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교실 문을 나섰다. 흡족스럽지 못한 교육환경을 개선해 보겠다는 것이 파업을 선택한 명분이자 이유다. 학생들을 잠시 떠나야 하는 교사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다.
새 이민자 김모씨는 일단 교사들의 구호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초등학생 둘의 아빠인 김씨의 눈에도 밴쿠버의 공교육은 ‘파라다이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처음으로 아이의 학교를 찾았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그는 잠시 혼란에 빠졌더랬다. 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곳이 일반 교실이 아니라 컨테이너 박스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만한 그런 교실, 그런 학교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학생은 늘고 있는데 교실 수는 부족해 임시로 컨테이너를 설치했다는 게, 꽤 친절해 보이는 학교장의 설명이었다.
김씨는 그 설명을 듣고 “아, 그렇습니까?”하고 쉽게 수긍하기 어려웠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쌀쌀할 수밖에 없는 교실에서 선생님의 눈을 쫓아가야 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교실, 김씨에게는 기대치를 한참 낮춰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이 없다는 점도 김씨에게는 약간의 ‘문화충격’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아이는 학교에서 플룻과 바이올린을 배웠다. 캐나다화로 환산하면 한 달에 50달러 정도면 일주일에 두 차례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캐나다로 건너온 이후, 사교육 부담이 오히려 커진 느낌이다. 아이에게 악기 하나 가르치려 들면 시간당 50달러는 족히 든다.
그래, 교사들을 응원해 보자. 자신은 직장에 다녀야 하고, 아내는 영어학교 학생이라 파업 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기 마땅치 않지만, 교사들이 거둘 ‘열매’는 분명 달콤할 것이다. 파업 선언 후 BC주 민심이 교사들을 떠나고 있다지만 김씨는 아직까지는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
BC교사연맹(BCTF)이 쉽게 두들겨맞는 ‘약골’이 아니라는 점도, 김씨가 이번 승부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BCTF는 적지 않은 자금력을 갖고 있고, 그 동안 몇 차례 주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해왔다. 2005년 파업 때는 2주 동안 BC주 공립학교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번 파업에 나서면서, 교사들은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도 신경을 써줄 것을 바라고 있다. 향후 3년간 임금 15% 인상이 BCTF가 내건 요구조건이다. 주정부는 이를 받아들이려면 예산 10억달러가 소요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김씨는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월급이 올라서 교사들이 더 힘차게 일할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의 학교생활이 즐거워진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그런데 만약, 정말이지 만약, 교사들이 월급 몇 푼 오르는 것에 만족해 이번 싸움을 흐지부지 끝낸다면, 김씨는 기대한만큼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업 후에도 아이가 컨테이너 박스에서 자신의 교사를 만나야 한다면, BCTF는 학습권을 볼모로 잡고 한결 두툼해진 월급봉투만을 위해 싸웠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비난을 피하려면 BCTF는 교육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주정부의 의지를 확인하기 전까지 파업을 멈춰서는 안 된다.
김씨는 이제 BCTF에게 묻고 싶다. “월급 몇 푼 올리려고 하는 파업은 아니겠지요?” 결과적으로 그 답이 ‘예스’가 된다면, 김씨는 파업 기간 동안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데이케어 비용을 BCTF에게 청구할 생각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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