혼관 듣고…

이재준 기자 pr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1-20 17:32

1대는 피란민촌 초가집 생활, 2대땐 새마을운동으로 슬레이트 얹은 집에서 살아… 3대땐 일산 신도시 건설 아파트로 사는 곳 바뀌어
"용띠 여자가 드세다지만 우리 모녀 삼대는 용띠라서 세상을 강하게 헤쳐나가나 봐요"

20일 경기도 일산시 장항동 전향숙(48)씨 집 거실에 설을 앞두고 용띠 삼대(三代)가 모였다. 전씨와 어머니 이복선(72)씨, 딸 고영주(24)씨는 24년씩 차이가 나는 용띠다. 호주 시드니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고씨는 인터넷 화상통화로 노트북 컴퓨터 속에서 밝게 웃고 있었다.

똑같이 용띠지만,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이 살아온 세상은 달랐다.

이씨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 황해도 장영군에서 태어났다. 이씨가 열살 때 6·25전쟁이 일어나 전남 진도로 피란을 갔다. 스무살 무렵 경기도 일산에 있었던 피란민촌인 무검마을로 올라와 터를 잡았다. 이씨는 이곳에서 남편 전정하(73)씨를 만나 농사를 지으며 초가집에서 살았다. 힘든 시절이었다. 이씨는 "피란민이 모이다 보니 설날이면 동네 사람이 모여 이북 음식인 녹두전, 만둣국, 빈대떡을 해 먹었어요. 가난했지만 다들 열심히 살았어요"라고 말했다.

전씨는 1964년 태어났다. 그는 "우리 어린 시절에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다"면서 "초가집이 슬레이트 얹은 집으로 바뀌고 세상이 빨리빨리 변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이씨는 딸 전씨의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일을 했다. 1970년에 전씨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구멍가게를 시작했다. 한강에서 실뱀장어를 잡아다 팔기도 했다. 딸이 1983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뒤에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했다.

용띠 모녀 삼대(三代)가 용띠해를 맞아‘상봉’했다. 전향숙(오른쪽)씨가 어머니 이복선(왼쪽)씨와 함께 호주에서 유학 중인 딸 고영주(컴퓨터 화면)씨와 화상통화를 하며 새해 덕담을 나누고 있다. /김효인 기자 hyoink@chosun.com
 
전씨는 일산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1988년 딸 고씨를 낳았다. 할머니가 살던 초가집 피란민촌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고씨는 2002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호주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2007년 호주 시드니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고씨는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할머니가 외국 대학까지 가는 저를 보고는 참 많이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용띠 삼대는 살아온 시절의 차이만큼이나 결혼관도 달랐다. 이씨는 남편과 결혼한 이유에 대해 "같은 고향인 황해도 출신인 데다 동네에 부지런한 청년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1980년대 말 민주화 시위를 하던 남편(고광석씨·51)이 멋져 보여서 1987년에 결혼을 했다"면서 웃었다. 미혼인 고씨는 "변호사라는 내 일을 인정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손녀에게 "나도 옛날 생각 바꿨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여자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남편한테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컴퓨터 화면 속의 손녀가 "할머니 최고"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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